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 앞에 보이는 것(현상)만 믿어서는 안 된다.
- 건강해 '보이는 것'과 건강한 것
- 부유해 '보이는 것'과 부유한 것
- 행복해 '보이는 것'과 행복한 것
-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과 사랑하는 것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마 백이면 백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위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는 것을 숱하게 봐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기에 형이상학적인 '본질'보다는 눈 앞에 펼쳐진 '현상'만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가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도 GDP, GNP 지수만을 발표하며 세계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위상만을 신경 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것은 당연히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나 그 이면(裏面)에 담긴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 눈물 등은 통계에 1도 포함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국민 행복 지수나 우울증 지수 등은 제외된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 자체가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도 전형적인 '현상'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현상과 본질이 제대로 주객전도된 암울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타인과의 만남에서도 현상이 본질을 집어삼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인상형성에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초두 효과’라고 부른다. 3초 만에 상대에 대한 스캔이 완료되니 첫인상을 신경 쓰라는 의미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온 가족끼리도 서로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 티격태격하는데, 어찌 그렇게도 빨리 상대방을 파악한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초두 효과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당장 나도 첫인상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오류를 많이 범했기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선입견과 판단력은 왜곡된 시선과 프레임을 만든다. 스스로를 과신해 첫인상에 낚여본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 봤을 땐 성실하고 진실된 사람처럼 보였으나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다든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보였으나 갑자기 180도 돌변해 색다른 모습을 본다든지 하는 경우 말이다.
나도 이런 독단에 빠져있다는 현실을 느끼게 된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몇 년 전, 한 아이를 알게 되었다. 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땐 겉으로 보이게 무척이나 작고 가녀리고 나약해 보였다. 나도 처음엔 그저 보이는 모습만 보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상대의 본질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자 오히려 내가 그 아이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본질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한 것도 그 아이 덕분이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무척 단단해 보이고 강해 보였다. 그러나 정작 내면은 모래성처럼 툭치면 무너질 정도로 나약한 사람을 보았다.
최근 들어 이런 상황들을 자주 겪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절대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겉보기에 근육질에 강해 보이고 목소리가 크지만 속은 텅 비어있는 사람과, 반대로 겉보기엔 작고 가녀리고 내성적으로 보이지만 속은 단단한 뿌리를 내린 내면 깊은 사람이 있다면 과연 누가 진짜 강한 사람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을 꿈꿔야 할 것인가?
물론 아직까지 무력(힘,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전자를 택할 수 있지만, 나이를 먹고 어느덧 인생의 지혜를 서서히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은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껍데기만 주울게 아니라 진정 깊이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천 권의 책을 전시용으로 책장에 꽂아두고 방치하는 것은 현상에 불과하다.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읽고 사색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말로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이 담긴 책을 찾기 전에 먼저 지식과 지혜가 담긴 책을 접해야 한다. 지혜와 지식이 어느 정도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말을 못 하는 사람이 말 잘하는 방법이 담긴 책을 읽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본질을 탐구한 후에 현상에 관심을 갖자는 뜻이다.
얼마 전까지 나도 주위에서 지인들이 많아 부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최근 본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 그들의 부러움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정말 나약하고 외로운 사람이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외로우면 주위에 연락해 아무나 만나 술 한잔하며 나를 달랬다. 그들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나의 내면이 공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의 본질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데 그저 눈 앞에 보이는 현상만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본다.
물론 그렇다고 친구들과의 만남이 본질을 해결하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친구를 만나며 진짜 내 고민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사색한다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혹시라도 나처럼 스스로에 대한 고찰과 사색이 결여된 상태에서 그저 외적인 만남만을 추구하다가는 언젠가 나처럼 내면의 소용돌이 빠진 채 허우적댈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인생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인생을 홀로 쓸쓸히 살아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남을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나를 사랑하고, 남들에게 보이는 시선(명예, 권력 등)만을 신경 쓰기 이전에 먼저 나의 그릇을 갖추자는 뜻이다. 결국 혼자 와서 혼자 떠나는 인생이니 남에게만 의지하다가는 언젠가 허탈함과 고독함을 느끼지 말고 스스로 이겨내자는 것이다.
겉으로만 번지르하게 보이는 사람은 결국 언젠가 한계를 느끼게 된다.
혹여나 그런 현상만을 바라보고 나에게 접근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정작 속이 비어있다고 느끼는 순간 당장 나를 떠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을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먼저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보여주진 않았는가? 그렇기에 배신당했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먼저 진짜 내면의 나를 상대에게 보여야 한다.
결국 우리는 껍데기 주의자에서 벗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진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그리하여 나에게 빈 껍데기만 남아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곁에 남아주는 사람. 그들이 바로 나의 진정한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