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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보이스 Feb 15. 2022

내 삶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구나

유스보이스 프렌토, 사전제작지원, 인턴, Co-Founder. 정지혜



내 삶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구나


인터뷰어 : 유스보이스 프렌토, 사전제작지원, 인턴, PM, Co-Founder & COO. 정지혜

인터뷰이 : 유스보이스 프로젝트 매니저, 윤성민.


#. 내 삶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본 사람

청소년 때부터 유스보이스를 경험했다. 프렌토 주니어와 시니어, 사전제작지원, 캠프, 인턴, Co-Founder & COO까지. 유스보이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했다. 그 많은 경험 속에서 치열하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했다. 청소년 시기엔 '내 삶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구나.'를 알게 됐고, 실무자가 되어서는 청소년에게 '너의 삶을 너가 만들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청소년기 참여자부터, 실무와 사단법인 설립까지. 이 모든 과정이 앞으로의 정지혜님에게 어떤 힘을 줄까. 유스보이스 10년지기 정지혜님의 이야기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스보이스와 10년 지기가 된 정지혜입니다. 유스보이스의 경험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는데, 10년이라는 시간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서 10년 지기라고 했습니다!


정지혜님


어떻게 처음 유스보이스와 처음 함께 하게 되셨나요?

처음에 사전제작지원에 지원했는데, 유스보이스가 저를 떨어트렸어요. 꿈 많은 18살의 기획안을 (웃음). 고등학생 때 뮤지컬 단편영화를 두세 개를 봤는데, 너무 인상 깊었어요. 그걸 보고 '나도 학교에서 뮤지컬 단편영화를 찍어봐야겠다.'는 단순한 호기심과 패기로 사전제작지원에 지원했어죠. 똑 떨어지고 (웃음) 화면을 넘겼는데, '프렌토 11기' 모집 글이 있었어요. 당시 학교에서 하지 않는 진짜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처럼 보였고, 설마 이것도 떨어지겠어?라는 생각으로 지원했어요.


당시 프렌토 활동은 어땠나요?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학년 선배는 만나봤지만, 대학생 언니 오빠와는 처음 활동해보는 거였어요. 또 서울이 아닌 다른 지방 친구들도 있었어요. 6개월간 재밌게 활동했어요. 학교에서는 매년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정해졌는데, 프렌토에서는 한 달 한 달 활동이 정해져 있지 않고, 격주 정기회의를 통해 직접 그려 나갔어요. 


프렌토 11기 운영회의 중


그 당시 제가 했던 프로그램으로 '토요 브런치'라는 활동이 있었어요. 그전까진 브런치를 먹어보지도 못했어요. (웃음). 먹어보지도 않은 걸 어떻게 하나 했는데, 마침 주니어 친구 중에 요리를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의 도움으로 토요일 11시에 모여서 우리가 직접 간단한 음식을 만들고, 대화하고, 먹고 즐겼던 기억이 나요. 저희 주니어만 하는 게 아니라, 조부모 가정의 아이를 초대하기도 하고, 주니어 친구의 친구를 초대하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요즘 진행하는 살롱을 한 것 같아요.


주니어 프렌토 이후 사전제작지원에 다시 지원하셨잖아요?  

프렌토 주니어를 하다 보니까, 유스보이스가 대단한 것에 집중한다기보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 마침 사전제작지원 공고가 떠서, '아, 이곳 코드를 알았다.' 싶어서 진짜 제 이야기를 담은 제안서를 작성해서 냈어요. 이전에는 단순히 '뮤지컬이 하고 싶어요.'였다면, 이번에는 '저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만들어 보고 싶어요.'였던 것 같아요. 그게 유스보이스의 색깔과 잘 맞았는지, 서류에 합격했고, 면접을 보게 됐습니다.


