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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의궤도

花樣年華

글의궤도 1호

by 유영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작년엔 극장에 다섯 번밖에 방문하지 않았다.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예의 없는 관객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지는 것도 싫고 평소에 집에서 혼자 보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도 다섯 번은 너무한 숫자다 싶었다. 극장에서 보고싶은 영화들이 많았지만, 코로나 탓에 방문하기 꺼려져서 가지 못했다.


막상 발이 묶이니까 영화관이 그리워졌다. 크고 넓은 스크린, 심장이 같이 쿵쿵 울리는 깊은 사운드, 모두가 집중해서 영화에 빠져드는 설레는 순간과 분위기가 문득 그립더라.


새해에는 마스크 쓰고 조심히 방문해봐야지 생각했는데 마침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가 리마스터링 되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애인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 그래도 위험한 상황에 극장을 찾는게 겁이 나서 큰 돈을 지불하고 골드클래스 관을 예매했더니 우리밖에 없었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애인과 갔지만 거리두기로 인해 둘이서 저 멀리 떨어져 앉았더니, 모르는 사람 한 명과 함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기대했던 영화라 실망하면 어쩌나 조금 염려되기도 했는데 세상에. 내 인생 영화가 바뀌었다. 좋다고 말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영화에서 처음 Yumeji's Theme가 연주되며 느린 화면으로 전환될 때는 몸에 소름이 돋고 비명을 지르고싶은 심정이였다. 음악도 좋고, 연출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 좋고... 99분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모르게 영화에 푹 빠져버렸다.


영화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왕가위 감독는 어렵고 자극적인 소재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연출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내게는 불륜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그저 사랑에 대해 보여주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울고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를 보니, 왕가위 감독에 대해서 더 궁금해졌다. 나는 영화의 기법이나 연출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지만, 천천히 끙끙대면서라도 왕가위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졌다.


어떤 영화 한 편, 책 한 권은 새로운 세상을 활짝 열어준다. 나는 오늘 또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더 많이 사유하고, 더 많이 공부할 것이다.


영화 제목 화양연화는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이라는 뜻이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영화다.


[관객의취향_취향의모임_글의궤도_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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