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보이스 사전제작지원, 교육자, 신정원.
인터뷰어 : 유스보이스 사전제작지원, 교육자. 신정원
인터뷰이 : 유스보이스 프로젝트 매니저, 윤성민.
대학생 시절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 홀가분하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유스보이스를 만났다. 거창한 거 없이, 그냥 네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이게 진짜 네 이야기야?". 유스보이스 사전제작지원을 통해 '외출'이라는 작품을 제작했다. 사람들에게 진짜 나의 모습을 커밍아웃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꾸준히 자신의 창작 활동을 하며, 유스보이스 교육자로 함께 하고 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만난 유스보이스, 이게 진짜 네 이야기냐고 되묻던 유스보이스. 이 물음과 응원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신정원, 유스보이스 교육자의 이야기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디자이너 신정원입니다. 유스보이스 사전제작지원을 통해 외출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현재는 교육자로서 유스보이스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유스보이스와 처음 만나게 되셨나요?
제가 대학 다닐 때였어요. 친구의 소개로 유스보이스에서 2주짜리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이후 사전제작지원을 알게 됐는데, 그때가, 제가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어요. 다녀와서 '나는 이런 사람인 것 같아.'라는 걸 이야기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걸 지지해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누굴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환경보호하자는 거시적인 것도 아닌데. 지지해주는 곳 자체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제작비도 많이 들고, 부담이 많았어요. 그런데 유스보이스는 너무 쿨하게 지원해준다는 거에요. 그렇게 사전제작지원을 지원하게 됐어요.
유스보이스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아직도 인상 깊은 건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묻는 거였어요. 막 “그게 네 얘기야?”, “환경보호 하는 게 네 이야기야?”라고 묻고, 자기 이야기 하라고 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혼나는 이상한 곳이었어요. 그런 곳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함박웃음)
이후 가이드 없이 제 작업을 하면 되는 환경을 조성해주시더라고요. 작가가 된다, 혹은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이 되려면 우선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유스보이스는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줬어요. 정말 나에 대해 알아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 같아요.
유스보이스가 그런 지지를 했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약간 ‘왜 해주지?, 나한테 뭘 바라지?, 멋지게 만들어야 하나?’라고 처음에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지원 결정 난 뒤에 절차도 까다롭지 않았거든요. 지원사업을 받으면 대부분 평가 기준이 있고, 지원기관의 목표 달성에 도움을 줘야 하는 게 있어요. 그런 걸 걱정하면서 ‘나는 여기서 뭘 만족시켜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딱히 그런 요구도 없었어요. 그래서 더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외출인 거군요?
외출은 제가 작업하는데 가장 중추적인 기반이 되어준 작품이에요. 사람들에게 ‘내 내면의 모습은 이런 거야.’라고 선언 내지 커밍아웃한 기능을 했어요. 20대 초반의 정말 하고 싶어서 했던 정말 큰 사건이었어요. 그런 걸 지지해 준 게 부모님 외에 유스보이스밖에 없으니까 되게 중요했어요.
외출은 어떤 작품이에요?
제가 뚱뚱한 사람을 중학교 때부터 그냥 그렸어요. 자화상 또는 페르소나로. 이유도 모른 채로. 지금 생각해보면, 청소년기의 무서운 성장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부담감이 제가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하게 자라나는 걸 표현한 것 같아요.
새롭게 만들어지는 꿈, 갈증, 욕심 등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런 감정들이 무겁고 감당이 안 될 만큼 크고 무섭게 다가온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항상 짐스럽고, 힘들고 그런 게 있었나 봐요. 논리적인 흐름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정말 이런 느낌이다 이런 거였어요. 그 모든 걸 안고 그냥 버스를 타고 남대문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산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작품이에요.
