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보이스 프렌토, 유승연
인터뷰어 : 유스보이스 프렌토, 유승연
인터뷰이 : 유스보이스 프로젝트 매니저, 윤성민.
영상 고등학교에 다닐 때, 유스보이스 미디어 교육을 들었다. 랩 수업을 들으며 나의 이야기로 가사를 쓰고, 랩을 했다. 예술대학에 진학 후, 이 분야를 업으로 삼는 것에 불안감이 들었고, 예술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유스보이스를 통해 그들을 인터뷰하고, 창작과 예술을 업으로 삼는 것에 용기를 얻었다. 또한 유스보이스의 창작자의 작업경험이 교육이 되고, 과정이 중시되는 교육철학을 배웠다. 내가 하고 싶은 창작을 하며 살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함을 배우고, 현재도 영상, 음악, 영화를 만들며 나다운 삶을 살고 있다. 유스보이스를 통해 조금 더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 유승연의 이야기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승연입니다. 유스보이스 프렌토 활동과 미디어 교육에 참여했고, 현재 문래동에 작업실을 두고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 중입니다. 주로 영상을 다루고, 밴드 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유스보이스와 함께 하게 되셨나요?
2015년에 프렌토 15기를 통해 유스보이스와 함께 하게 되었어요. 프렌토 전에도 꾸준히 대외활동을 했었는데, 같이 활동하던 희선이란 친구가 프렌토라는 활동이 있다면서 지원해 보라고 추천해 줬었어요. 보통 활동이 끝나면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가기 힘든데, 프렌토로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낼 수 있어서 좋아요.
프렌토 이전에도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나요?
저는 학구열이 뛰어난 지역에서 자랐어요. 학교 끝나면, 학원가는 게 패턴이었고, 성적 올리는데 혈안 된 분위기였어요. 딱히 예술을 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러다 중3 때 우연히 수행평가로 영상을 만들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기획, 촬영, 편집을 다 했는데 세 파트 모두 재밌었고, 스스로 잘하지 않았나 생각한 것 같아요. 청소년 영상 캠프에도 참여했는데, 그때 영상쪽으로 진로의 방향을 둬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진 것 같아요. 그래서 영상고등학교에 갔고, 영상, 영화, 사진, 디자인, 글처럼 다양한 미디어를 접할 수 있었어요.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고,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데 다양한 미디어를 접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평생 걸쳐도 모를 수 있는데, 그걸 빨리 알 수 있었던 게 행운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프렌토 안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소울 마켓>이라는 청소년들의 재능을 사고파는 작은 플리마켓을 했었어요. 제목도 제가 지었는데 (웃음) 사람의 영혼인 소울에서 '소'를 작을소를 써서 청소년의 재능과 그들이 만든 물품을 파는 마켓이었어요.
한창 플리마켓이 유행하던 때인데, 청소년들이 셀러로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셀러로 참여하는 비용이 비싸기도 했고. 제 주변에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는 친구가 많았어요. 캘리그래피 그리고, 팔지를 만들고, 수제 캔들을 만들고. 그 친구들이 조금 더 돋보일 수 있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당시 유스보이스 사무실이자 플리마켓 장소가 한남동 지하에 있어서 손님들이 많이 올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방문을 많이 해서 플리마켓이 성행했어요. 덕분에 청소년들도 직접 물건을 팔고, 수익을 가져가는 의미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죠.
유스보이스 미디어 교육 중 랩 수업도 들었어요. 어떠셨나요?
초등학생 때부터 힙합 음악을 많이 들어서 자연스레 랩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많았어요. 혼자 랩 가사를 써보는데, 그렇게 오글거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술래님의 랩 수업을 알게 되고, 수업에서 직접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 수 있다 해서 참가하게 되었어요. 어떤 가사를 쓸까 하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가사를 쓰자고 생각했어요. 당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라, 사회문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했었죠. 그래서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동네 카페와 골목 상권에 대한 이야기를 가사로 썼어요.
당시에 어머니가 동네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주변에 늘어나며 매출에 영향을 받을 때마다 많이 속상해하셨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골목 상권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상생에 대한 가사를 썼어요. 사회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힙합을 통해 발화할 수 있었던 진귀한 경험이었죠. 6년이 지났는데도 술래님이 교육자료로 쓰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잘 썼나 봐요. (웃음)
사람책도 직접 하셨잖아요?
당시에 KBS에서 진행하는 특성화고교생 취업 프로젝트 <스카우트>를 통해 18살의 나이에 모델 에이전시의 영상팀으로 미리 취업 자격을 얻은 상태였어요. 좋은 결과였지만 제가 진짜 취업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대학에 가서 더 공부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어서 붕 뜨고 불안한 시기를 보냈어요. 그때 했던 고민들을 사람책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나누며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그 고민의 결과로 결국 대학에 진학하신 거군요?
결국 취업이 아닌 대학교 진학을 선택했는데, 좋은 선택이었어요. 오히려 취업하지 않은 덕분에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이 제가 기대한 것들을 모두 충족시켜 준 건 아니었어요. 대학은 워낙 다양한 세계의 사람이 오니까, 통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고, 예술에 대한 창의적 발상보단 기술을 배우는 수업이 많았어요. 그 때문에 예술로 활동하는 게 맞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 고민이 있던 와중에 유스보이스 교육자분들을 인터뷰하게 된 거군요?
한국 사회에서 예술가라고 하면 가난하거나 힙한 이미지로 많이 소비되는 것 같다고 당시에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예술가가 되기보단 '정상'적인 사회에서 평범하게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런 차원으로 대학에 진학하면서 예술 분야 중에서도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전공으로 선택하기도 했고요. 취업을 염두에 뒀으니까.
