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보이스 이정현 프로젝트 매니저.
10년 전의 유스보이스를 처음 만난 청소년이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참여한 미디어컨퍼런스가 계기가 되어, 꾸준히 유스보이스와 함께 하고 있다. 10년 전에 처음 유스보이스를 경험한 청소년은 어떤 것을 느꼈고, 경험했으며, 영향을 받고, 성장했을까. 또, 그때와 지금의 유스보이스는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유스보이스의 새로운 동료, 이정현 프로젝트 매니저의 이야기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스보이스의 놀놀, 이정현입니다. 반가워요. (웃음)
유스보이스를 어떻게 처음 알게 되셨나요?
고1 때 유스보이스를 처음 알았어요. 여름방학이 다가올 즈음, 미디어 컨퍼런스를 진행한다는 메일을 받았어요. 그걸 보고 ‘어? 이거 재밌겠는데?, 신청해볼까?’ 생각이 들어서 친구랑 같이 지원했어요. 혼자서 가긴 조금 떨려서, 친구를 꼬신거죠. 그렇게 컨퍼런스에 간 게 유스보이스와의 첫만남이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유스보이스 미디어컨퍼런스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사실 당시만 해도 그런 게 있는 줄 전혀 몰랐어요. 당시 캠프 비용이 4만 원이라고 치면, 거기에 숙식, 프로그램비가 다 포함된거에요. 게다가 캠프가 끝나면 2만 원을 돌려주고. 너무 좋잖아요? 지금 여름방학인데, 종일 공부만 할 것도 아니고, 지금 안 가면 나중에는 더 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구한테 “같이 가자.”라고 해서 갔어요. 당시 미디어 컨퍼런스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참여 후에 유스보이스 자체에 관심이 많이 생겼을 거에요.
컨퍼런스 내용은 뭐였어요?
그때는 관찰, 소리, 움직임 이런 단어로 된 클래스가 6~8개 정도 있었어요. 제가 참여한 클래스는 몸으로 표현하는 활동이 있었어요. 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단계에서부터 어떤 상황이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했어요. 학교에선 할 수 없는 활동들이었으니까. 되게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오래됐지만, 너무 즐거운 경험으로 남아있네요.
컨퍼런스를 통해 프렌토도 하게 되신 건가요?
처음 미디어컨퍼런스에 갔을 때, 각 클래스에 프렌토가 1명씩 스탭으로 있었어요. 미디어컨퍼런스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 때문에 이런 재미있는 프로그램에 스탭이 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그걸 보고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나도 꼭 해봐야지’ 생각했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프렌토를 대학생들만 했었거든요. 그해 겨울방학에 프렌토 4기에서 처음으로 주니어를 뽑아서 지원하고, 활동했어요. 이후 시니어까지 하면서 꾸준히 유스보이스 활동에 참여했네요.
프렌토 4기 지원서가 되게 특이해요.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지원서랄까?
프렌토 4기 지원 당시에는 어디에 뽑히기 위한 지원서를 써본 적이 없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때 한창 A4용지에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한가득 쓰는 게 취미였거든요. ‘그래 그럼 이렇게라도 해보자’ 하고 편지처럼 꾸미고, 그림도 그리고, 색도 칠하고 해서 지원했어요. 그런 부분이 저를 어필하는 데 도움이 됐나봐요.(웃음)
주니어 활동은 어떠셨어요? 고등학생 때 대외활동 하는 게 흔하진 않잖아요?
처음 프렌토 주니어를 했을 때는, 활동 기획에 많은 의견을 낸다든가,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건 아니었어요. 학교 다니면서 야자를 하고, 주말에도 학교에 가는 시기였으니까. 사실상 프렌토 안에서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기보다, 당시에 만나기 어려운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랑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게 재밌었어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단순히 노는게 아니라, 대외활동 명목 하에 만나니까 주변에서도 ‘아 정현이는 활동하는 애구나.’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리고 친구들이 그런 점을 많이 부러워했어요. 당시 저를 포함해 많은 친구들이 진로에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프렌토를 하면서 다양한 전공의 언니, 오빠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프렌토 4기 때는 기억나는 게 있어요?