면접 장에 교육자 세 분이 앉아계셨는데, 제 이야기에 질문을 던져주시고, 후에 멘토가 되셨던 장혜영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적극적으로 물어봐 주셨어요. 저한테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앞서 프렌토가 재밌게 노는 면접이었다면, 사전제작지원은 저에게 두 걸음 들어와 주신 면접이었어요. 면접보다, 내 이야기를 소개하고 온 것 같아서 재밌었고, 좋았어요. 내 이야기의 가치를 인정받은 기분이었어요. 이곳에선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해도 괜찮구나 하는 안전지대 같았죠.



그렇게 만든 작품이 '에너지 효율등급 1등급'이라는 작품이에요. 작품 소개 부탁드립니다.

면접 당시 멘토님이 제 이야기를 듣고 애니메이션이 조금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제안 해주셨어요. 처음 접하는 장르였어요. 그전까지는 단편영화밖에 몰랐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되더라고요. 멘토님과 브런치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스톱모션을 제안해주셨고, 제가 직접 나와서 솔직한 제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고, 잘 표현되지 않을 테니 의인화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그렇게 제가 친숙한 과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어요.


스토리는 저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어릴 적엔 정말 딸바보 같은 사이였는데,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애교도 없고, 어색한 사이가 돼버렸어요. 항상 아버지한테 업혀있었는데, 남처럼 행동하고. 아버지한테 표현하는 게 어려웠는데, 고등학생이 되니 부모님도 50, 60대가 되신 거죠. 어느 순간 먼저 떠나시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 표현하고 싶어도 못하게 된다는 막연한 무서움과 막막함이 와서, 늦기 전에 솔직한 내 감정을 표현해야겠다 싶었어요.


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간지럽지만 '사랑해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메시지를 위한 이야기였고, 만들면서도 잘 전달될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에너지효율등급 1등급
빠가사리 팀

해당 작품이 전주국제영화제에 상영도 됐잖아요? 내 이야기가 잘 전달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정말 운이 좋게, 사전제작지원 작품 중 제 작품이 선정돼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됐어요. 청소년 감독 10명 정도가 함께 상영을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감독으로서 감독과의 대화를 해봤어요. 


전주국제영화제 감독과의 대화 중. 가운데 정지혜님.

감독으로 5명씩 가서 대화를 했는데, 팀원이 "누구를 위한 메시지였나요?"라면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솔직하게 부모님께 전하는 메시지였다고 말했어요. 당시 부모님이 같이 보고 계셨거든요. 그런 점이 기억에 남고, 또 지인이 아닌 정말 모르는 관객 분이 제 메시지에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그게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이렇게도 사람들이 느끼는구나, 라면서.


그분이 말씀하신 게, "부모님한테 말하기 너무 어렵고 부끄럽다."였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미디어로 만든 건데, 공감해주는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이 감정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게 미디어의 힘인 것 같고, 그걸 계기로 제가 미디어로 추구하는 바가 바뀌었어요.


제 14회 전주국제영화제

어떻게 바뀌게 됐나요?

이전까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에 흥미를 느꼈어요. 제가 영상을 처음 만든 게 고1 때인데, 스승의 날 영상을 만들려고 영상 제작법을 배웠었어요. 그 뒤 학교 방송부에 들어가서 전교생을 웃기기 위한 영상, 축제를 위한 방송제 영상 만들기였어요. 모두 예능처럼 흥미와 재미 위주였죠.


그런데, 제 이야기를 미디어로 만들어서 전달하고, 공감하는 걸 보고 '작고 잊기 쉬운 것의 소중함을 전달하고, 미디어를 통해 나누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이 내가 미디어로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 뒤론 미디어 제작에 있어서도 조금 더 나의 진심이 담김 콘텐츠를 만들고, 단순 재미나 흥미가 아니라 정말로 나의 메시지를 나누는 걸로 바뀐 것 같아요.



10대 시절 그런 경험이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내 삶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구나.'를 처음 느꼈어요. 역할이라는 건,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역할인지 말할 수 있고, 내 존재 의미를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성인이 돼서는 직업이 되는 거고, 청소년 시기엔 내가 만드는 행동과 콘텐츠가 나의 역할과 존재를 설명해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지혜 감독으로서 내 콘텐츠를 말했을 때, 세상에 내 역할과 존재 의미, 내 정체성을 보여준 것 같았어요.


