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보이스 교육자, 술래
인터뷰어 : 유스보이스 교육자, 술래
인터뷰이 : 유스보이스 프로젝트 매니저, 윤성민.
유스보이스를 통해 미디어 교육을 시작했다. 창작자가 자기 작업으로 교육하게 된 것. 유스보이스와 함께 학교에 가서 청소년을 만났고, 이후, 꾸준히 교육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유스보이스는 창작자의 삶과 작업이 교육으로 발현되는 걸 추구한다. 그런 교육이 이루어졌을 때, 교육자도 자신의 교육에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 되고, 그 자신감과 자부심이 청소년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 랩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술래에게 청소년 시기에 자신의 이야기로 창작을 하는 경험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또한, 학교 안에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선생님과 교육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들어본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래퍼 술래입니다. 다양한 팀과 솔로로 활동하고 있고, 청소년과 사람을 만나서 랩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스보이스와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셨나요?
2012년 친구 소개로 유스보이스를 알게 됐어요. '나의 내공 수련기'라는 프로그램에서 제 음악 작업 이야기를 나누고, 그 뒤 미디어 교육자 양성 프로젝트 지원하면서 본격적으로 유스보이스와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스보이스 첫인상은 어땠나요?
유스보이스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지도 찾아봤어요. 너무 부럽더라고요. 나는 왜 이걸 몰랐지?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도 들고. 미디어 교육자 양성 프로젝트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 형식이 아니었어요. 그냥 당시 방대욱 대표님이랑 김탕 선생님과 수다를 떨었어요. 오랫동안. 수다 떨면서 가끔 미디어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답하고. 학창 시절 어떻게 랩을 시작했는지, 어떻게 좋아해 왔는지 묻고. 저는 답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약간의 힌트를 주신 것 같아요. 그 당시의 저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유스보이스 이전에도 힙합 교육을 진행하셨나요?
10년 전쯤에 처음 학교에서 음악 시간에 힙합 음악을 소개하는 수업을 진행했어요. 처음 수업이었는데,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겠어요? 힙합의 역사도 적고, 노래도 소개해줘야겠다 결심하고 갔는데, 막상 교육을 하니 지루해하더라고요. 사실 힙합의 역사 이런 게 뭐가 재밌겠어요 애들한테?
그때 애들을 둘러보니까, 막 그림 그리고 있더라고요. '아,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어요. 수업 10분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학생들한테 "랩 가사 한번 써보자." 했는데, 한두 명의 아이들이 랩을 쓰더라고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가사도 좋고. 그때 '아, 랩을 쓰고 표현하는 걸 우선으로 해야겠다.'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학교와 학교 밖에서 랩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미디어 교육자 양성 프로젝트로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됐어요. 어떻게 술래님만의 커리큘럼을 구성하게 되셨나요?
처음 커리큘럼을 만들 때 정말 어려웠어요.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닥치니 어렵더라고요. 그러다 저를 좀 돌아 본거죠. 내가 랩을 좋아하게 된 이유, 관심 갖던 이유, 열정적이던 시기를요. 그때가 청소년기였어요. 10대 때 간판을 보고 랩 했던 거, 카세트테이프에 랩을 녹음해서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앨범을 만들었던 것. 이걸 담고 싶었어요. 단순히 가사를 쓰고, 녹음하는 게 아니라, 내가 했던 방식을 담아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제 커리큘럼을 구성했어요. 이걸 통해서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음악과 글, 목소리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기분, 창작하는 기분, 친구와 함께 나누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길 바랬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저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어요.
분명 교육이었지만, 제 작업과 분리된 느낌은 아니었어요. 이어진 느낌이었지. 교육이 제 작업의 일부 같아요. 사실 이 앨범을 만들기 전까지, 제대로 된 앨범을 내 본 적이 없었어요. 교육을 하면서 내가 해왔던 작업과, 내가 해보고 싶은 작업을 연결해서 한 거죠. 내가 안 해본 걸 청소년들과 함께 배워가면서 했어요. 제가 청소년에게 주는 영향도 있겠지만, 제가 오히려 받는 영향도 있어요. 랩에 대한 생각이나, 방법, 글이나 랩을 쓰는 방법 등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교육을 하면서 참신한 가사가 많이 나오는 거 보는데, 그때마다 '나라면 어떻게 쓸까.'라면서 가사를 써봐요. 그러다 청소년 가사가 더 좋으면 빨리 지우고 (함박웃음)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진행한 첫 교육은 어떤 거였나요?