당시 유스보이스에서 큰 행사가 미디어컨퍼런스, 전주국제영화제, 사전제작지원 이렇게 세 가지였어요. 전주국제영화제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프렌토 4기를 할 때는 전주국제영화제에 사전제작지원팀이랑 함께 가서, 유스보이스 섹션을 운영했던 게 기억나요. 같이 숙소에서 어떻게 홍보 할지 회의도 하고, 피켓을 만들어서 홍보하고. 상영관에서는 시니어 언니, 오빠들이 주로 MC나 사회 진행을 보고, 주니어들은 티켓을 나눠주거나 상영 후에 앙케이트 조사를 하는 역할 등을 했어요.
아 생각하다보니 떠올랐는데, 본격적인 상영 전에 유스보이스 소개영상이 있었어요. 프렌토 시니어가 주가 되어 소개영상을 제작했는데, 그 영상에 제가 출연했어요. 찍으면서도 재밌었는데 사람들이 그 영상을 보고 상영관을 빠져나오면서 저를 알아보는 게 재밌었어요. 유명인 된 기분.
프렌토나 미디어컨퍼런스 그런 활동이 청소년 시기의 정현님께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우선 진로를 조금 더 생각할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1, 2학년 때니까 수능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어느 과를 가야겠다는 건 없었거든요. 그런데 프렌토에 오면 다양한 전공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있으니까, 같이 있으면서 “우리 과는 이런걸 했어, 얼마전에는 이런 실습을 했어.” 처럼 실제 어떤 걸 배우고, 활동하는지 간접적이나마 알 수 있었어요.
다양한 분야를 알게 된 계기였네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저렇게 재밌게 배우고 있구나. 재밌게 배우는 거라면 나도 해보고 싶은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미디어를 다루는 학과를 가고 싶다, 이런 건 없었지만, 영상이나 미디어 콘텐츠를 다루는 학과를 가고 싶었어요. 그 뒤로 쭉 그런 분야에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이 제 관심의 폭을 넓혀줬어요. 그냥 영화를 보고 감상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어떻게 영화를 찍고, 찍는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듣고 배우는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제 진로를 좀 더 폭넓게 고민하고, 이해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 때 프렌토 주니어의 기억이 엄청 좋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프렌토 주니어 때는 그냥 마냥 너무 좋았어요.(웃음) 프렌토가 모이거나 행사가 있는 날이면, 너무 신나고, 즐겁고, 소풍 가는 기분이었어요. 일상의 자극제였거든요. 맨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가고, 공부하고, 늦게 오고, 주말에도 학교 가고. 이런 일상에서 새로운 자극을 주는 활동이었어요.
시니어는 어땠어요?
주니어 때가 마냥 즐겁고, 언니 오빠들 너무 멋있다 였다면, 시니어는 실질적으로 ‘아 프렌토 활동이 이런 거였구나.’라는 걸 알게 된 활동이었어요. 대학에서 청소년학을 전공했는데, 대학교에서 이론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면, 유스보이스에서는 청소년과 함께 실제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었어요. 거기에 친구나 동생도 있고, 1~2살 차이 나는 언니 오빠들도 있고. 다양한 사람의 아이디어를 합쳐서 회의해본 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주니어는 즐거운 경험이었다면, 시니어는 운영적인 측면에서 상상만 하던걸 실제 해봤달까?
인턴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대학교 2학년 때 1년 동안 휴학을 했어요. 초,중,고,대 쉴 틈 없이 달려오잖아요? 그래서 ‘대학교 가면 무조건 1년은 휴학을 할거야.’라고 생각했거든요. 휴학한 중에, 유스보이스에서 랩인턴을 뽑는데, 마침 제가 휴학도 했고, 경험도 있으니까 해보자고 제안을 주셔서 랩인턴을 처음 하게 됐어요. 제가 재밌는 경험을 했던 유스보이스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거니까, 잘됐다 싶었어요.
실제 일도 재밌었나요?
저는 주로 공간을 운영하는 업무를 했는데, 제가 랩에 앉아 있으면 프렌토나 또래 청소년들이 놀다 가고. 그 사람들이랑 같이 이야기 나누고.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점이 좋았어요.