그때 좋은 기회로 인터뷰를 맡겨 주셨어요. 교육 현장 스케치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었는데, 영상을 찍으면서 인터뷰도 함께 진행했어요. 유스보이스 교육자분들이 모두 예술가셨는데, 예술을 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펼치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구나, 빛날 수 있구나 알게 된 것 같아요.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있고, 그걸 전달하기 위해 창작하는 모습을 보고 '내 창작물을 만들어가는 것은 멋진 일이고, 계속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뜻을 실험해 보고 지속하는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다채롭고 즐거운 예술과 예술가의 면모를 많이 볼 수 있었어요. 불투명과 미래를 고민하기보다는 현재 자신의 자리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을 시도하는 그들의 모습이 저에게 많은 동력이 되었어요. 덕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하게 취업을 하는 게 아니라 작업실을 구하며 창작을 이어나가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만큼 불안하지 않아요. 많은 창작자 친구들이 곁에 있으니까요.
기억나는 인터뷰가 있나요?
제롬님이 한 말 중에 유스보이스가 했던 교육자 양성 사업이 결과만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과정에서 창작자가 조금 더 실험하고, 경험을 가져갈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저도 대외활동이나 지원사업을 하면서 결과물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과정을 배려해주는 프로젝트를 만났을 때 마음 놓고 힘내서 하고 싶은 걸 실험할 수 있구나 생각할 수 있었어요.
다른 대외활동과 유스보이스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유스보이스 활동은 결과보단 확실히 과정을 지원해준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다른 큰 단체에서 하는 대외활동도 해봤지만, 그 활동들은 결과물을 내야 하는 시기나 형태가 뚜렷했어요. 과정을 수행하면서도 결과물을 항상 신경 써야 했는데, 유스보이스는 그렇지 않았어요. 돌이켜봤을 때, 유스보이스 활동이 더 기억 남는 이유이지 않나 싶어요. 그 과정에서 부딪히고 느낀 즐거움과 경험이 더 뚜렷하고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유스보이스 랩(lab)이라는 공간에서 편하게 작업을 하고 놀았어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연락하면서 지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10대 시절에 유스보이스의 경험이 왜 필요할까요?
우리나라 교육을 봤을 때, 결과 지향적이고 단일화되어 있다고 느껴요.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말할 기회고 없고, 과목을 암기해 시험 보는 패턴이에요. 자신이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기 힘든 시스템 같아요. 저는 그나마 특성화고에 가서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공교육은 자유보단 제재가 많은 것 같아요.
유스보이스는 학교에서 만날 수 없는 어른들을 만나게 해 줬고, 제 고민을 들어주고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 준 것 같아요. 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소년을 만나서 학교에서 할 수 없는 걸 해보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기에는 진로와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은데, 그럴수록 유스보이스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스보이스와 한 작품도 많잖아요? 소개 부탁드려요.
감사하게도 영상 제작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러주셔서 유스보이스가 진행하는 많은 활동들의 스케치 영상을 꾸준히 제작하게 되었어요. 2018년 유스보이스 교육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창창워크숍, 내 시간 메이커 클래스, 초록산타 등 다양한 활동의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죠. 솔직히 관심 없는 분야의 스케치 영상을 제작할 때는 지루한 일 같은데, 유스보이스가 진행하는 사업에는 선한 의미와 영향력이 있어서 영상을 제작하는 게 늘 즐거워요. 애정 또한 가득이고요.
개인적으로 작업한 작품이 있을까요?
<낙서>는 제 학창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에요. 중학교 때 모기업 시험이 저희 학교에서 치러졌는데, 어떤 응시자가 제 책상 위에 성희롱적인 말을 쓰고 간 거예요. 그 사건을 다시 되돌아보고 발화하는, 저에게는 '스쿨미투'의 의미를 담은 작품입니다.
2019년에는 바이크를 샀는데, 바이크를 타려는 여성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할리보다 좋은>을 만들고 있어요. 최근까지 촬영을 했고, 영혼이 탈탈 털려서 잠시 휴식기간이에요. 곧 편집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영화를 계속 찍고 싶은 건 왜인지 모르겠어요. (웃음) 과정은 힘들지만 이야기가 가진 힘을 끝까지 전달하고 싶어서 내년 봄까지 완성을 위해 열심히 작업 중입니다.
또 <조일인쇄> 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문래동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어요.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에서 30여 년 동안 인쇄업을 했던 <조일인쇄>의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인데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쇠락하는 산업 사이에서 가족 같은 동료로서 함께 보낸 시간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에요. 이 다큐에 출연하는 사람은 저의 고모와 그 회사 동료들인데, 제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 대단히 의미 있고 소중한 작품이에요.
마지막으로 ‘어슬렁’이라는 록밴드를 하고 있어요. 하자센터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어요. 정말 인생에서 밴드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역시 인생은 예상치 못 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네요. 왜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 음악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친구들과 몇 시간이고 합주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 그걸 알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유스보이스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시대가 바뀌면서 어린 나이부터 비건, 퀴어, 페미니즘 등 사회적 이슈에 관심 갖는 청소년이 많다고 생각해요. 유스보이스가 그런 청소년을 만났을 때 어떤 역할을 해줄지 무척 궁금해요. 저에게 해주신 것처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시면 청소년에게 좋은 힘과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늘 그랬던 것처럼, 원래의 가치를 잊지 않고 청소년들과 닿으려는 시도를 지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