첫 번째 미디어 교육 프로젝트가 ‘랩 앤 랩 (Lab & Rap)’이었어요. 이태원을 돌아다니면서 간판 사진을 찍고, 랩을 만드는 거였어요. 여름에 했는데, 엄청 더웠어요. (웃음) 제가 예전에 했던 것처럼 가내수공업으로 앨범 자켓부터 녹음과 CD 앨범 제작까지 했습니다. 어설프더라도, 모든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고 싶었어요.
만든 곡을 가지고 홍대에 공간을 빌려서 공연도 했어요. 음악 세팅부터 다 같이 함께. 그게 제 어린 시절 모습이었어요. 포스터 몰래 붙이고, 어른들 찾아다니며 스피커 빌리고, 공간 대여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걸 해보고 싶어서 첫 교육에서도 그렇게 진행했어요.
그다음 ‘랩 이슈(Rap issue)’ 프로젝트에서는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고, 집회와 공연을 통해 내 목소리를 냈던 그 당시의 제 모습이 나타난 것 같아요. 당시 참여했던 청소년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세월호에 대해서, 본인이 마주한 문제에 대해서 가사를 쓰고 불렀거든요. 랩이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표현하는 것에 상당히 적극적이었고, 그 모습이 상당히 멋있었습니다.
청소년이 쓴 가사 중 기억나는 게 있으신가요?
많아요. 정말 많아요. 몇 가지만 소개해볼게요.
'내 랩을 들으면, 무신론자들도 오 마이 갓.'
무신론자들도 내 랩을 듣고 신을 찾는다는 걸 재치 있게 표현한 거예요.
'옆에 있는 친구들을 돌아볼 때면, 그들은 좀비는 아니지만 피로 가득해.'
이건 경안고 수업 중에 나온 랩인데, 정말 '피'가 가득하다는 의미와, '피로'가 가득하다는 의미를 담은 거죠. 학교에서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안타까움을 담은 거예요.
'날마다 쑤신 우리 어머니의 손가락, 일하기 바빠 들지 못하는 그 숟가락.'
엄마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가사에 담은 거죠.
'블랙, 화이트, 옐로우 이건 단지 색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다.'
이건 인종 문제가 색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라는 걸 다룬 거예요.
'기사가 왕을 지키는 기사가 돼버렸다.'
이건 언론자유에 대해서 말한 건데, 언론사에서 쓰는 기사가 왕을 호위하는 기사가 되어버렸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
정말 수업을 하면, 참신한 표현들과 생각들이 나오는 걸 봐요. 생각도 깊고. 한 번은 랩이슈 프로젝트에서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모시고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세월호에 관련한 노래를 만들고, 각자가 관심 있는 이슈를 담은 곡을 만들어서 공연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모시고 세월호 문화제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참여자들과 함께 공연을 했는데,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도 무언가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게 진지한 표정은 처음 봤고, 유가족 분들 앞에서 공연을 하니, 내가 쓴 가사, 내가 뱉은 말에 대한 책임, 랩이 주는 힘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공연 끝나고는 랩이슈 때처럼 밝은 분위기였는데, 그때 작은 무대였지만, 그 친구들이 너무 멋있었어요.
유스보이스 컨퍼런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너를 표현해보라고 하면 안 하던 아이들이, 랩 가사를 쓰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한다.”라고. 청소년들이 랩을 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또 그런 경험이 왜 필요할까요?
