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가 등장하면서 은행을 찾는 발걸음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 은행을 찾는 사람들은 조금씩 줄고 있었죠.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은행에 안 간지 꽤 오래되셨을 겁니다. 우리 잠깐 기억을 거슬러 왜 은행에 갔는지 생각해볼까요? 아마 대부분 돈(현금) 때문에 많이들 가셨을 겁니다. 저금을 하러 가거나 인출하러 말이죠. 돈을 맡기고 찾는 곳, 이것이 은행의 주된 역할이었으니까요. 제가 처음으로 은행을 방문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 달에 한 번 은행원들이 학교로 찾아오곤 했거든요. 저는 그럴 때마다 꼬깃꼬깃 접힌 만 원, 오천 원 지폐를 저금하곤 했습니다. 그땐 현금을 은행에 가져다주는 게 유일한 저금 방법이었죠. 저금을 가장 많이 한 학생에겐 저축왕 상도 줬습니다.(지금 초등학생들이 들으면 놀라겠네요.) 요즘은 부모님들이 학생들 용돈을 어떻게 주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용돈은 현금으로 받곤 했습니다. 그 시절은 그야말로 현금 만능주의 시대였죠. 방과 후 분식점을 가거나 PC방을 가거나 버스카드를 충전하는 비용들을 모두 현금으로 계산했습니다. 옷을 사거나 영화를 보거나 심지어 학원비를 낼 때도 모두 현금으로 계산했죠.
10대엔 저축하러 은행을 찾았다면 20대에 들어서선 현금을 계좌에 넣기 위해 몇 번 들렀던 것 같습니다. 은행을 갔다기 보단 ATM기를 주로 찾았죠. 카드 사용률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더치페이를 하거나 현금 할인하는 곳들이 있어서 제 지갑엔 늘 소량의 현금이 이었습니다. 또 설이나 추석 연휴가 끝나고도 ATM기를 많이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준 현금들을 계좌에 넣기 위해서였죠. 현금 뭉치가 많아봤자 불안하기만 하니까 얼른 집어넣었던 것 같습니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요즘엔 거의 은행 갈 일이 없어졌습니다. 우선은 용돈 받을 일이 없어졌고(이건 좀 슬픈 일이네요.), 더치페이를 비롯한 각종 계산들이 스마트폰으로 가능해지면서 은행가는 발걸음이 뚝 끊겼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금 만능주의였던 우리 사회가 점차 현금 없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현금을 안 쓰는지 바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지갑을 한 번 열어보세요. 여러분의 지갑엔 현금이 얼마가 들어있나요? 아마 대부분 없으실 겁니다. 요즘은 지갑도 예전처럼 장지갑이나 주머니에 들어가는 지갑을 거의 사용하지 않죠. 카드 지갑이라고 해서 아주 얇은 지갑을 많이 사용합니다. 심지어는 이마저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핸드폰 케이스에 카드 하나 달랑 넣어놓고 다니죠.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현상이 지갑의 형태도 바꿔 놓은 것입니다. 이쯤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금 만능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현금이 이렇게 빨리 사라지게 됐을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현금 사용이 불편해졌기 때문입니다. 현금은 굉장히 불편한 존재입니다. 없으면 찾아야 하고, 잃어버리면 찾기도 힘들죠. 현금을 쓰던 시절 현금이 없어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버스를 타는데 현금이 없어 중간에 내린 적도 있고, 편의점에서 고른 과자들을 계산대에서 내려놔야 했던 적도 있었죠. 그나마 이런 케이스는 다행입니다. 근처 ATM기를 찾거나, 집에 다시 다녀오면 되니까요. 문제는 잃어버릴 때입니다. 한 번은 제가 학원비를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잃어버려서 서러운데 어머니께 혼나 더 서러웠었죠. 이처럼 현금은 잃어버리면 진짜 끝입니다. 찾을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큰돈은 들고 다니지도 못합니다. 큰돈이다 싶으면 전 얼른 통장에 넣곤 했습니다. 반면 카드는 이런 부분들에 있어 굉장히 편리합니다. 돈이 없다고 버스에서 내리거나, 계산대에서 발을 돌릴 이유가 없게 됐습니다. 더군다나 신용카드는 후불제이니 더더욱 그럴 일이 생기지 않죠.(대신 빚더미에 앉게 될 순 있습니다.) 카드를 분실해도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카드사에 전화해 정지 신청을 하면 되니까요. 요즘엔 누가 카드를 주워도 함부로 쓰질 못합니다. 카드 이용 내역이 다 저장되니까요. 카드가 등장하면서부터 현금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금을 몰아내고 있는 건 카드뿐만은 아닙니다. 바로 핀테크죠.