많은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꿈이 뭐냐,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어요. 청소년들은 꿈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다고 대답하죠. 그게 당연한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보는 시간과 환경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감사하게도 고등학교 시기에 유스보이스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경험을 했어요. 애정을 가지고 나에 대해 세심하게 보고, 표현하려고 한 것 같아요. 누군가 저에게 "지혜야, 너는 뭘 좋아하는지 알려고 충분히 노력해 봤어?"라고 물었을 때, 나는 충분히 노력했고,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봤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노력한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공존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있다면 누구나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유스보이스가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시도할때까지 기다려줬어요.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질문해주셨죠. ‘너희 뭐하고 싶어?’ 그 질문들을 통해 조금 더 고민이 깊어졌고,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아 뭔지 알고, 표현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더 깊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시니어 프렌토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셨어요?

대학생이 되는 순간 세상이 너무 크더라고요. 이과, 문과, 실업계 밖에 몰랐는데, 대학에 오니 수십 개의 학과가 있고, 전국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신세계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놀았던 것 같아요.


베트남 해외봉사를 돌아온 날 전화가 오더라고요. 정말 타이밍 좋게, 유스보이스에서 (웃음). 받아보니까 혹시 '프렌토 시니어' 할 생각 없냐는 전화였어요. 사실 부담됐었어요. 제가 주니어 때 만난 시니어 언니 오빠들이 대단해 보였거든요.


대학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살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저의 세계가 없어진 것 같았어요. 너무 새로운 것을 접하고, 떠다니다 보니까 다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세계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고, 내가 유스보이스를 할 때 그렇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서 다시, 시니어를 하게 됐죠.


인턴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시니어 활동이 끝날 때즘, 인턴 제안을 주셨어요. 미끼를 계속 던지셨는데, 제가 계속 먹은 것 같아요. (웃음). 보통 유스보이스 인턴은 6개월인데, 총 1년을 했어요.


인턴 하면서 처음 시도한 게, 매거진 만들기였어요. 시니어를 하면서 아쉬웠던 게, 함께한 친구들과 기록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내가 만나는 청소년과 이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한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주고 싶어서 만들게 됐어요. 독립잡지 인터뷰를 하고, 독립서점 대표님을 만나서 피드백받고. 어설픈 부분이 많았지만, 재밌었어요.


인턴시절

첫 번째 매거진이 저희가 좋아하는 것의 총집합이었다면, 이걸 조금 더 청소년 독립잡지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두 번째 인턴을 하면서 또 잡지를 만들었어요. 자율 기획 프로그램도 만들고, 당시 미디어 교육자 양성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프로젝트 참가자와 네트워킹 파티도 열고. 그렇게 청소년의 삶과 이야기를 하나씩 담으면서 두 번째 매거진을 만들었습니다. 1년을 그렇게 보내길 잘했다 싶었어요.


인턴을 하면 보통 잡무를 많이 하는데, 유스보이스는 내가 기획해서 2천만 원의 예산을 직접 집행할 수 있었어요. 정말 엄청났죠. 그 집행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볼 수 있었어요.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인턴을 마무리하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성에 이끌리듯 이번엔 Co-Founder로 다시 돌아오셨잖아요? 

맞아요. (웃음). 인턴을 마치고, 대학교 졸업을 하고 모 방송국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었어요. 다이나믹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한 5개월 정도됐나? 마침 예술의 전당에서 촬영이 있어서 대기하고 있는데, 전화가 오더라고요. (웃음). 


