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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윤 Nov 01. 2020

모든 게 가능하려면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혁명이 아닙니다. 산업혁명을 막기 위한 노력은 숱하게 있어왔습니다. 1차 산업혁명 때도 러다이트 운동으로 산업혁명을 막아보려 했지만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온 인류가 스마트폰을 버린다면 4차 산업혁명이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좀 더 편리하게 살고 싶은 욕구는 인간에게 내재되어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최초의 인류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수렵채집하며 살았습니다. 어떻게 인류가 재배를 시작했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재배가 가능함을 깨달은 인류는 떠돌이 생활을 멈추고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렵 채집을 하던 인간에게 재배는 엄청난 편리함이었겠죠. 조선 시대엔 입신양명하기 위해 지방에 사는 선비들은 몇 달을 걸어 한양으로 갔습니다. 오늘날 지방 청년들은 서울에 있는 기업 면접을 보기 위해 KTX를 이용합니다. 조선 시대와 비교하면 수천 배 편리해졌죠. 스마트 폰이 없었을 당시 어딜 찾아가기 위해선 컴퓨터로 검색해 보고 가는 길을 수첩에 적어야 했습니다. 지하철 노선도는 가방에 있어야 하는 필수품이었죠. 버스를 탈 땐 항상 기사님께 어떻게 가는지 묻곤 했습니다. 지금은 그냥 스마트 폰을 켜고 위치 검색만 하면 되는데 말이죠. 이처럼 우리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편리해져 가고 있습니다. 기술발전이 나날이 이뤄지는 건 좀 더 편리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이 욕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혁명은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을 무마시키려면 편안함을 포기해야 하는데 불가능하거든요. 


 편리함 때문에 다른 한쪽에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직장을 잃거나 스마트 기기와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이 4차 산업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앞으로 정치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앞서 소개한 교육·노동·복지에서의 재정의를 가능케 하려면 지금부터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 정치인들이 다음 산업시대를 준비하는 고민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기본소득이나 전 국민 고용보험 같은 이야기가 나왔을 뿐 코로나가 잦아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 것이 뻔합니다. 과거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수당, 청년배당을 지급하려 할 때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의원들은 포퓰리즘이라 비난했습니다. ‘청년 표심을 돈으로 사려는 것.’, ‘청년의 건강한 정신을 파괴하는 아편’ 같은 존재라고 불렀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 와선 기본소득을 주장합니다. 또 차량 공유 플랫폼 ‘타다’가 운행하면서 택시업계가 반발하자 더불어민주당은 ‘타다’를 금지시켜버렸습니다.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차량 공유 플랫폼이 극찬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엔 차량 공유 플랫폼 기업들이 전부 문을 닫다시피 됐습니다. 또 국내 차량 공유 플랫폼에 투자될 수 있었던 돈도 외국으로 빠져나가버렸습니다. 이처럼 지금 정치인들은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어떤 제도적인 보완들이 필요할지에 대해선 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건 중학생들도 압니다. 앨빈 토플러처럼 대놓고 비판하고 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정시를 늘리까, 수시를 늘릴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또 특목고를 폐지하냐 마냐 이것으로 논란을 만들고 있죠. 정작 4차 산업시대엔 불필요한 고민들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약사는 사라질 직업 1위에 올랐는데도 약대는 우리 사회에서 좋은 대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사들은 의사 정원 수 확대를 놓고 파업하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AI 의사의 출현입니다.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대량 실업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현재 없습니다. 그저 장관 아들의 전화 휴가 연장에 목숨 걸기 바쁩니다. 30년 전에 냉전이 종결됐음에도 여전히 국회는 이념 대결하느라 바쁩니다. 주사파였는지가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고, 북한의 친서를 정쟁 삼느라 분주합니다. '어떻게 하면 잃어버렸던 밥그릇을 다시 찾아올까'가 중요할 뿐 그 어느 누구도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인은 없습니다. 굉장히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왜 정치인들은 4차 산업혁명엔 관심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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