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를 탑재한 의사 로봇
자녀를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시험지 유출은 물론이거니와 살인까지 숨긴 대한민국 상위 0.1% 집안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굉장한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실제로도 저럴까?” 싶었지만 드라마 밖 현실은 드라마 못지않았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길이길이 남을 국정농단의 주인공이었던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부정입학, 속속 드러나는 정치인들의 자녀 부정입학, 특혜 채용은 드라마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드라마 속 주인공 예서가 택시기사, 자동차 제조업 노동자, 서빙 아르바이트생 등 사라질 직업들에 관한 뉴스를 봤다면 뭐라고 얘기했을까요? 아마도 이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쟤넨 못 배우고 열등한 애들이고 난 우월하고 잘난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까, 난 의대 갈 거니까 괜찮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서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예서가 의사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대상은 슈퍼컴퓨터를 탑재한 로봇이기 때문입니다.
4차 산업혁명 바람은 열등한 유전자와 우월한 유전자, 못 배운 사람과 배운 사람을 구분해서 누구에게는 혁명의 바람을 덜 불고 누구에게는 토네이도처럼 강하게 불지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산업혁명이란 단어 그대로 모든 산업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당연히 의사도 예외는 아니란 얘기입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녀가 이공계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면 전부 의대에 보내려고 합니다. 반면 국가 경제 성장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다른 이공계열이나 과학자가 되는 길은 멀리하게 합니다. 예컨대 의대에 진학하는 게 경제적으로나, 전망으로나, 고용의 안정성으로 보나 의사가 다른 이공계 직업들에 비해 훨씬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 과연 의사는 4차 산업시대에도 안정적일까요? 의사의 전망을 알아보기 위해 잠시 미래의 진료 방식을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디가 아프면 그제야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습니다. 통증이 있기 전까지는 우린 우리 몸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미래엔 굳이 통증이 없어도 내 건강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즘 스마트 워치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 워치가 단순히 시간만 알려주던가요? 잠시 애플의 광고를 통해 애플 워치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애플은 애플 워치를 광고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시계니까 시간도 표시합니다. 그리고 전화도 받죠. 잠도 깨워주고. 심호흡할 때도 알려주고, 심장의 정기적 활동을 측정하는 센서로 심박수도 측정합니다.” 이처럼 시계인 애플 워치는 당연히 시간을 표시합니다. 그러나 그 밖의 다양한 것들도 한다는 광고처럼 애플 워치의 기능은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눈여겨보는 건 심박수, 혈당, 혈압 등 건강 지수를 항상 체크한다는 것입니다. 스마트 시계가 건강 지수를 항시 체크한다면 머지않아 우린 시계로부터 이런 알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혈압과 심박수가 평소와 다르니 가까운 병원에 방문해보시는 게 어떨까요?”하고 말이죠.
병원에 가지 않아도 진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내 몸의 이상 증후가 나타나면 스마트 워치가 데이터를 병원으로 보내고 병원에선 간단한 진단이 문자로 날아올 수도 있죠. 나도 모르는 사이 병원 진료를 받는 것입니다. 또 잠자는 사이 내 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삼성에서 개발한 ‘슬립센스(SLEEP sense)’는 1cm 두께의 작은 원형 IoT(사물인터넷) 제품입니다. 이 ‘슬립센스’를 매트리스 아래 두고 자면 잠자는 동안의 호흡, 맥박,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분석합니다. 잠자는 사이 심근경색 증상이 일어나거나 불규칙한 심박동이 일어나면 ‘슬립센스’가 병원으로 데이터를 전송하고 위급상황이다 싶으면 병원에선 즉각 앰뷸런스를 내 집으로 보내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보통 몸이 안 좋아서 동네병원에 가면 뭘 하던가요? 맥박을 재고 청진기를 대보고 결과가 애매하면 “큰 병원에 한 번 가보세요.”라고 하지 않던가요? 1차 병원에서 하는 초진들을 웨어러블 기기들이 대신하는 시대가 오는 겁니다. 예서가 꿈꾸던 의사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는 거죠. 이 같은 원격의료에 필요한 기술은 현재 모두 완성되어 있습니다. 시계와 베개는 이미 간단한 건강지수들을 다 체크할 줄 압니다. 모아진 건강지수들을 데이터화 시켜 빅데이터 기술로 이상 증후가 있는지 파악하는 기술도 현존합니다. 이상 증후가 포착되면 즉시 병원으로 넘기고 병원에선 한 번 더 검진한 후 내원하라는 문자를 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과정들인 원격의료서비스를 법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원격의료가 가능해지면 의료영리화로 이어질 수 있고 대학병원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아 원격의료 법안은 제자리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도 원격의료로 인해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몰릴 경우 동네병원 기능이 상실할 수 있어 거부하고 있습니다. 즉 원격의료는 법만 바꾸면 지금이라도 가능하지만 이는 동네병원 의사들의 일자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실현이 안 되고 있는 겁니다.