과거의 유스보이스와 현재의 유스보이스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일단 큰 사업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참여자로 있었던 10년 전의 유스보이스의 큰 사업은 미디어컨퍼런스, 전주국제영화제, 사전제작지원이었어요. 현재는 그 사업들을 하지 않고, 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조금 더 새로운 걸 개발하고 출발하면서 옷을 갈아입는 느낌이에요. 과거의 유스보이스가 청소년에게 ‘우리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라면서 청소년을 끌어주고 지원해주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의 유스보이스는 ‘얘들아, 우리 이런 재미있는 거 할 건데 같이 해보자.”라면서 발걸음을 같이 맞추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청소년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학창시절,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특출난 특기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100명의 청소년이 있다고 하면, 양극단의 10명을 제외한 나머지 80명에 들어가는 고만고만한 청소년이었어요. 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뭐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런 청소년이요. 그때 ‘아 재미있는 게 있네? 나 이거 한번 해볼 수 있나?’라는 용기를 준 게 유스보이스였어요. 오그라들지만, 유스보이스에게 받은 용기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 같아요.
유스보이스한테 받은 용기라는 표현이 새롭네요
막 엄청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게 없어도 여기서는 이렇게 재밌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 것 같아요. 조금 보잘것없다 생각했던 일상에 활기를 주고,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게 청소년기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생이 되어서 잊힐 기억이라고 해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아 맞아, 나 그런 거 했을 때 정말 재밌었는데. 아 지금 또다시 그런 걸 해볼 수 있을까?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기억과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정현님은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고 계세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한때는 SNS에 꾸준히 그림을 올리기도 했어요. 저는 제 스타일이 따로 없고, 그냥 취미로 이것저것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스타일이 좋다고 해주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니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 스타일이 사실 나도 모르게 표현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저는 그림이라는 미디어로 나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는 거네요!(웃음). 그 외에 사진찍기도 좋아하고, 프렌토를 하면서 영상 편집, 디자인 툴도 조금씩 다루게 됐어요. 여러모로 유스보이스에서 배운 게 많네요.
정현님께 유스보이스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내 청소년기를 지켜봐 준 곳이라 생각해요. 이제 더는 청소년이 아니지만, 끊임없이 지켜봐 주고 있는 곳 같아요. 지금도 유스보이스를 거쳐 갔던 청소년들이랑 꾸준히 연락하잖아요? 그들이 더는 청소년이 아니어도. ‘이제 너희는 청소년이 아니니까. 유스보이스랑 상관없잖아.’ 이런 게 아니라, ‘아 맞아. 너 유스보이스에서 이런 걸 했었지? 너 그거 했을 때 엄청 재밌어했잖아?’ 라면서 그 시절의 내 모습, 나의 청소년기와 성장을 추억해주는 곳.
유스보이스가 정현님께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고등학생 때는 진로의 폭이 넓어지고, 사람의 관계가 넓어지는 거였어요.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어떤 전공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발견한 곳이 청소년학과였어요. 청소년학과에 진학해서 배우고 졸업하면, 유스보이스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꼭 미디어를 다루지 않더라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지원했고, 다니게 됐어요. 대학시절 내내 프렌토, 인턴을 하면서 유스보이스 함께 했던 것 같아요. 졸업할 때까지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게 해준 것 같아요. 성인이 되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역량들을 활용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쌓는 데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다시 유스보이스에 오시게 됐네요.
유스보이스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저는 되게 재밌어요. 저는 일이든 무엇이든 시작할 때, 제 자신이 재미를 느껴야해요. 지금은 청소년이 아니어서 프로그램 참여자가 될 수 없지만, 참여하는 청소년을 보면서 ‘어 맞아, 이런 거 진짜 재밌지.’ 하면서 대리만족해요. 또 청소년을 만나면 얻게 되는 힘이 있거든요. 무어라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는데, 청소년만이 주는 에너지가 있고, 그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하면서 꾸준히 함께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점을 기대하세요?
청소년들이 조금 더 자유롭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함께 하고 싶어요. 유스보이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지금의 청소년에게 나를 알아가는 시간, 휴식,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PM으로서 앞으로 청소년이 나다움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꾸준히 안고가야할 숙제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