당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당시 외출을 촬영할 때, 비디오를 촬영해 준 친구, 사진을 촬영해 준 친구들이 있었어요. 처음 그렇게 뚱뚱하게 분장한 모습으로 나타나니까, 처음에 다 낯설어하고 어쩔 줄 모르면서 “어어…어어어;;”라는 표정이고 약간 깬다? 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사진을 찍어준 친구는 남대문에서 만났는데, 절 보고는 손에 머리를 대고 고개를 푹 숙이더라고요. 진짜 이상한 애구나, 라는 반응이 일반적이었고, 특이한 애로 낙인 찍는 효과가 있었어요.
정원님은 그런 반응이 어떠셨어요?
전 싫지 않았어요. 진짜 말 그대로 드러내기 어려운 속 이야기의 정체, '나 사실 이래.'라면서, 사람들 앞에 저를 보여준 거였거든요. 오히려 사람들 반응이 반가운 거죠. ‘너 되게 이런 애였어?’, ‘너 뭐 하는 거야?’, ‘너 미쳤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고, 이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었어요.
많이 어설펐어요. 전문적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분들이 봤으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을 거에요. 하지만 그 어설프고 이상한 게 저였던 것 같아요. 정말 솔직한 작업이었고, 그래서 정말 좋았어요.
제 대학 전공이 공업디자인 쪽인데, 그쪽에서 요구하는 기질 내지 캐릭터가 저랑 맞지 않다는 걸 많이 느꼈는데, 그걸 인정하는 계기였어요. 그래서 중요해요. 맞고, 안 맞고를 따져볼 수 있었으니까. 진짜 말 그대로 드러내기 어려운 속 이야기의 정체, 나 사실 이래 라면서, 사람들 앞에 저를 보여준 거였거든요. 이제야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아는구나, 라면서 속이 후련했어요.
처음 교육했을 때 청소년들이 어땠는지 기억나세요?
처음 만난 청소년들이 너무 이상적인 친구들이었어요. 8시간을 내리 바닥에 엎드려서 그림 그리던 친구들이었거든요. 엄청난 애들이었어요. 선생님인 저도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요. 많이 힘들었을 거에요. 속으로 “왜 안 쉬니..” “밥은 먹어야 되지 않나..?” 이랬는데, 잘 참여해줘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첫 수업은 드로잉 워크샵이었는데, 다양한 드로잉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수업이었거든요. 청소년들이 너무 무섭고 미지의 존재로 다가오니까, 자기소개를 하자 싶어서 엄청 공들여서 했고, 그러다 보니 각자의 캐릭터가 등장하게 됐어요. 그게 최종적으로 드로잉 히어로가 되어갔어요.
교육하면서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 였어요?
굉장히 불성실하고, 거친 친구가 있었어요. 싫으면 싫다고 하고 8번 수업하는데 3번 나오고. 그런데 그 친구가 이야기가 너무 많은 친구였어요. 수업을 다 끝내고, 전시도 참여하고. 자기 그림을 전시에 건 걸 보면서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그 친구랑은 개인적으로 초청해서 작업도 같이 했었어요. 개인적으로 초청한 자리에서도 의견을 잘 내줬거든요. ‘이거 하고 싶어요, 저거 하고 싶어요. 이걸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라면서. 결국에는 어설펐지만 전시도 했고. 약간 제가 물꼬를 틔워준 것 같아서, 뿌듯했고 보기 좋았어요. ‘그렇지. 저렇게 부글부글했었는데, 당연히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았겠지!’ 했었는데, 그걸 일부나마 해소하는데 동행했다는 게 너무 기분 좋은 일이었어요.(웃음)
아쉬운 점은요?
캠프 때였는데, 드로잉 수업은 여성 참여자가 많기가 쉬워요. 그런데 남자애들이 많은 거에요?. ‘어? 뭐지?’ 이랬는데, 워크샵 시작 때 항상 “왜 왔어?” 라고 물어보거든요. 그때 대답이 “전 드로잉 하는 줄 몰랐는데요?” 이러는 거에요. 왜 왔냐고 하니까, 엄마가 넣었대요. 엄마가 유스보이스 캠프 좋으니까, 장르를 안 보고 넣으신 거죠.
