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와 같은 일자리 쪼개기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새 일자리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선 쪼개기가 최선입니다. 문제는 일자리를 쪼개면 임금도 같이 줄어든다는 겁니다. 하루에 3~4시간씩 일하고 8시간 일한 만큼 받을 수는 없겠죠. 지금처럼 최저임금을 매년 올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지만 임금을 올리면 그만큼 물가도 오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쉽지가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산업혁명들보다 빠른 속도로 일자리를 없애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2030년까지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사실 기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는 산업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있었던 얘기입니다. 실제로 산업혁명을 기준으로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일자리가 그 자리를 대체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론이 대두될 때마다 한쪽에선 “새 일자리가 나타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반론이 많이 제기되곤 합니다. 4차 산업혁명 또한 낙관적으로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전의 산업혁명 때와 마찬가지일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앞서 1부에서 우린 4차 산업혁명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일자리를 없애고 있는지 보았습니다. 2차 산업혁명의 상징인 자동차는 고작 마부와 마차 회사 일자리만 없앴을 뿐입니다. 여전히 교통업과 운송업은 말에서 자동차로 바뀐 채 지금까지 이어졌죠. 하지만 자율주행 자동차는 다릅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교통업, 운송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제조업까지 산업 전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몇몇 특정 일자리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산업 전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학습된 인공지능은 의사, 변호사, 판사, 금융계 종사자와 같은 고위직 직업군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또 마트 캐셔나 서빙 같은 단순 노동 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벌써부터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존 일자리는 빠른 속도로 없어지는 반면 새로운 일자리는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속도의 차이가 너무 난 나머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속도로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돈은 어떻게 벌지?’
이 의문의 대안으로 최근 급부상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기본소득입니다. 저는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됐다는 건 그만큼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처음 나타난 건 18세기였습니다.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연구되어 미국에서 한때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산업혁명 시기에도 기본소득이 오늘처럼 대안으로 열띤 논의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사라진 일자리를 새 일자리가 자리를 메꿨기 때문이죠. 기본소득 논의가 이토록 활발하다는 건 그만큼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 도입 찬·반 여부에 대한 토론이 최근 열띠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인 중엔 명확하게 찬성, 반대 입장을 밝힌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본소득을 실현화하기 위해선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선 어떻게 자본을 끌어다가 기본소득을 줄 것이냐에 대한 논의보단 기본소득이 4차 산업혁명을 살아가는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AI와 로봇들이 인간의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가정은 슬슬 기정사실이 되어갑니다.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 기존 일자리 700만 개가 없어질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반면 새로 생길 일자리는 200만 개로 예측했습니다. 그렇다면 500만 개의 일자리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생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요?
우리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자리를 앗아갔습니다. 비행기, 여행, 숙박,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대부분이 무급휴가에 들어갔거나 해고됐죠. 명동이나 홍대 같은 관광명소들은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서 점포들은 문을 닫았습니다. 꼭 관광명소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발한 곳은 지역경제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세계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한 주에만 664만 건에 달하는 실업급여신청서가 신청됐다고 합니다. 실업자 수도 3,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실업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6월 한 달간 지급한 실업급여 지급액이 1조 1,103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일각에선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경제난에 정부와 지자체는 서둘러 현금을 풀었습니다. 정부는 4인 가구 기준으로 100만 원을 지급했고, 지자체들은 저마다 자구책을 마련했습니다. 코로나19는 비극이었지만 우린 그로 인해 4차 산업시대 사회를 엿보는 기회를 가지게 됐습니다. ‘일자리가 대거 사라진 사회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코로나가 대신 던졌고 정치는 기본소득으로 응답했습니다.
덕분에 우린 기본소득의 효용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코로나19는 미국에서 3,300만 명의 실업자를 만들어냈습니다. 3,300만 명의 실업자에도 이렇게 난리인데 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면 그땐 어떻게 될까요? 4차 산업혁명은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많은 실업자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의 성격을 띤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이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가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대안이라는 걸 보여줬고요.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재원을 어디서 끌어다 올 것이냐고 반박합니다. 이번에 중앙 정부가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1인당 25만 원씩 돌아간 셈인데 이것만 해도 12조가 넘는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매달 25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주면 144조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2020년 우리나라 일 년 예산이 512조입니다. 즉, 정부 예산의 30%가 기본소득으로 나가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당연히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이냐는 질문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재원이 문제라면 해결할 수 없는 난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증세의 방법도 있고, 감면되고 있는 세금을 거둬 드리는 방법도 있을 테니까요. 또 매달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재원이 안정될 때까지 분기나 반기로 나누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기본소득이 다가오는 4차 산업시대에 우리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아닐까요? 대안이 될 수 있다면 방법은 찾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