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 사양산업이다.
산업혁명은 늘 기존 일자리를 위협해왔습니다. 방직기는 동물의 털로 옷감을 짜던 영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했고, 자동차는 마차 산업이 퇴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그럼 4차 산업혁명은 어떤 산업을 위태롭게 만들까요?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은 건 택시업인 듯합니다.
지난 2018년 12월 택시기사 10만 명이 국회 앞에 모여 파업을 결의했습니다. 택시 총파업의 시작은 카카오 모빌리티가 ‘카풀’ 서비스를 도입하면서부터였습니다. ‘카풀’ 서비스는 방향이나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끼리 한 대의 자동차를 타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차량 공유 서비스인 거죠. 예를 들면 좀 더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출·퇴근길이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한 차를 타고 출·퇴근한다거나, 우리 집 애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김에 옆집 애들도 같이 데려다주면서 소량의 비용을 받는 것이 '카풀' 서비스가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카풀을 택시와 달리 허가받은 운전자가 없습니다. 차량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카풀 운전자가 될 수 있죠. 택시 운전기사 10만 명이 거리로 나와 파업을 결의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누구나 카풀 운전자가 될 수 있다면 택시기사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까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카풀 서비스는 불법입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누군가를 차에 태운 대가로 비용을 받으려면 국토해양부 장관으로부터 발급받은 면허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따라서 출근길이 같은 방향인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돈을 지불하는 카풀 시스템은 현행법상 불법인 것입니다. 다만 예외 조항을 두고 있는데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인 승합자동차를 임차한 사람에 한해서는 돈을 받고 차를 태워줘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아는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의 차량이 모두 승합차인 것입니다.
차량 공유 시스템을 놓고 일자리를 지키려는 택시업계와 신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모빌리티 플랫폼 간의 대치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택시업계는 ‘타다’가 렌트한 차량을 운송 사업으로 쓰고 있다며 여객자동차 운송법 34조를 이유로 불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객자동차 운송법 34조에 따르면 “자동차 대여사업자의 사업용 자동차를 임차한 자는 그 자동차를 유상으로 운송에 사용하거나 다시 남에게 대여하여서는 아니 되며, 누구든지 이를 알선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자칫 일자리를 대거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요즘 택시업계에선 차량 공유 서비스가 굉장히 중대한 사안입니다. 그래서 차량 공유 서비스에 대한 약간의 움직임만 보여도 파업 집회를 엽니다. 그 과정에서 벌써 세 분의 기사님이 차량 공유 서비스에 반대하여 분신하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치권은 카풀 문제를 조율하고자 자가용을 유상으로 공유할 수 있되 그 시간을 출퇴근 시간으로 한정하는 중재안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이 중재안은 택시업계와 모빌리티 플랫폼 양쪽 모두에게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택시업계에선 어쨌든 차량 공유 서비스를 일부 허용하는 것이니 타격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강력 항의했습니다. 모빌리티 플랫폼 쪽은 하루 오전 7~9시, 오후 6~8시(주말, 공휴일 제외)로 한정한 중재안으로는 사업을 원활하게 운영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택시가 운행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니 모빌리티 플랫폼 입장에선 사업 유지가 힘들겠죠. 결국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 이 싸움은 모빌리티 플랫폼이 한 걸음 양보하면서 일단락이 났습니다. 지속되는 택시업계의 반발과 제한된 운행으로 인해 사업 확장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카카오 카풀이 택시회사를 인수하기로 한 겁니다. 모빌리티 플랫폼이 카풀 서비스 대신 택시를 직접 운영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보는 걸로 노선을 바꾼 것이죠. 카카오처럼 자본이 많지 않은 모빌리티 플랫폼들은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열약한 환경 속에서 카풀 서비스를 이어가던 ‘어디고’는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사실상 국내 모든 카풀 서비스가 종료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죠. 하지만 카풀 서비스는 조만간 다시 부상할 것입니다. 카풀 서비스의 잠재적 시장 가치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카풀이 택시보다 훨씬 더 이용하기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새로 등장한 기술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구시대의 기술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곤 했습니다. 19세기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마차와 마부들이 역사의 그늘로 사라진 것처럼요.