받아보니, 유스보이스를 스타트업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축하드려요, 제가 도울 일 있으면 도울게요,라고 했는데 같이할 사람을 찾는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같이 할래?"라고 하셨는데, 선뜻 함께 한다고 했어요. 어느 내면에서 나온 자신감과 확신이었을까요. 아마도 그동안 쌓아온 경험이 대신 대답해준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하고 싶었던 PD가 됐지만, 유스보이스에서 경험했던 것 처럼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조금 고민되는 시점이었거든요. PD로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고, 유스보이스는 ‘지금’이다 싶었어요. 제게 유스보이스가 어려운 곳이 아니라, 이상적인 곳이었기 때문에, 스핀오프에 참여하게 됐어요.


사단법인 유스보이스 정기총회 및 이사회


그 과정에서 과연 내 역할은 무엇이고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부담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예요. 저는 한번도 ‘비영리 단체’를 업으로 고민했던 시간이 없었던 터라,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많이 긴장했었어요. 그래도, 혼자가 아니니까, 1년을 함께 해봤던 합이 있으니 잘 될거라 생각했어요.


Co-Founder로 함께 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셨나요?

저에게 유스보이스를 물어보시면 '인생이 전환되는 경험'이라고 말해요. 생각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경험이 엄청 극적인 건 아니더라고요. 프렌토 11기로만 끝났으면, 그 정도의 경험이었을 거고, 전환의 경험은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주니어, 사전제작지원, 시니어, 인턴으로 겹겹이 쌓여서 정지혜라는 사람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거예요. 그 전환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제공해야 되는 사람이 된 거였어요. 부담과 설렘이 반반이었어요. 내가 청소년기에 경험한 그 경험을 청소년에게 줄 수 있을까? 싶어서 부담이 됐고, 내가 그 경험을 줄 수 있다고?라는 설렘도 있었어요.


스핀오프한 사단법인 유스보이스에서 지혜님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Co-Founder로서 제 역할은 청소년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인지 시키는거 였어요. 그 마음을 움직이려면 시간과 돈보다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해요. 교육자든 멘토든 청소년이 사람을 만났을 때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제 역할이었어요.


좋아하는 것을 찾게끔 정보를 주고, 그 친구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교육자와 멘토를 연결시켜주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게 즐거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는데, 그 경험을 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저에게는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가장 좋았고.


저는 고등학교 때 제가 정말 가고 싶었던 학과를 갔어요. 정말 행복할 수밖에 없죠, 원하는 곳에 간 거니까. 그런데도, 이 정도의 행복감을 느끼진 않았어요. 원하던 PD가 되어서도요. 유스보이스에서는 '내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를 고민하면서, 청소년에게 '너가 좋아하는 게 분명 어딘가에 있어' 그걸 찾는데 노력하면 너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했어요. 제가 그 경험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이야기하고 행복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실제 본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찾은 사례가 있을까요?

인턴으로 만난 친구 중에 정혜란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프렌토였는데, 그 친구가 처음에 뭘 하고 싶은지 몰랐어요. 자유 기획 프로그램을 만들자 했는데, "지혜님 저 하고 싶은 게 없어요."라면서 기획서를 안 줬었어요.


그때 무작정 혜란이가 있는 지역에 가서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대화를 많이 했어요. 빈 종이를 펼쳐놓고, 혜란이가 좋아하는 키워드를 적으면서 수다를 떨었어요. 그 대화 속에서 혜란이가 갖고 있는 궁금증이 보이더라고요. "저는 다른 청소년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요, 대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까요?"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호기심이 있구나 싶었죠. 그렇게 만들게 된 게 '현타쉐어'였어요. 또래 청소년들끼리 현타의 순간을 대화로 나누는 활동이었는데, 혜란이가 대화를 통해 충분한 인사이트를 얻고 "너무 재밌었어요. 저런 삶을 사는군요. 꼭 정해진 답은 없는 거군요."라고 말했어요.


현타 쉐어를 통해, 혜란이가 궁극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마음먹은 것 같았어요. 저는 단순히 대화한 것뿐인데, 그 친구에게 행복함과 즐거움을 줄 수 있구나를 알게 된 경험이었어요.


