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은 제 첫 알바였습니다.
제 첫 아르바이트는 서빙이었습니다. 2013년 수능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던 겨울 저는 강남역 인근 레스토랑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서빙을 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하며 160만 원가량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도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저는 서빙으로 용돈을 벌었습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도 서 있어야 하는 점, 북적이는 식사시간엔 쉴 틈 없이 날라야 해서 다리가 좀 아픈 걸 빼면 서빙은 나름 괜찮은 아르바이트 일자리였습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서 페이도 제법 두둑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일식집에선 시간당 9천 원이 넘는 돈을 받으며 일했으니 지갑이 제법 두꺼워졌죠.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 서빙은 저 같은 사회초년생(대학생 포함)들에게 인기 많은 아르바이트 자리입니다.
그런데 최근 기술이 없는 저 같은 사회초년생들이 주로 찾는 서빙 아르바이트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혹시 ‘문과로 진학하나 이과로 진학하나 결국 노년은 치킨집이다.’라는 치킨집 수렴의 법칙을 들어보셨나요? 이 말은 자영업자가 많은 우리나라 현실을 비꼰 말이었습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는 이 말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팩트입니다. 국내 치킨집이 전 세계 맥도널드 점포보다 많거든요. 엄청난 숫자죠? 이렇게 된 데엔 음식점을 쉽게 차릴 수 있는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한 전문성이 없어도 프랜차이즈를 통해 쉽게 가게를 차릴 수 있어 요식업은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뿐만 아니라 퇴직한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거든요.
그러나 시작은 쉬워도 유지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가게가 많으면 그만큼 경쟁해야 할 대상들도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내 가게를 차렸다고 가정해봅시다. 요식업으로 성공하려면 회전율이 좋아야 합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많이 팔수록 수입이 늘어나는 요식업은 손님들이 빨리빨리 먹고 떠나 줘야 하죠. 그러나 문제는 손님이 없을 때입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요식업은 홀의 존재가 필수였습니다. 먹고 갈 자리가 있어야 음식을 판매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사장님들은 항상 고민을 합니다. 홀을 늘리자니 손님이 안 오면 임대료만 축 낼 것 같고, 홀을 줄이자니 회전율이 고민되죠. 인테리어 비용이나 식기 구입 등 사업 시작 초창기 비용도 요식업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자들의 고민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최근 배달시장 규모가 늘어나면서 요식업계에도 새로운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공유주방입니다. 차량공유는 머릿속에 쉽게 그려져도 공유주방은 아마 잘 그려지지 않으실 겁니다. 공유주방의 기본원리는 사용자가 주방을 시간 단위, 혹은 월 단위로 계약해 주방을 사용하는 겁니다. 공유주방 업체는 사용자에게 운영에 필요한 배달 시스템, 조리 기구, 식자재, 촬영 스튜디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죠.
요식업계에 새로 등장한 공유주방에선 기존 식당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던 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공유주방의 주된 수입원은 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유주방의 주된 수익 타깃은 바로 배달시장입니다. 배달시장의 규모는 매년 눈이 부시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2018년 15조였던 배달시장 규모는 2019년에 이르러 23조로 성장했습니다. 무인 자동차는 물론 드론까지 배달시장에 도입된다고 하니 시장규모는 앞으로 더 성장할 겁니다. 배달시장의 성장은 그동안 식당의 핵심이었던 홀을 점점 밀어내고 있습니다. 홀이 없는 공유주방은 어떤 모습일까요? 홀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아르바이트생들도 사라지게 됩니다. 제겐 서빙이 첫 알바였지만 몇 년 뒤 수능을 마치고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은 서빙 자리를 구하지 못할 확률이 높을 겁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최저임금이 매년 오른다면 사장님들도 기존 식당을 폐업하고 공유주방을 더 선호하겠지요. 공유주방은 비용 부분에서 기존 식당에 비해 훨씬 저렴합니다. 일단 서빙 아르바이트생의 인건비가 안 듭니다. 또 조리에 필요한 식기들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초기 자본도 줄일 수 있습니다. 혹여나 폐점을 할 때도 식기 처분에 관한 고민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공유주방 업체에 반납하면 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홀이 없고 주방만 있는 공유주방은 임대료가 저렴합니다. 주기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인테리어 비용도 없습니다. 요식업을 준비하시는 분들께는 공유주방이 기회가 될지 모르겠으나 저처럼 체력 말고 아무것도 없는 사회초년생들에겐 공유주방은 또 하나의 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서빙 알바가 없어질 위기는 또 있습니다. 로봇 때문입니다. 최근 배달 중개 플랫폼 ‘배달의 민족’은 서빙로봇을 개발해 시연에 나섰습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식당에서 시연한 이 서빙로봇은 점원이 테이블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테이블로 음식을 가져다줍니다. 선반이 달린 이 로봇은 최대 7 접시까지 배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한 번에 많이 서빙하면 양 손에 한 접시씩 들고 팔과 가슴에 한 접시를 끼워 세 접시씩 날랐는데 저보다 더 나은 거죠. 오작동이 일어날 확률도 0.6%에 불과했다고 합니다.(그마저도 직원의 실수였다고 하니 0%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또 요즘 프랜차이즈 식당에 가면 키오스크 앞에 길게 선 손님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직은 키오스크 주문이 서툴러 전보다 주문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지만 키오스크 역시 서빙하는 사람들을 줄여나가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서빙 못지않게 사회초년생들이 많이 찾는 카페 알바도 위기입니다. 최근 바리스타 로봇을 둔 카페들이 서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로봇 팔처럼 생긴 바리스타 로봇이 내리는 드립 커피는 늘 같은 온도에서 적량 축출하여 맛이 늘 일정하다고 합니다. 커피 프랜차이즈 기업 달콤커피는 2018년 커피 로봇 ‘비트’를 선보였습니다. ‘비트’는 고객이 달콤커피 앱을 통해 주문을 하면 커피를 만듭니다.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비트’는 시간당 최대 90잔의 커피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많은 카페들이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안 그래도 커피 한 잔 시켜놓고 3~4시간씩 카페에 머무는 사람들 때문에 ‘커피 한 잔으로 몇 시간 있는 게 적당한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으니 커피 로봇은 카페 운영의 새로운 판로를 열 것입니다. 또 무인 카페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무인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 라떼 등 다양한 커피를 자판기가 내려줍니다. 맛도 우리가 흔히 아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내려주는 커피 맛과 똑같죠.
서빙과 카페 알바는 아직 능력 없는 사회초년생에겐 꼭 필요한 일자리입니다. 비록 하루 10시간씩 일해도 한 학기 대학 등록금도 벌 수 없는 작디작은 돈이지만 그나마 이런 일자리라도 있으니까 밥이라도 먹고 삽니다. 서빙과 카페 알바마저 사라지면 대학생들은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요? 이런 일자리라도 없으면 사회초년생들이 취직할 때까지의 시기를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그러나 저는 택시기사님들처럼 사회초년생들의 연착륙을 위해 서빙과 카페 알바 자리를 없애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기술의 진보로 단순 노동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필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오히려 기본소득이나 복지국가로 나아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작금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고요. 이 대안들에 관해서는 2장에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고 우선은 좀 더 없어질 직업들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