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반 거리, 경기 북부 끝자락에 있는 보호소로 향하는 길. 평소 같았다면 “멀지 않아”라며 이야기꽃을 피우며 금방 도착하겠다고 생각할 길이었을 텐데, 오늘따라 길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마음이 급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평소 SNS로 연락하고 지내던 인친님이 살리고 싶은 개가 있다며 이동봉사 요청을 하고 있었다. 보호소에서 공고 기한이 끝난 개를 데리고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보호소에 들어온 유기 동물들은 10일에서 15일가량의 공고 기간이 주어진다. 그 사이 가족이나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아이들은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다. 특히 포화 상태인 보호소에서는 공고 기한이 끝난 후 바로 안락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구조자도, 나도 이런 사정을 잘 알기에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이 다급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도착한 보호소는 개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멍멍멍”, “왈왈왈”, “컹컹컹”, “앙앙앙”…… 모든 종류의 개 울음소리가 총집합해 보호소를 채웠다.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만큼, 그 냄새도 뒤섞여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겠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도착 후 관계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공고번호 000으로 기록된 개를 인계받기로 했다. 전날이 휴일이었는지라 대기실은 대기자들로 가득했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초조한 마음에 밖으로 나와 기다리는 동안, 실내에서 잦아들었던 개들의 소리가 다시 크게 들려왔다. 울타리 안쪽으로 눈을 돌리니 두 마리의 개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한 마리는 품에 안겨 가고, 다른 한 마리는 목줄에 끌려 궁둥이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질질 끌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안 좋은 생각이 스쳤다. ‘부디 저 걸음이 마지막이 아니길.’
그러던 중 저 멀리서 또 한 마리의 개가 목줄에 끌려 나왔다. 하얀 개는 온몸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떠돌며 살다가 포획되어 이곳에 갇혔을 테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그 아이가 바로 내가 인계받을 미순이었다. 첫인사를 나누며 말했다. “너무 예쁘네, 괜찮아, 괜찮아.” 정말 예쁜 아이였다.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미순이는 이동을 위해 켄넬에 태우자 이내 얌전해졌다. 미순이를 인계받고 관계자로부터 필요한 안내 사항을 듣고, 서류를 챙겼다. 회색빛으로 바랜 털이 그동안의 힘겨운 거리 생활을 보여주는 듯해 안쓰러웠지만,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보호소에 남겨진 개들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저릿하게 아팠다.
미순이는 이후 임시 보호 가정에서 ‘K-장녀’라고 불리며 기대 이상으로 의젓하게 생활하다가 결국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지금은 ‘준(June)’이라는 이름으로 새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고 있다. 미순이는 이제 평생 엄마 아빠의 딸이 되었고, 준이라는 이름과 함께 두 번째 생일을 만들게 되었다.
유기 동물 보호소는 가족을 잃었거나 버려진 동물들을 임시로 보호하는 공간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생명이 사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때론 열악한 환경이 논란이 되어, ‘생명이 살기 힘든 곳’이라 불리기도 한다. 물론 관계자와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개들의 입양을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남겨진 동물들의 현실은 가혹하다. 부상, 질병, 전염병, 죽음, 외로움, 불안, 두려움, 좌절, 긴장…… 짐작 가능한 모든 아픔을 그들은 견디고 있다. 보호소로 향하는 길, 그리고 다시 떠나는 길에서 내 마음은 늘 저릿하다. 내게는 그저 슬픔이지만, 그들에게는 슬픔을 넘어선 고통이기 때문이다. 남겨진 생명에 대한 죄책감이 지워지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저도 착해요
나도 뭐든 잘할 수 있어.
친구도 여기서 떠났는데
나도 나가고 싶어.
제발 나 좀 봐 줘.
- 개의 입장/박자울·황동진 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