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공론장⑩ 「당신의 어린이집은 안녕하십니까?」 들어가기
시끌벅적한 효과음을 곁들여 의결을 진행하는 모습이 관습적이지 않아서 낯설면서도 즐거웠습니다. 지난 10월 1일 첫 번째 『N개의 공론장』을 ‘연출’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의 이야기인데요.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장을 만드는 단체인 바꿈은 상투적인 공론의 풍경을 뒤로하고, 보다 많은 이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창의적인 공론 형식을 시도합니다. 서로 대립하는 이슈를 두고 토론 과정을 거친 뒤 애초 가지고 있던 의견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조사해보는 정책 배틀 방식, 계속적인 숙의와 투표를 통해 의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거르고 걸러 우선순위를 만드는 선호 투표 방식 등이 있습니다.
내년엔 이 실험들의 결과를 이른바 공론장 가이드북으로 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낯선 ‘공론장’의 형식이 정책을 만드는 제도로 정착되는 것을 상상해보셨나요? 확성기를 가지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대화의 장소를 상상합니다.
어린이집 보육 교사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 「당신의 어린이집은 안녕하십니까?」를 준비 중인 바꿈의 활동가 홍명근 씨를 만났습니다.
인터뷰이: 홍명근(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인터뷰어: 정아람(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일시: 2018년 11월 8일 오후 4시
Q: 어린이집 현장에서 일하는 보육 교사를 초대해 이야기를 듣습니다. 왜 교사의 목소리에 주목하게 됐나요?
홍명근: 사실 어린이집 이슈는 워낙 뜨거워서 다들 알 거예요. 원장들의 비리와 부정이 계속 고발되고 있잖아요? 지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문제들이 대부분인데, 그 전부터 계속 사건 사고가 있었어요. 안전 문제, 학대 문제, 폭력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사회적 논의는 원장과 학부모의 갈등에 집중되어 있어요. 저희는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어린이집 교사의 목소리가 잠겨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원장들은 파워가 있고 학부모도 돈을 내는 소비자잖아요. 이 사이에 끼인 선생님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주체가 아닌가, 그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그러면 참여자들이 유치원 교사들을 직접 만나 목소리를 듣는 경험을 하겠군요?
홍명근: 테이블마다 어린이집 원장, 학생, 관계자, 일반 참여자를 섞여 앉힐 거예요. 문제에 서로 공감하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먼저 공감을 이뤄야 하는 게 공론장의 특징이거든요. 그러면서 대안을 뽑아내고, 투표를 통해 어린이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뽑을 거고요. 창의적인 대안들이 그러모이는 자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모아 내년에 어린이집 교사에 관한 책을 낼 예정이에요.
Q: 이 공론장이 책을 내는 과정의 하나인 셈이네요?
홍명근: 네, 맞아요. 그게 이번 공론장의 핵심적인 목표예요.
Q: 지난번 「개인정보 ‘톡톡(knock-talk)하기’」 공론장에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요?
홍명근: 개인정보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전문가만 모신 게 문제였어요. 일반 개인들에게는 개인정보 보호가 중요한 이슈이지만, 스타트업 업계나 4차 산업혁명에 동조하는 쪽에서는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높거든요. 개인정보 문제의 합의를 이루려면, 그분들이 주장하는 산업의 필요성과 효용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파해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가이드가 조금 더 극명하게 나올 테죠. 그날 결과가 너무 모호하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많았어요. 원래는 10개의 대안으로 리플렛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걸 보류하고 스타트업 종사자, 정부 관계자, 시민들이 모여서 다시 논의하자는 흐름이에요. 한 번 더 숙의 과정을 거치자고 합의됐어요. 지난번 공론장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가이드였다면, 거기에 반박해가면서 좀 섬세한 의견들이 나오면 좋겠죠.
Q: 양 극단의 의견이 충돌하면 충돌할수록 더 세세한 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홍명근: 독일에는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 협약’이라는 게 있대요.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서 교육에 대한 협약을 이루는 거예요. 저희도 그런 식으로 20-30대 참가자를 모아 계속 토론하면서 남북 관계에 대한 협약을 찾아가는 공론장을 기획하고 있어요. 그건 좀 장기적으로 가져가고 있고, 올해는 파이를 넓히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Q: 대화의 과정이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은 거네요?
