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누군가에게 반가움을 주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어느 저녁,
나는 친구와 함께 공원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날따라 사람도 없어 적막함만 흐르던 그곳을 조용히 걷던 중
갑자기 어딘가를 가리키며 침묵을 깨는 친구.
"저거봐"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을 깬 그 친구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벌써 어둑해진 공원을 홀로 빛내고 있는 자판기가 하나 있었다.
"자판기?"
"응, 얼마나 쓸쓸할까.. 매일 혼자 저기 서있어야 하잖아."
자판기를 보며 쓸쓸함을 느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는 나도 몰입해보았다.
어둠 속에서 홀로 서있는 자판기.
공원 속 어딘가에 덩그러니 놓여있기에
멍하니 서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걸 구경할 수밖에 없는 운명.
우리 인간은 외로우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
열심히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을 수 있고,
그러다가 지치면 잠시 쉴 수도 있다.
우리에겐 그런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닐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만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자라나는 나무에 비해,
인간은 여기저기 평생을 돌아다녀야만 먹고살 수 있기에
오히려 불행한 걸지도 모른다는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자판기가 부러운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자리에 있어도
알아서 누군가가 와서 물건을 채워주기도 하고,
심지어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열심히 돌아다니며 꾸준히 노력해야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인간에 비해,
자판기는 가만히 서있어도 알아서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정말,
때로는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고 싶다.
과연 그래도 다들 반겨줄까?
아무리 돌아다니고 열심히 살아봐도
전혀 삶의 질이 나아지는 걸 느끼지 못하는 일상.
바쁘고 치열한 하루를 보내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한숨뿐인 일상.
따스한 위로와 조언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봐도 크게 변하는 건 없는 그런 일상.
그럴수록 점점,
멍하니 혼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지는 나의 마음.
나도 자판기처럼 가만히 있더라도 누군가가 살갑게 다가오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과연,
공원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그 자판기는 알까.
우리 인간이 누군가에게 반가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반대로 우리 인간들은 알까.
그 자판기가 행복해할지 아니면 쓸쓸해할지를.
우리는 평생 정답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렸다는 하나의 교훈 아닐까.
어떻게 보면 너무나 쓸쓸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부럽기도 한 자판기처럼,
너무나 쓸쓸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우리도 그런 애매모호한 존재니까.
그러니 기왕이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에게 반가움을 주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