핀테크(FinTech)는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금융 업무를 보는 산업을 통틀어 핀테크라고 합니다. 사실 핀테크는 최근에 생긴 단어가 아닙니다. 우린 이미 오래전부터 인터넷으로 송금·이체 등 금융 업무를 봐왔었으니까요. 그러나 최근 들어 핀테크가 주목을 받게 된 건 금융업이 모바일(스마트폰)로 들어오면서부터였습니다.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 은행이 생기고, 삼성페이, 알리페이, 네이버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시스템이 급부상하면서 핀테크도 덩달아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거죠.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금 대신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합니다. 택시, 편의점, 음식점, 백화점 등 거의 모든 곳에서 스마트폰으로 계산을 합니다. 한 때 카드를 스마트폰 케이스에 넣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는데 이제는 넣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스마트폰에 신용카드가 들어가 있으니까요. 현금의 종말이 정말로 눈앞까지 다가온 것입니다.
유럽 최초로 지폐를 발행했던 스웨덴은 최근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스웨덴은 인구 절반 이상이 ‘스위시(Swish)’라는 앱으로 결제합니다. 스웨덴에 가면 상점 곳곳엔 현금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있고, 교회에 내는 헌금마저 스위시로 결제하죠. 심지어는 자활 잡지를 파는 노숙자들도 모바일로 돈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스웨덴은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 중에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도 비슷합니다.
현금 없는 사회는 여러모로 좋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돼서 편리하고 안전합니다. 또 지폐 제조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현금을 만드는 데도 돈이 들어갑니다. 2015년, 2016년 모두 지폐 제조비용만 9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었습니다.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간다면 이 비용을 다른 곳에 쓸 수 있겠죠. 지하경제에 사용되는 검은돈들도 줄일 수도 있습니다. 현금은 지하경제에서 가장 좋은 수단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장부를 따로 쓰지 않는 이상 주고 나면 출처가 남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 사회가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모바일로 결제를 하게 된다면 검은 거래를 줄이는데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금 없는 사회가 꼭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하면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층은 대단히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스웨덴은 이미 이런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현금을 거부하는 가게들이 늘자 스마트 폰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계산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라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젊은 청년세대는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데 아주 익숙하지만 아직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2G 폰을 사용합니다. 설령 스마트 폰을 가지고 계시더라도 대부분 통화 기능 외에는 사용할 줄 모르시죠. 길을 가다 보면 종종 “젊은 친구 내가 핸드폰을 쓸 줄 몰라서 그러는데 알려주겠는가?”하고 물으시는 어르신들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대부분이 길을 물어보시거나 버스가 어디 정차하는지를 물어봅니다. 스마트 폰을 잘 활용하는 사람에겐 아주 쉬운 일이지만 스마트 폰이 낯선 어르신들에게는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그런 어르신들에게 네이버페이, 카카오뱅크 송금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서 나간 기술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요. 기술은 상냥하지도 배려심이 많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한 번 편리하다고 여긴 기술은 발전하면 더 발전하지 누군가가 불편하다고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혹할지도 모르겠지만 배워야 합니다. 손자, 손녀에게 물어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변화된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계속 유지하시려면 스마트 폰을 배워보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 역시 노인층을 위한 배움의 장을 열어줘야 합니다.
신기술은 늘 낙오자를 만들어냈습니다. 1차 산업혁명이 그랬고, 2차 산업혁명이 그랬습니다. 그럼 이 낙오자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버리나요? 그럴 순 없죠. 그래서 전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발전된 기술이 낙오자를 만들면 사회는 그들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도록 든든한 배경이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는 건 좀 더 편리하게 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요?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 불편해진다면 사회는 그들이 편리하게 살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그게 앞으로의 복지가 해야 할 역할일 테고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복지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정도의 개념으로만 인지되었습니다. 그러나 다가올 4차 산업시대에 복지는 더 넓은 개념으로 쓰여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옴에 따라 복지의 재정의가 필요한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