그 친구만의 도구가 있을 텐데, 조금 더 다른 선택을 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선택을 했으면, 정말 날개를 펼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어요. 2박 3일 내내 그 친구를 채근할 수도 없고, 아무 동기도 없이 온 거니까 그 친구 스스로 힘들고. 저도 ‘네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있을 텐데 그것들 중 하나야.’ 이런 식으로밖에 접근을 못하는 거죠. 조금 더 본인이 원하는 걸 알고, 원하는 선택을 해서 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드로잉히어로를 하고 계시잖아요? 방금 해주신 말이 드로잉 히어로에도 잘 녹아있는 걸까요?
드로잉 히어로는 제게 정말 특별해요. 드로잉 히어로는 자신만의 히어로에 자신의 취향, 가치관 등을 담으면서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고, 창작하는 과정이에요. 그린 캐릭터를 보면 마블에 나오는 히어로만 나오지 않고, 정말 다양한 히어로가 나와요. 우주가 나오기도 하고, 해파리가 나오기도 하고, 추상화를 그린 사람도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제가 외출을 제작했듯이, 저마다 느끼는 자기 자신이 다르고 표현하면서 발견되는 모습들이 너무 반가워요.
교육자로서 청소년에게 이런 걸 주고 싶다는 게 있으신가요?
저는 제 경험이 너무 좋은건데요. 외출이라는 작품이 제겐 드로잉 히어로의 초안이에요. 나를 캐릭터로 표현한 거니까. 어딘가를 간다, 혹은 움직인다고 하면, 방향을 정하기 전에 ‘내가 어디 있지? 혹은 내가 누구지?’ 라고 선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시작점 없이 달려가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외출이 그 작업이었어요. 드로잉 히어로가 꼭 시작점이 될 필요는 없고, 중간점검도 좋아요. ‘나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런 사람이고, 2~3년이 지나서 상황이 바뀌었을 때 이런 사람으로 변했다’는 정도의 중간 점검도 좋아요. 자기 자신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전제작지원부터 교육자까지, 꾸준히 유스보이스와 연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단 유스보이스에서 시작하게 된 제 프로젝트가 너무 좋았어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유스보이스와 함께 하는 것 같아요. 또, 프로젝트를 하면서 세우는 교육 또는 작업의 목표를 제가 유연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 좋아요. 지원을 받게 되면 지원해주는 곳의 목표를 만족시켜야 하고, 같이 성취하고자 저를 재단하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게 치명적일 때가 많아요. 교육 효과를 수치화해서 증명해내고 싶어하고, 단기간에 무언가 되는 것처럼 설명하고 싶어하는 곳이 많아요. 그런데 그게 납득 되진 않아요. 오랜 시간이 흘러야 아는 거고, 그 사람에게 많은 경험이 있는데 하나의 경험으로 손바닥 뒤집듯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 말하겠어요. 그런데 그걸 기대하는 곳이 많아요. 반면, 유스보이스는 재단할 것 없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특별해요.
사단법인으로 독립한 유스보이스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유스보이스만이 가지고 있는 그 쿨함이 있어요. 유스보이스만의 거리두기?. 참여자들에게 함부로 개입하지 않고, 교육자든, 청소년이든 자기 혼자 막 몸부림치는 걸 그대로 두고, 철저히 제 3자의 입장에서 항상 지지해주는 포지션이거든요. 그게 잘 유지되면 좋겠어요. 그 부분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사람에겐 정말 중요해요. 개인적으로 사단법인으로 독립하는 과정에서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해요. 아무래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잖아요?. 유스보이스의 쿨함과 거리두기가 독특하니까 매력적인데, 위협당하기도 좋겠다고 생각 들었어요. 그런 쿨함이 잘 유지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