홍명근: 그렇죠. 합의를 봐야 하는 거니까요. 합의가 안 되면 공론장은 실패한 거니까요. 장기적으로 보면 언젠가는 합의가 될 거라고 봐요. 또 반대 측과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Q: 바꿈은 공론장을 만드는 게 업인 단체잖아요. 전문가와 시민이 교류하는 대화의 장이라는 것을 만들 때, 그 대화 형식을 조직하는 전략이 있는지, 거기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홍명근: 한정된 예산과 시간을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호해요. 주제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크게 다섯 가지 정도의 방식을 써봤어요. 첫 번째는 정책 배틀, 극명하게 갈리는 두 가지 쟁점을 두고 시민들이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에요. 혐오 사이트 폐쇄/유지, 검찰 개혁/선거법 개혁, 대통령제/내각제, 이런 문제들을 다뤘습니다. 시민들이 사전에 내용을 숙지하고 와서 투표를 해요. 그 다음 전문가가 나와서 논쟁하고, 또 시민들이 조별 토론을 한 뒤 의견이 얼마나 바뀌는지를 조사해요. 두 번째는 선호 투표 방식입니다. 얼마 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정상에게 바라는 점을 거두는 자리를 통일부, 평화교육 단체 피스모모와 함께 만들었어요. 일단 온라인에서 의견을 받아 수백 가지가 쌓이면 투표를 하고 토론과 숙의의 과정을 거칩니다. 비핵화, 의전, 대화, 문화 등 조별로 안건을 투표해서 정하고 전체를 모아 또 투표해요. 최종적으로 남북 정상에게 바라는 열 가지 우선순위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를 통일부에 전달했어요.
Q: 공론장을 출판의 과정으로 삼았다고 앞서 말씀하신 점도 흥미로웠어요.
홍명근: 네, 세 번째 방식이 그에 관련돼요. 시민 참여를 통한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이요.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만 하고 끝나면 너무 아깝잖아요. 의미도 없고. 그래서 후속 결과물에 굉장히 신경을 씁니다. 1형 당뇨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흔히 소아 당뇨라 불리고 편견이 많아서 제도 및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의식이었어요. 해외에는 1형 당뇨 환자를 위한 가이드가 있는데 한국에는 없거든요. 그래서 해외 가이드를 바탕으로 스터디를 진행한 다음 환자, 보호자, 변호사, 의사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게 했어요. 국제 토론회 1회, 공론장 1회 열어서 사례를 모으고 토론을 거쳐서 그 결과를 책자로 만들어냈고요. 1형 당뇨 인식 개선을 위한 아홉 가지 방향이 담긴, 시민이 쓴 리플렛으로 발표했죠.
Q: 메시지를 퍼트리기에도 효율적일 것 같아요. 또 다른 형식의 결과물도 있었나요?
홍명근: 작년 7월, 직장 내 갑질 문제를 연극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되게 재밌었어요. 먼저 사람들이 모여 사례를 공유해요. 성희롱―근데 성희롱은 연극하기가 부담스러웠는지 아무도 안 했고, 욕설,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요.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그분들이 직접 연극을 기획해요. 그 다음 무대에 올라 상연하는 건데, 그에 앞서 저희가 섭외한 극단 배우분들이 20분 정도 시연을 했어요. 취업이 안 되던 한 사람이 너무 좋은 기회로 직장에 들어갔는데, 문제가 많은 거예요. 앞서 나온 다양한 문제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래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질문하며 끝나요. 그러면 참여자들이 그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쓰는 거예요. 6개 조의 발표가 끝나면 참가자들이 마음에 드는 극에 투표를 하고요.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극을 극단이 편집해서 최종적으로 올해 말에 연극으로 올립니다. 현재 포스터까지 나온 상태고, 내일부터 홍보할 예정이에요.
Q: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든 언어들을 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공감의 문제와도 연관되는 것 같아요. 공론장은 공감의 매체이기도 하군요?
