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선별 복지를 넘어야 한다.
4차 산업시대에 맞게끔 교육과 노동시스템을 바꿨다면 마지막으로 복지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교육과 노동시스템이 4차 산업시대에 ‘어떤 인재상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라면 복지는 새 산업시대에 걸맞은 사회 시스템 만들기에 대한 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일상생활이 스마트폰 없이 불가능해져만 갑니다. 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어제 있던 일자리는 사라져 가고 있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곤 있지만 소멸하는 일자리의 속도는 따라잡고 있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권위 있는 학자들은 하나같이 4차 산업시대는 그 어떤 산업시대보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진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시대로 접어든다면 우린 당연히 그에 맞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꾸려야 합니다. 1차 산업혁명 당시 자꾸만 일자리를 빼앗자 시민들은 기계를 부셔버렸습니다. 비록 기계를 없애진 못한 채 오히려 기계가 늘었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으로 노동자들은 전보다 적은 시간 일하면서 많은 임금을 받았고, 어린아이들은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보호됐습니다. 또 러다이트 운동은 추후 차티스트 운동으로 이어져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자들도 투표권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2차 산업혁명은 노동자가 중산층으로 탈바꿈하는 시기였습니다. 컨베이어 벨트로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헨리 포드는 노동자의 임금을 대폭 올려주었습니다. 이는 결코 포드의 선의만은 아니었습니다. 기업이 아무리 대량생산을 해봤자 소비자가 없다면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포드는 이걸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자동차의 주된 소비층을 귀족에서 노동자로 바꾼 것입니다. 그 결과 2차 산업혁명은 본격적인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를 불러왔습니다. 1차 산업혁명과 2차 산업혁명으로 노동자들의 정치·경제적 지위는 점차 올라가면서 계급사회가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에서 해방된 아이들은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지위가 높아진 노동자들은 정치력을 행사하면서 고용보험, 실업보험과 같은 각종 사회보험이 등장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계급을 철폐하고 노동자들의 지위를 올릴 것이라 주장했으나 이를 실현한 것은 1·2차 걸쳐 진행된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오늘날 일반인인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각종 사회 시스템들은 지난 두 차례의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이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며,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4차 산업시대엔 어떤 복지 시스템이 필요할까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복지란 경제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개념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예를 들어 소득이 현저히 적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에겐 기초생활수급을, 뜻하지 않게 실업자가 된 사람에겐 실업급여를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돕는 복지는 때론 부족함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보편복지 대 선별복지의 대립이 대표적이죠. 보편복지는 조건 없이 모두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보편복지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재원이 많이 들어 비용 발생이 크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선별복지는 선별된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별복지는 선별된 일부 인원들에게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보편복지에 비해 비용이 덜 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형평성은 낮으나 정말 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혜택이 가기 때문에 높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별복지는 선별된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선별된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가난하니까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거다.”와 같은 낙인 말입니다. 또 선별복지는 특정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증명할 것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실업급여가 필요한 실업자의 경우 ‘어떻게 실업자가 됐으며’, ‘현재 어떤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지’, ‘직장을 잃어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별복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비참함을 안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보편복지와 선별복지가 서로의 장·단을 메꿔주는 탓에 우린 복지 서비스 제공을 앞두고 늘 갈라서야만 했습니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2018년 아동수당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가 대립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한정적인 자원을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입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복지의 중점을 자원 배분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보편복지를 주장하면 “이건희 회장 손자도 나랏돈으로 혜택을 보는 게 맞냐?” 하는 반문을 들어야 했습니다. 반대로 선별복지를 주장하면 “중산층도 세금 내는 국민이다.”는 반문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복지의 핵심은 결코 자원 배분에만 있지 않습니다. 복지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복지는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돈이 없으면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진 행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복지의 포커스가 돈에 치중되어 있었습니다. 4차 산업시대는 더 이상 돈이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돈 많은 부자도 좋은 의료 혜택을 못 받고, 밖에서 외식 한 번 하기가 힘들어지는 게 4차 산업시대입니다. 어떻게 해서냐고요? 우린 점점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어도 쓰질 못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