그게 랩이 가진 힘 같아요. 말로 하라고 하면 부끄럽잖아요? 그런데 랩은 비유도 쓸 수 있고, 다양한 라임과 멋진 펀치라인도 만들 수 있고, 내가 쓴 가사가 비트에 딱 맞을 때 오는 희열과 재미도 있거든요. 이런 재미요소가 랩에 많아요. 또 랩을 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솔직하게 쓰려고 하고, 랩을 뱉었을 때의 속 시원함도 있어요. 그걸 듣는 입장에서는 또 공감하며 힘을 얻기도 하고. 처음부터 잘 쓰진 않지만, 한 두줄 쓰고 해보면 더 수월하게 자기표현을 해요.
내 이야기를 해보는 경험이 왜 필요할까요?
글을 쓰던, 랩을 쓰던, 사진을 찍던, 그림을 그리던.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거예요. 그 기회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어릴 적에 불만이 많았어요. "학교는 왜 이러는 거야?"라면서. 왜 불만이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그걸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하고, 감정의 쓰레기통도 필요하고, 누구한테 말하지 못하는 걸 내뱉는 시간도 필요하고, 내가 꼭 간직해야 될 것들을 담아낼 곳도 필요해요. 이 모든 것에 미디어가 가장 적합한 도구가 될 수 있어요.
내가 집중해서, 몰두해서 무언가를 해본다는 것. 실패하든, 성공하든 해보는 것. 그 과정에서 결과물이 나오면 성취감도 생기고. 이 모든 과정이 청소년 시기에 큰 양분이 된다고 생각해요. 또, 청소년 시기는 내 생각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때이고, 학교 친구들과 함께 하기도 쉬워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영감을 받을 수도 있고. 그 모든 걸 고려했을 때, 청소년 시기에 나를 생각하고, 다양한 미디어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7/18 유스보이스 컨퍼런스에서 ‘한분'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어요. 그때 청소년들을 위해 애써주는 ‘선생님 한분'의 감사함을 말하셨는데, 학교에 청소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하는 선생님이 있는 게 왜 중요할까요?
제가 어릴 때 랩도 좋아하고, 펑크 음악도 좋아하고, 인디 음악도 좋아했어요. 그런데 제 주변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몰랐던 거죠, 이런 음악이 있다는 걸. 그래서 '내가 전파자가 되야겠다, ' 결정하고 (웃음), 주변에 알리기 시작한 거죠.
인디 음악을 절대 안 팔 때, 음반점 사장님한테 "아저씨, 제발 한 장만 구해주세요." 이러면서 사고, 또 찾아가서 인디음악 관련된 건 다 구해주세요 해서 사고. 그걸 구해주고, 사다 보니까 그 음반점에 인디음악 전문 코너가 생겼어요. 애들한테 사서 들려주고.
그 아저씨 덕분에 제가 정말 듣고 싶었던 음원을 들었고, 용돈 모아도 못 사는 앨범을 구해서 살 수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렇게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공연하려면 스피커가 필요한데 너무 비싸고,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를 때 음향 해주시는 아저씨가 싸게 빌려주고, 차로 옮겨주시고. 공연 현수막도 빌려주시고. 혼자서 다 했다고 하지만, 절대 혼자 한 게 아니라 그때마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학교 밖도 좋지만, 학교 안에 그런 분들이 계신 게 정말 중요해요. 바쁜 와중에도 학생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장르를 찾아보시고, 유스보이스 같은 단체와 연락해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실제 교육을 나가보면, 그런 선생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교육의 참여도도 달라요. 학교 안에서 그렇게 애써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제가 관심 있는 분야를 지키고, 제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던 것처럼 청소년들도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지 알고, 조금 더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새롭게 출발하는 유스보이스가 놓치지 말고, 지켜나가야 할 건 무엇일까요?
저를 놓치지 말아야죠. (함박웃음) 저를 절대 놓치면 안 되죠.
유스보이스 워낙 잘하세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유스보이스가 교육자들에게 항상 하던 말인데, "실패해도 괜찮다."였어요. 그 말이 교육할 때 큰 용기가 됐거든요? 실패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두려움은 있죠. 실패하면 어쩌나 하고. 그때마다 저를 믿어준 게 큰 힘이 됐어요.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교육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새롭게 출발하는 유스보이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