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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도 황희두 Dec 18. 2018

이어령 박사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지성인 이어령 박사.

평생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줄만 알았던 그에게도 뼈아픈 과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사랑하는 딸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천붕(天崩)'이요 자식이 먼저 떠나면 '참척(慘慽)'이란 말이 있듯이 그의 고통은 직접 겪지 않았을지라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첫 장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와 똑같은 슬픔과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신도 그랬냐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이어령 박사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그와 비슷한 고통을 겪었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쉽게  수 있다. 제목에서부터 짐작했겠지만 이 책은 이어령 박사의 후회와 반성, 그리고 딸을 향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매일 밤, 어쩌면 그에겐 전부와도 같았던 글을 쓰느라 딸의 굿나잇 인사조차 차갑게 외면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바빠도 30초면 족하다.(…)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 23p


그의 30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본다. 정말 짧은 그 시간조차 딸에게 투자하지 않고 묵묵히 글만 쓰던 이어령 박사의 후회뿐만 아니라,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딸을 잠시라도 보고 싶은 그런 의미의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그의 딸, 오로지 그의 상상 속에서만 굿나잇 키스가 가능하다. 결국 이러한 슬픈 현실을 받아들인 이어령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매일 저녁 굿나잇 키스를 하듯이 너의 영혼을 향해 이제부터 편지를 쓰려는 것이다.(…) 기도한다. 우편번호 없이 부치는 이 편지가 너에게 전해질 것을. 그래서 묵은 편지함 속에 쌓여 있던 낱말들이 천사의 날갯짓을 하고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꿀 것이다." - 24p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라 불리던 그도 정작 집에서는 너무나 부족한 '초보 아빠'였다.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려 피나는 노력 끝에 집을 샀지만, 정작 딸이 원했던 것은 물질적인 집이 아닌 화목한 가정이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깨달다고 고백한다. 이후로도 그는 딸과의 수많은 추억들을 떠올리며 후회와 반성, 그리움의 굿나잇 키스를 남긴다. 말 무렵에는 딸이 암에 걸린 상황에서 아프리카로 남미로 땅끝의 아이들을 찾아가 선교활동을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이런 말을 전한다.


"네가 뭔데 거기가 어딘데 혼자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광야를 건너려 하는가. 그러나 딸아 사랑하는 딸아, 이제야 네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네 아우의 기도를 들으니 알겠다.(…) 천사들이 널 호위하였고 하나님이 성령의 빛을 보내셨다. 장한 딸, 지혜로운 딸, 날 눈뜨게 한 효녀, 고맙다. 내 딸아, 이제 굿나잇 키스를 보내지 않겠다. 밤이 없는 빛의 천국, 너는 영원히 잠들지 않는 하늘의 신부가 되었으니까." -289p


사실 이 대목에서 몇 번을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굿나잇 키스를 보내는 아버지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과거 그의 딸 故 이민아 작가는 아버지 이어령을 이렇게 평가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자기 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아버지가 참 좋았다. 존경스러운 게 아니라 그냥 좋았다." 이 인터뷰를 본 이어령 박사의 심정은 어땠을까. 차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미어졌을 것이다.


이어령 박사는 오랜 세월 무신론자였다. 심지어 과거엔 종교를 거세게 비판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랬던 그가 암에 걸린 딸이 실명 위기까지 처하자 결국 영성의 문지방을 넘었다고 한다. 결코 그러한 행동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사랑의 힘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는 것을.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단순히 한 가정의 부녀간 사랑 스토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살아가는 죽음, 이로 인해 언젠가 마주해야 할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유한한 인생 속에서 야속하게 흘러가는 간이 만들어 낼 후회'에 대한 내용이 한 곳에 담겨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그도 서문에 이 책을 '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딸을 잃은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세상 모든 이에게 바치는 글'이 되길 바란다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모든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앞서 언급했듯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에는 아무리 후회해도 다시 만날 수 없을테니.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 각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굿나잇 키스"를 전해 보면 어떨까. 마지막으로 이어령 박사가 딸에게 직접 쓴 시 한 편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이어령 - <살아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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