1800년대 초까지 영국 시내의 주된 대중교통은 마부들이 끄는 마차였습니다. 그러던 중 1860년 대에 이르러 영국 거리에 자동차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굴러다니는 쇳덩이처럼 보였던 자동차는 마부들에게 점점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가게 됐습니다. 희한하게 생긴 이 덩치 큰 쇳덩이는 매우 큰 소리를 낼뿐만 아니라 속도도 제법 나갔고 무엇보다 마부처럼 운전자가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개인이 직접 운전하면 됐으니까요. 자동차가 더 많이 보급될수록 마부들의 일자리는 사라질 게 뻔했습니다. 편리성 면에서, 속도 면에서 마차는 자동차를 따라갈 수 없었으니까요. 이에 마부들과 마차 회사는 곧장 긴급회의에 들어가게 됩니다. 자동차로부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였죠. 오랜 고민 끝에 마차 회사는 기가 막힌 법안을 정치인들에게 로비하기로 합니다. 그게 바로 ‘붉은 깃발법’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법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자동차를 탈 경우 반드시 운전사, 기관원, 기수 이 세 명의 사람들을 동행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기수입니다. 운전사는 운전을 해야 하고, 기관원은 석탄을 때야 하니 이해가 가는데 기수는 왜 필요했을까요? 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로부터 55m 떨어진 앞에서 자동차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뒤에 차가 오고 있으니 안전을 위해 비키라면서요. 신호등이 없었던 시절 일종의 신호등 역할을 기수가 한 것입니다. 또 자동차 속도는 시간당 6.4km를 넘지 않도록 제한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무식한 쇳덩이가 너무 빨리 달릴 경우 지나가는 말들이 놀라 폭주할 가능성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하죠.
오늘날 트라팔가 광장을 거니는 영국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세상 이런 멍청한 법이 어디 있냐며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뒤에 자동차가 오고 있으니 비키라며 붉은 깃발을 흔드는 사람과 그 뒤를 쫓아 서행하는 자동차의 모습이 얼마나 웃깁니까. 그러나 이 법은 영국에서 무려 30년 동안 유지됐습니다. 그 덕에 마차 회사와 마부들은 자동차가 등장하고도 오랜 시간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고 수익을 낼 수 있었죠. 하지만 이는 훗날 영국 자동차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뒤처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붉은 깃발법으로 인해 초기 성장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자동차 산업을 옆 나라 독일에게 빼앗기고 있죠.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욕심을 낸 마부들 때문에 아직까지도 영국 자동차산업은 일본, 독일, 미국 심지어는 우리나라 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30년이 150년을 앗아간 겁니다.
우리가 지금 그런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택시라는 구시대 산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카풀이라는 신산업에 뛰어들 것인지, 구산업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하는 그런 갈림길 말입니다. 자동차가 결국 마차를 밀어냈듯 카풀 역시 택시를 밀어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예견된 미래입니다. 시민들은 지속되는 택시 승차거부, 불친절함에 피로도가 쌓일 대로 쌓여 있습니다. 반면 카풀은 거리에 상관없이 목적지만 같다면 승차 거부될 일이 없고, 운전기사가 불친절하면 다음에 그 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그만이죠. 또 카풀은 시민들에게 심심찮은 일거리도 됩니다. 카풀 서비스는 법만 바뀌면 언제든지 운행이 가능할 정도로 이미 모든 베이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안 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머뭇거리는 동안 세계적으로 카풀 서비스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우버는 전 세계 41개국 150개 도시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기업 가치는 1,200억 달러로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인 포드, 크라이슬러, GM의 기업 가치를 합한 것보다 높습니다. 중국에선 ‘디디추싱’(중국 차량 공유 시스템) 사용자가 3억 명이 넘었으며, 동남아의 교통 시스템은 ‘그랩’(동남아 차량 공유 시스템)으로 연결되고 있거든요. 쭉쭉 뻗어 나가는 외국과 달리 우린 택시산업을 살려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택시산업은 살린다고 살릴 수 있는 산업이 아닙니다. 자율주행 자동차 사용화가 눈 앞에 다가왔는데 택시가 살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