홍명근: 서로 공유하며 공감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쉽지는 않죠. 어려운 일이지만, 그걸 보완하기 위한 몇 가지 기술적인 요인들이 있기도 해요. 공론장에 와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뭔가를 하도록 만드는 거죠. 저희는 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끊임없이 리액션을 유도해요. 단순히 상품을 거는 방법도 있고, 하다못해 박수라도 유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바꿈은 크게 세 가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공론장을 만드는 사업. 공론장의 주체가 되는 20-30대를 위한 청년 사업. 공론장에서 건져 올린 콘텐츠를 발행하는 사업. 청년 사업 중심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콘텐츠 사업으로 이어져 현재는 공론장 사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사업들은 서로 포개져 하나의 프로세스를 이룹니다. 청년 주체가 공론장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2015년 설립된 바꿈은 애초부터 2020년 해산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공론장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명근: 바꿈이 가진 5년이라는 기한 동안 어떤 걸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사람들 이야기를 더 많이 모아야 되고 더 많이 알려야 되고, 다시 한번 토론과 숙의를 거쳐 사회에 창의적인 대안으로 내놓는 기획이면 좋겠다,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 싶었죠. 5년 뒤에 없어지니까 차라리 다른 단체들이 더 잘할 수 있는, 20-30대가 와서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그쪽으로 모든 노력을 쏟겠다는 합의가 처음부터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공론장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 거죠.
헌법 개헌이 화제였던 작년에는 미래 세대인 20-30대가 풀어낼 수 있게 개헌에 나온 다양한 이야기를 공론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Q: 사람들이 공론장에서 배우고 깨닫는 모습에 어떤 보람을 느끼시나요?
홍명근: 많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있게 다가와요. 특별한 점은 다양한 의제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물론 깊이는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다양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자신의 생각에 머물지 않고, 제가 가진 고정 관념이나 편견을 많이 깰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일을 하다 보면 일을 일로서 빨리 해치우려는 습성이 생기는데, 공론장을 함께 만드는 단체 혹은 개인들과 느리더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좀 더 숙의하게 돼요. 이런 점이 초심을 다시 잡게 해줍니다. 네트워킹의 중요성도 느끼고요.
Q: 누차 ‘합의’를 말씀하시는데요. 그게 왜 중요한 건가요?
홍명근: 우리 사회에서 수없이 많은 갈등이 일어나잖아요. 지역, 세대, 성별, 경제적 격차…… 임대아파트에 살면 아이들이 ‘휴먼 거지’라고 부른대요. 휴먼 거지인 아이들과는 놀이터에서 같이 안 논대요. 누구한테 배웠을까요? 제 또래의 부모일 거 아녜요? 그런 것들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 상식 수준에서의 합의가 있으면 최소한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았겠죠. 사회적으로 서로 이해와 공감이 안 됐던 거예요. 남북한도 서로를 하나의 프레임으로만 보다 보니까 합의가 어렵죠.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라고 하면 아직은 한반도를 그리는 사람이 많대요. 그 인식 속에서 대화를 한다면 일정 부분 양보와 타협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해요. 충돌하는 입장을 가진 이들이 서로 만나는 공간을 거듭 연다면,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합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해 없이, 공감 없이, 마냥 혐오하고 배제하는 이유는 합의 과정이 누락됐기 때문에 나온 결과인 거죠.
N개의공론장⑩
「당신의 어린이집은 안녕하십니까?」
―어린이집 교사 이야기
일시: 11월 24일 (토) 14:00 – 17:00
장소: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다목적홀
대상: 함께 고민해보고자 하는 누구나!
주요프로그램:
1부 어린이집 보육교사 이야기 (50분)
- “지금 아이들은 어떨까?” 김예은 전 보육교사(경력4년)
- “감시받는 교사, 감시하는 교사?” 이재필 전 보육교사(경력 5년), 경희대학교교육대학원 유아교육전공 재학 중
- “영유아 교사는 퇴근 안 해요?” 이세리 보육교사 육아휴직 중(경력7년)
- “영유아 교사를 바라보는 가혹한 시선” 손여울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유아교육전공 재학 중, 현 유치원교사(경력4년)
- “영유아 교사 직업에 만족하나요?” 방현 현 보육교사(경력 4년)
2부 조별 토론 (60분)
3부 전체 토론 (60분)
원활한 공론장 진행을 위해 60명 인원 제한이 있습니다.
간단한 다과가 제공될 예정입니다.
사전에 자료집을 미리 숙지하고 참가하셔야 공론장의 토론과 숙의가 원활하게 진행됩니다.
자료는 이메일로 발송되며 문자로 통지합니다.
참여 확정 연락은 문자를 통해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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