실무자로서는 직접 사회공헌 파트너 사업을 하면서 아이들이 "기다려줘서 고맙고, 자유로워서 좋다."라고 했어요. 사업을 하면서 정해진 시간은 있지만, 만들어야 되는 최종 결과물은 없었어요. 교육자가 다양한 재료를 제시해주지만, 재료를 어떻게 요리할지는 아이들에게 달려 있었고, 만든 모든 게 작품이었어요.


그러면서 피드백을 받았는데, 아이들의 피드백을 보면 '이렇게까지 자유를 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유로웠고 고맙다.'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그 시간을 갖고 나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감을 갖게 되더라고요. 거기서 자존감을 얻는 것 같고, 다음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최근 맡은 사업 중에는 초록산타가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전달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유스보이스의 강점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덕분에 유스보이스 교육자와 어떻게 아이들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고, 경험을 줄 수 있을지 두배, 세배 고민할 수 있었어요.


최근 여름에 감정을 주제로 아이들을 만났는데,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 거예요?라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슬픔을 표현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는데, 슬프면 울어도 된다는 걸 알아서 좋았고, 부모님들조차도 스스로 감정 표현을 못한다는 걸 알게 돼서 아이들과 더 가까워진 것 같다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그런 때 유스보이스가 좋은 질문을 던진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사단법인 독립 후 미션과 비전도 바뀌고, 로고도 바뀌고.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실무자가 보시기에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정말 감사히도,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네요. 변화도 중요하지만, ‘유스보이스가 하고자 하는 본질’은 항상 같았고, 그걸 지키려 노력한 것이 더 대단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변화가 많을 시기에는 가장 먼저 ‘포기’하는게 쉽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스보이스’다운 방법을 찾고자 가장 치열하게 준비했고, 새로운 미션과 비전을 고민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유스보이스를 경험했던 참여자에서 시작했기에, 그 중요성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고, 그 덕분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또 주변 환경도 많이 달라졌어요. 청소년들은 더욱 시간이 없었지만, ‘나를 발견하는것, 자기다움’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슬슬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가치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하나 둘 생겨났고, 우리만이 아니라 함께하고자하는 파트너사가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유스보이스에서의 경험이 앞으로의 지혜님께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요?

최근에 '돈과 시간, 모든 조건이 충분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이 질문의 답으로 나만의 유스보이스를 만들고 싶다고 하고 싶어요.


핀란드에 아난딸로라는 가족형 교육기관이 있는데, 공간마다 창작을 할 수 있어요. 사진작가, 미술 등 모든 미디어 영역을 경험할 수 있고, 가족과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나만의 유스보이스를 만들고, 그 공간을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제가 가장 행복할 수 있었던 방법이고, 무엇보다 저 스스로 가장 만족했던 시간이었어요.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었고. 그 속에서 아이들에게 제가 했던 경험을 나눠주고,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고, 그들을 만나게 해 주고. 그렇게 즐거운 경험을 주는 환경을 만드는 걸 제가 잘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정지혜답게 살기 위해서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유스보이스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저는 이 질문의 세 가지를 말하고 싶어요. 유스보이스에게도 그렇고, 이 인터뷰를 보는 분들에게도요.


첫째로는 알았으면 좋겠어요. 나를 알고, 내가 하는 일과 내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행복을 느끼면 그게 행복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고, 내가 누군지 알았으면 좋겠고,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유스보이스에게 전한다며 유스보이스가 누구고, 유스보이스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유스보이스가 어땠을 때 가장 행복한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로는 유스보이스와 지금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이 목적과 목표를 구체적으로 그렸으면 좋겠어요. 유스보이스가 그리는 그림이 있다면, 그게 어떤 그럼인지 많은 분들에게 알려주면 좋겠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무서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먼저 해봤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는 독립적이지만, 사람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유스보이스 자체만으로도 독립적으로 잘 서있었으면 좋겠고, 여러 교육자와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이걸 보시는 분들도 스스로 독립적으로 행복했으면 좋겠고, 때로는 함께 더 즐거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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