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Voice 청소년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미디어 교육
교육자로서의 나를 의심해본 것 같습니다. 교육은? 나는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인가? 청소년은 교육이 필요한가? 비교육적인 것의 교육적 가치?... 이런 질문들을 익숙하게 진행해오고 실험해온 '드로잉 워크숍'으로 풀어보려 했습니다. 그리고 '몸(행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교육이 끝나고도 오래오래 곱씹어 생각에 잠기게 한 경험이었다. 교육자로서 ‘나’를 탐구할 수 있었고, 교육자로서 좋은 문화를 누려보았다는 자부심이 크다. 또 가까이에 같은 문제를 유사한 태도로 생각하고 실험하는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은근한 격려와 힘이 되었다(쉽게 얘기하면 신났었다). 그리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지지받을 때, 기분이 아니 좋을 수 없었다. 물건을 사주는 고객보다 직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회사 같은.. 분위기, 대화, 문화가 역시 좋았다(유스보이스). 지금까지 많은 드로잉 수업과 창작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해 왔지만 이런 기회는 역시 흔치 않아서 후회 없이 누리기로 작정하고 나를 위해 더 급진적인 실험을 해보려고 하였다. 어차피 프로그램이 망해도 의미가 있고, 결과물을 요구하지도 않으니 현장에 집중하기가 너무 좋았다. 위험한 곳에 들어가 볼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결론, 나에게 가장 큰 소득은 나의 한계를 편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때로 ‘한계’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지적당할만한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자신을 억지로 위장할 필요가 없는, 조금 더 당당하고 자유로운 상태에 이르게 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오히려 꼭 필요한 태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교육자라면 이 지점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생각에서 벗어날 때 실제를 명확하게 감각할 수 있다. 무엇이든 실제로 시작할 수 있는, 움직여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청소년들과 드로잉을 도구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를 위해 이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많이 생각했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알게 되는 사실은 청소년들을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동안 나는 그들을 짐작하여 교육을 해왔다는 것인가?) 그러면서 더 궁금해졌다. ‘나는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인가?’, ‘교육은?’, ‘청소년들은 교육이 필요한가?’ 등등 이런 질문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보는 게 나를 위한 목적이었다.
일단 판을 깔아야 했다. 그러다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가 떠올랐다. 특히 ‘스타로드’, ‘피터 퀼’이 매우 흥미로웠다. 최악의 교육(?) 환경에서 어떻게 저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댄스 배틀이라니.. 어쨌든 갤럭시를 구해낸다. 이런 엄청난 성공 후 ‘피터 퀼’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타락하지 않았다) 이 지점도 매우 흥미로웠다.
‘피터 퀼’의 ‘AWESOME MIX VOL.1(끝내주는 노래 모임 1)’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기대를 담아 ‘드로잉 프로젝트 : AWESOME MIX VOL.1’을 준비하게 되었다. (너무 훌륭한 생각을 한 것 같아 눈물이 날 지경이었고 엄청난 기대를~ 애들이 겁나 좋아할 텐데~)
그러나 늘 그렇듯 기대한 부분에선 대 실망하고, 예기치 않은 부분에서는 급 놀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매회 나를 위해 새로운 실험들을 멈추지 않았고, ‘그 자리에 있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다 설명하기가 어렵다)
작업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간섭하지 않고 관계하려고 애썼다. 참가자들과 친밀하지는 못했지만(매우 어색), 그들은 자기 작업에 신기할 정도로 매우 몰두하였다. 자기중심적으로 표현된 흔적(작업)들이 많아지면서.. 이후에는 대화하기가 매우 수월했다. 그 대화는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어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동력이 되었다.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은 그들이 그들의 그리는 행위를 스스로 존중하고, 그 흔적들(작품들)을 깊이 애정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자기가 그린 그림을 집으로 가져가서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많은 대화를 나눈 친구도 있었고, 위크숍을 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와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그 부모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감각을 발견하고는 매우 황홀해하는 친구도 있었고, 계속 어려워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자기 방식의 표현을 발견하여 표현의 즐거움을 찾아 즐기는 친구도 있었다.
이번 워크숍은 이전에 내가 진행한 것들과 당연히 유사하지만(연장선 상에서) 그러나 매우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프로그램이 ‘잘 끝났다’, ‘잘 되지 않았다’로 결론을 냈다면, 이번 경험은 그런 결론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주었다. 스스로도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이다. 교육자로서 (강요된) 책임감보다는 계속해서 원하는 실험들을 이어가고 싶은 욕망이 더 커지고 자연스러워졌다. 피교육자들에 대한 부담(두려움)도 사라졌다. 어떤 대상자를 만나든 새로운 경우의 수를 하나 더 발견하게 되는 것이니 어쨌든 나에겐 도움이 될 것이다. 결과, 그러니까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는 모르는 일이다(이것을 책임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교육자가 교육을 준비하면서 결과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교육자가 원하는 결과가 교육현장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들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다만 호기심을 가지고 어떤 세계를 잘 소개하고, 참가자들이 거기에 공감한다면 함께 실험해 갈 뿐이다. 청소년 교육을 위해 청소년에 대해 아는 척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교육자는 끊임없는 실험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교육’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할 수는 있지만 더 이상 교육대상자를 두려워할(어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그동안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해결한 다음 뭘 하려고) 지나치게 애쓴 것 같다. 교육자는 교육자대로, 피교육자는 피교육자대로.. 그래서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다. 교육의 현장에서. 어쩌면 그 한계(문제)라는 것도 그냥 누군가가 그어놓은 별 의미 없는 기준일 뿐인데…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으면 성패를 떠나 지속할 수 있겠다.
#드로잉
최근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았습니다. 죽도록 사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늘 후회를 각오하여 선택하고, 실패를 전제하고 시도합니다. 항상 두려워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풍경을 만날 때마다 벅차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