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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윤 Aug 05. 2017

우리가 개새끼라고? 왈왈!

이성윤 '20대 개새끼론'

19대 대선을 앞두고 투표하겠다는 2030의 의지가 하늘을 찔렀다. 

“이번 대선에서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어느 여론조사 질문에 2030 청년들은 "반드시 하겠다" 고 답했다. 

어느 여론조사에서는 투표하겠다는 응답률이 90%를 넘기기도 했다. 한 때 선거일에 투표 안 하고 놀던 20대를 질타하던 ‘20대 개새끼론’이 말끔하게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20대 개새끼론'이라는 문장을 접할 때마다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내가 개새끼어야 하는가", "우리가 개 '새끼'면 부모인 '개'는 어디에 있나?"

"우리를 '새끼'로 낳은 부모의 정체는 뭘까?", "우린 개새끼가 아니라 귀한 집 자식새끼예요!"

'20대 개새끼론'의 원인은 20대인 우리가 아니라 교육에 있다. 우리 잘못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혹시 나처럼 무차별적인 욕에 상처받았다면 한 번씩 짖어주시길 바란다. "우리가 개 새끼면 짖었겠지! 왈왈!!"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2년 동안 학교에 다녔지만 ‘투표’의 중요성에 대해 배운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선거 날은 그냥 쉬는 날이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정치를 가르치지 않았고, 정치 과목은 사회 과목 중 선택과목에 불과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선 정치 과목 자체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었다. '개새끼'인 우리의 부모를 굳이 찾는다면 이런 교육의 부재가 아닐까.


그나마 있는 반장선거도 투표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배우기엔 너무 허접한 제도이다. 학교에서 누가 반장으로 뽑히던가? 공부 잘하는 아이, 당선되면 햄버거를 돌릴 수 있는 아이가 아니던가. 본래는 우리 학급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학생, 우리 학급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학생이 당선되는 것이 맞다. 요즘은 반장, 부반장과 같은 이력이 자사고나 특목고, 대학 진학에 좋은 스펙이 되니 학급을 위해 '헌신'하러 나오는 후보들은 드물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당선되면 밥 사겠다'를 공약으로 내세운 친구들도 있었다. 당선이 되고 나서 반을 이끄는 방식도 이상하다. 당선된 반장은 타 학생들을 대표하거나 학우들을 위해 봉사하기보단 선생님을 등에 업은 절대 권력자로 변신한다. 수업 전 반장들이 하는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와 같은 인사부터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내 손으로 뽑았는데 내게 명령을 한다. 또 출석체크를 하는가 하면, 반 친구들을 관리하고, 이것저것 시키기도 한다. 학생들이 뽑은 반장이 당선이 되면 학생들을 지휘하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학교 반장회의도 보기 어렵다.

이런 문화가 쌓이고 쌓였기 때문일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국민을 위한 헌신성보다는 학벌이나 스펙을 중시하는 선거가 되고, 노골적으로 밥을 사준다고까지 하지는 않지만 '국회의원이 되면 지역구에 이거 해주겠다, 저거 해주겠다' 하는 식의 공약 남발 현상이 보인다.

솔직히 얘기하면 국회의원은 지역구에 뭘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지역구가 아니라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고, 대한민국의 법을 발의하는 사람이지!

이처럼 우리가 처음 민주주의를 접하는 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가 잘못됐다.


선거는 중요하다.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국정운영의 기조가 바뀌고, 내 삶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고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걸까? 정답은 단순하다. 5,000만 국민 모두가 정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그게 가능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민회를 구성하고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여 국가의 중대 사항들을 결정했다.(그 당시 시민이라는 것은 성인 남성들을 일컬었기 때문에 사실상 제한적 민주주의 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국가의 규모가 과거에 비해 커졌고, 인구도 훨씬 많이 늘어나면서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국민이 뽑은 대표자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그들이 정치를 하도록 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했고 이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선거는 중요하다. 대의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선거 자체도 중요하지만 좋은 정치인, 정의로운 대표자를 뽑는 기준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학교에서부터 무너졌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대의제가 올바르다고 볼 수 있는가? 이렇듯 우리는 학교에서 정치를 제대로 배우지도, 올바른 선거문화를 경험해보지도 못하며 12년을 보냈다. 이렇게 학창 시절을 보낸 20대에게 수능이 끝나자마자 “투표해라!”, “투표 안 하고 노는 이십대는 개새끼다!”라고 던지는 말들이 우리로서는 불편하고 부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다섯 살부터 투표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또 초등학교에서 대통령 모의투표를 진행하기도 한다. 

스웨덴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민주주의와 투표의 개념을 배우고 초등학생 땐 정당의 역사를 배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소한 이런 교육들이 있어야 한다. 정치와 투표의 가치를 어렸을 때부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큰 차이를 만든다. 스웨덴의 경우 의무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때 90%가 넘는 투표율을 기록했고 지금도 여전히 85%가 가까운 투표율이 나오고 있다. 2014년 스웨덴 총선 투표율은 85%였고 20대 투표율 81% 30대 투표율은 86%가 나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은 52.7% 30대 투표율은 50.5%에 불과했다. 첫 투표를 한 19세 투표율은 53.5%였다.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청년들은 투표를 하고 있지 않다. 그 원인은 교육의 부재에 있다. 정치 교육의 부재, 투표 교육의 부재, 민주주의 교육의 부재가 20대를 개새끼로 만들었다. 스웨덴의 20대와 대한민국의 20대가 자라온 환경은 완전 다르다. 

어쩌면 우리가 개새끼가 된 건 너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

우리 잘못은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 같이 짖어보면 어떨까? 정치교육, 우리도 초등학교부터 하자고! 왈왈!


프롤로그 "정치는 볼드모트가 아니야!" https://brunch.co.kr/@youthpolitica/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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