그럼 대학병원 의사들의 상황은 좋을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정부가 의사 수가 적은 것을 대비하여 의대 정원 수를 늘리고, 공공 의대 설립을 발표한 것에 대해 의사들이 파업에 들어갔던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파업 중 의사협회에서 전교 1등 의사와 공공 의대 의사를 비교하는 게시물을 올려 비판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요. 게시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A.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했던 의사 B. 성적은 한참 모자르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이 게시물이 논란이 일자 의사 협회는 하루 만에 게시물 선택지를 수정했습니다. ‘A. 정당한 경쟁과 입시전형을 통해 꿈꾸던 의대에 진학한 의사. B. 선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시민단체 추천으로 공공 의대에 진학한 의사.’ 선택지가 바뀌긴 했지만 이 게시물이 묻는 건 같았습니다. ‘더 똑똑한 의사한테 진료받고 싶지 않느냐.’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사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아서, 혹은 수능점수가 높다고 진료 잘하는 의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좋은 의사의 역량을 판가름하는데 수능과 학교 성적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작용합니다. 예컨대 큰 수술을 할 경우 의사는 팀을 꾸려 수술을 진행합니다. 그럼 리더의 자질도 있어야겠죠. 위급한 상황에서는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밖에도 윤리적인 태도, 많은 수술 경험도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단지 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 1등, 수능성적만을 강요하는 의사들이 있어 이런 질문을 들여볼까 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들보다 훨씬 더 똑똑한 슈퍼컴퓨터를 탑재한 AI 의사가 나타난다면 순전히 물러날 것이냐고요.
지난 2016년 가천 길병원은 인공지능 의사 왓슨을 암 환자 치료에 도입했습니다. 왓슨은 미국 컴퓨터 회사 IMB에서 만든 슈퍼컴퓨터입니다. 슈퍼컴퓨터 왓슨엔 무려 290종의 의학저널, 200종의 교과서, 1200만 쪽에 이르는 의학 전문 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왓슨은 이 많은 자료들을 토대로 의사가 환자의 정보(조직검사, 혈액검사, 유전자 검사 등)를 입력하면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 방법을 제시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들과 수십 년에 걸쳐 환자들을 진료한 의료 내용들을 바탕으로 진료하는 왓슨은 때론 의사들이 생각하지 못한 최적의 치료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의학계에선 권위 있는 교수의 처방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 왓슨이 길병원에서 진료한 환자만 위암 환자 14명, 대장암 환자 23명 등 85명이라고 합니다. 로봇의 진료는 더 이상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아닌 현실이 됐습니다. 여기서 저는 의사들이 물었던 질문을 조금 변형해서 다시 의사들에게 물어볼까 합니다. ‘A. 1,200만 쪽에 이르는 의학 전문 자료를 탑재한 인공지능 의사. B.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의사 여러분은 누구에게 진료받고 싶으신가요?’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한 건 팩트입니다. 특히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의사 수는 점점 더 부족해집니다. 서울 종로구는 인구 1천 명당 의사가 16명이나 있지만 강원도 고성엔 0.45명뿐입니다. 의사 정원 확대는 의사 일자리 감소의 시작일 뿐입니다. 의사들이 곧 경쟁하게 될 의사는 공공의대생이 아니라 AI 의사일 테니까요.
의사 못지않게 의료계를 책임지고 있는 약사들도 자동화로 인해 역할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핀란드 헬싱키 대학병원은 최근 약제실을 모두 자동화하였습니다. 무작위로 뒤섞인 약들을 컨베이어 벨트에 쏟아놓으면 로봇이 약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라벨링 작업을 합니다. 약사들은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해 처방하기만 하면 됩니다. 기존에 약을 제조하던 약사의 역할이 이곳에선 대부분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헬싱키 대학의 약사들은 약사의 새 역할을 찾는데 몰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으로 늘어난 잉여시간을 환자들과의 상담을 더 한다거나 연구나 공부에 더 매진하는 것으로요.
약을 제조하는 건 학위와 자격이 있는 약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었습니다. 약사들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였죠. 하지만 이 같은 약사의 역할은 앞으론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의 연구진들이 만든 3D 프린터를 사용하면 누구나 쉽게 약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이 3D 프린터가 시중에 공급되면 약국에 가는 대신 집에서 약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위기는 전문직과 비전문직을 가리지 않습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라는 신기술에 따라가지 못하는 직업들 모두가 사라지거나 역할이 줄어드는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의대와 약대를 최고 대학으로 예우합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예서’처럼 의대만 가면 남은 인생이 쭉쭉 필 줄 아는 학생들도 대단히 많습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인식입니다. 지금은 산업이 송두리째 변하는 시기입니다. 약사는 사라질 직업 1위에 올랐고, 의사는 AI와 경쟁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의대·약대가 우리 사회에 가장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건 문제라고 봅니다. 앨빈 토플러는 10년 전에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 10시간씩 공부한다.”라고 얘기했습니다. 10년 전 학생이었던 저와 제 또래들은 토플러의 예측이 실현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더니 필요 없는 지식이 됐고, 그때 유망했던 직업은 존재의 위기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산업이 변화하고 세상이 변할 땐 그에 맞게 교육, 사회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변화를 거부했던 사회는 항상 도태됐고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던 조선이 그랬고, 자동차를 거부했던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