글의궤도 1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이미 출력된 책을 수정할 수 있을까?
A Young Man Reading by Candlelight (circa 1630)
Matthias Stom (Dutch, ca. 1600 - after 1650)
책을 사서 읽다 보면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오타를 발견할 때가 있다. 나는 책을 사서 읽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도서관이나 지인으로부터 빌린 책을 읽을 때는 내가 마음껏 책 한 켠에 메모를 하거나, 책 페이지 귀퉁이를 접을 수가 없어서가 이유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내가 돈을 지불하여 책을 소유함으로 그 책 안에 있는 인물들, 그 인물들의 삶, 결말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묘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수집하는 책들로는 작가의 자전적 삶이 담긴 에세이 그리고 마음을 돌이켜볼 방법을 인생을 먼저 산 선배들이 모아둔 류가 대부분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면 그의 서재 안 책장을 보라고 말을 하던데, 나는 과연 내 소장 서적 목록을 기준으로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칠까?
나는 책이랑 영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혹은 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성인이 된 지금보단 오히려 청소년기에 정말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카프카, 하루키, 소세키, 톨스토이 등등 학교 도서관에 걸린 추천 도서 목록에 있는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읽었던 것 같다. 책을 고를 때는 처음 만나는 친구를 맞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의 표지만 보고는 그 책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제목을 주욱 훑어보다 꺼내어보곤 책의 표지가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않은가 혹은 흔히 말하는 'Feel'이 오는가 오지 않는 가로 책을 골랐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책이다 싶으면 책의 목차를 읽거나 무작위로 펴낸 페이지를 주욱 훑어본다. 이 단계까지 무사히 잘 살아남은 책은 마지막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바로 저자 혹은 옮긴 이의 이 책과 작가에 대한 소개와 자기 생각이 담긴 구절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어야 한다.
'어쩌면 이 책이 너와 잘 어울릴지도 몰라, 한 번 시도해 볼래? 잘 맞지 않더라도 그만 읽으면 그만이니, 상관없지 않니? 한 번 시도해봐.'
Knitting in the Library (verso) (c. 1881)
Mary Cassatt (American, 1844-1926)
호기롭게 새로운 책을 구입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성실히 넘기다 보면 정말 구구절절 내 이야기 같은 책을 볼 때도 있었고, 영 나와는 인연이 아니다 싶은 책도 많이 있었다. 마치 운명처럼 내 손에 들린 책의 결말이 정말 마음에 무척 들지 않아 꽤 오랜 시간 동안 여유가 있을 때마다 혼자 아쉬워하고는 했었다. 혹은 예전에는 별로 감흥이 없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주옥같은 책을 지나쳤었다는 사실이 참 낯설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책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와 정말 짧은 한 줄이지만 엄청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거창한 경험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예전에 일했던 회사는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 교육을 운영하는 꽤 규모가 큰 미술사, 역사 학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곳은 한 달에 2-3권씩 20페이지 내외의 학습지를 만들어냈다. 서울시에서 현재 열리는 전시에 대한 설명과 이 전시에 걸린 작품을 창조해낸 작가에 대한 이야기 등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내는 책이었다. 단순히 관련 정보를 나열해서 꽉 채우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이 작품을 이 사람이 그렸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너라면 어땠을지 등 의외로 깊이가 있는 콘텐츠로 구성된 책이다. 그런데 학습지도 책이라고 할 수 있나?
나는 그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했기에, 기획자들이 내용을 내게 전달해주면 적절한 이미지 자료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느낌을 잡고 그래픽을 새로 그리고 등등 시각화 작업을 했다. 어느 날은 몇 번이고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책에서 오탈자를 발견했다. 당장 내일부터 사용해야 하는 교재인데 오탈자가 있다니 정말 큰 일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이미 출력된 책을 새로 고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스티커를 붙여 오탈자를 덮어도 되고, 해당 페이지만 새로 출력해서 바꿔 붙여도 되지만 어쩐지 완전하지가 않다.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 그냥 그 책을 그대로 사용했다. 몇백 명의 아이들과 수십 명의 선생님은 그냥 별거 아닌 걸로 넘어가 주었겠지. 이익을 생각해, 오탈자가 있는 책을 전량 폐기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참 슬프게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슬프지가 않아 슬펐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 삶을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상상한다. 책을 만들기 위해선 원고를 쓰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검수하고, 출력하고, 유통하고, 판매하고. 많은 단계가 있겠지만 내 상상 속에서 책을 만드는 과정은 일기장에 펜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것과 같다.
읽기 힘든 내 악필로 내가 오늘 느낀 기분, 생각, 감정들을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내려 가는 일기장에 더 가까울 거다. 글을 잘 쓰기 위해 미리 연필로 글을 써 내려가는 연습도 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잘라 붙이기도 하고, 실수로 쓴 글 위로 줄을 쭉쭉 그어 삭제도 해보고 어떤 날은 아무 내용도 쓰지 않았을 거고 어쩌면 그 빈 페이지가 꽤 많을지도 모른다.
한 번 출력되면, '한 번도 잘못 출력된 적 없어 보이게끔' 수정하기 매우 어려운 책이 아니라
언제든 내가 내키는 대로, 비록 흔적이 남고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다, 편하게 쓰고 또 쓸 수 있는 책을 나는 쓰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너무 후회되는 순간들, 혹은 내가 다른 선택을 내렸더라면 조금 덜 후회하지 않았을까 하는 순간들이 유감스럽게도 매우 많다.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내게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기에 커다란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한 감사함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마음에 안 들어 까맣게 지운 과거의 내 흔적을 시간이 지나서 내게 다른 존재가 된 거다. 후회스러웠던 과거의 결정을 다시 꺼내 보기엔 아직 내가 많이 힘든 것 같다. 생각하려 하면 할수록 슬프다. 슬프게도, 슬프다. 그래도 중요한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게 정말 중요한 거다.
나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 이유는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완성할 나라는 책이 반드시 완벽해야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완성을 했다는 게 중요한 거다. 그것만이 중요하다.
[관객의취향_취향의모임_글의궤도_Y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