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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도 황희두 Jan 03. 2018

'프레임'의 무서움을 아시나요?

'프레임 전환의 귀재' 김기춘, 대한민국을 지배하다

 

ⓒ imgs.cc /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프레임'이란 무엇일까?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프레임》의 저자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사고방식, 비유, 고정관념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했다. 우리의 수많은 착각과 오류, 오만과 편견, 실수와 오해는 전부 ‘프레임’에 의해 생겨난다.


 이러한 프레임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간단한 나의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나는 의경 출신이다. 논산 훈련소에서 4주간 군사 훈련을 받고, 3주간 경찰학교에서 생활했다. 경찰 학교에서 교육을 받던 중 나는 몇 분짜리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에 담긴 내용을 짤막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광우병 집회에서 시위대에게 죽창으로 찔리고 방패와 장신구를 뺏긴 채 집단으로 구타당하는 경찰'


영상을 보는 내내 경찰은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일방적으로. 나는 자연스럽게 '시위대는 왜 이렇게 폭력적일까?', '저들은 자식, 부모도 없나?', '정작 잘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경찰을 패는 것인가?'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걸 본 나는, 아니 대부분의 동기들은 분노했다.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에게 두들겨 맞으며 무참히 짓밟힌 채 피 흘리는 경찰의 모습이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 즉 우리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 시위대에게 구타 당하는 경찰


 안타깝게도 시위가 왜 벌어졌는지, 왜 그렇게 서로 피 터지게 싸우는지는 애초부터 우리들의 관심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들겨 맞는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 될 터인데, 어느 누가 한가하게 사건의 진위여부나 따지고 있겠는가. 그러나 바로 여기에 프레임이 존재했다. (나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단순히 몇 분에 지나지 않는 한 영상의 이면에 프레임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보면 프레임이 정말 무섭지 않은가? 우리 수많은 청춘들의 분노와 울분을 이끌어내는 것이 단 몇 분만에 이뤄진 것이다. 우리들은 아무런 의심조차 못한 채 '시위대'를 향한 반감이 생겨났고, 분노했다. 경찰이 이렇게 두들겨 맞는 상황이 이해가지도 않았고 정말 답답했다. 그렇게 물 흐르듯이 우리는 '프레임'에 갇힌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획자가 누구인진 몰라도 그가 원했던 대로 '경찰의 편'에 자연스럽게 서게 되었다. (물론, 소수의 깨어있던 청년들은 아마 속으로 비웃었을 것이다.)


 이런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던 중 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얘기인즉슨 이러했다.

과거 시위대에게 당하기만 하던 의경과 경찰들을 보다 못한 어청수 청장이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반격을 개시하라"명령을 내렸다. 이후 일방적으로 당하던 경찰의 사기가 크게 올라 결국 전세가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의경 사이에 영웅담처럼 전해져 왔고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래 바로 이거지! 왜 경찰이 당하고만 있어야 해. 대한민국 공권력이 이렇게 약해서 되겠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프레임은 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한 청년을 몇 분만에 경찰의 편에 서게 만다. 아찔하다.


ⓒ 프레임 전환의 귀재, 김기춘

 

 일명 '기춘대원군'이라 불리던 왕실장 김기춘은 프레임 전환의 귀재, 일종의 악마였다.


- 초원복집 불법 선거 모의 사건

대선을 앞두고 초원복집에서 지역감정을 유발하며 불법 선거 모의한 것이 탄로 나자, 그는 '불법도청'에 대한 양심의 문제를 부각하며 여론을 전환시켰다.


- 강기훈 씨 유서 대필 사건

과거 대학생 분신자살이 문제시되자 곧바로 그는 '유서 대필 후 자살 방조'를 이슈화 시키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렸고 상황을 반전시켰다. 이후 강기훈 씨는 25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사건의 기획자들은 애초부터 진위여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본인들이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


-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박관천 청와대 행정관이 처음으로 최순실을 만천하에 드러냈으나, 이마저도 찌라시 취급하며 오히려 문건 유출로 인한 엄벌을 내린 채 사건을 종결시켰다.


 이외에도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가 불거지자 '셀프 감금'이라는 희대의 자작 쇼를 기획하던 악마 김기춘은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프레임 전환을 통해 위기를 벗어났다. 오히려 그때마다 그는 특급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출세가도에 올랐다. 김기춘은 프레임의 효과를 너무나 잘 알았고, 뛰어난 두뇌로 수많은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며 어떠한 상황도 본인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했고 수많은 국민들이 '사건의 본질'을 놓친 채 여론전에 휘둘리며 혼란에 빠졌다.


 이처럼 프레임이란 것은 당장 우리 눈 앞에 보이는 물체나 물질이 아니다. 정신에 가깝다. 이처럼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프레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스며든 채 우리들의 눈과 귀를 전부 가려 버린다.


ⓒ 쥐덫과 프레임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프레임 형성이 마치 '덫에 치즈를 설치하고 순진무구한 쥐들을 유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눈 앞에 치즈만 보다가는 어느 순간 덫에 걸릴지 모른다. 그렇기에 항상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영 방송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명한 학자의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외 다양한 이유로 주어진 정보를 쉽게 믿는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덫을 숨긴 채 달콤한 치즈만 보여주며 순진한 인간들을 꼬시려는 악마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이러한 프레임 전쟁이 정치 분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당장 우리 곁에도 수많은 프레임이 있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심지어는 가족 사이에서도 말이다. 아들이기에 축하받고 딸이기에 외면받는 이러한 가슴 아픈 현실도 집안의 프레임이 그렇게 형성된 탓이 아닐까. 우리는 이렇듯 각자 다른 프레임에 갇혀 있지만 그러한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간혹 소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부조리를 느끼고 목소리를 내면 오히려 불편함을 느낀다. '뭐가 저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을까?'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물론, 얼마 전까지 나도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 대던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 이러한 심리를 너무나도 잘 안다.


 지금 이 순간, 나도 아직까지 어떤 프레임 안에 갇힌 채 이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인간은 영원히 각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리를 찾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결국 끝없는 자아 성찰과 비판 의식을 통해 모든 걸 의심하고 또 의심해봐야 한다.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보자. 나도 나만의 프레임에 갇힌 채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나 내가 치즈만 바라보다 덫에 걸린 쥐와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물론 인간은 덫에 걸려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를 때리지도, 괴롭히지도, 죽이지도 않으니 말이다. 결국 모든 인간은 나도 모르게  프레임이라는 덫에 갇힐 수밖에 없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그러나 덫에 걸린 채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쥐가 아니라, 덫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발버둥 치는 그런 쥐가 되고 싶다. 겉으로 보기엔 둘 다 똑같이 덫에 걸린 쥐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둘의 본질은 다르다. 덫에 걸린 채 무기력하게 죽어갈 것인지, 새로운 세상을 위해 발버둥 칠 것인지는 여러분 개인의 판단에 달렸다.


명심하자.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프레임을 만들며 그 안에 우리를 가두기 위해 달콤한 치즈를 열심히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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