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도 방이 생겼다

엄마들의 단체 카톡방

by 케이진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는 그 흔한 조리원 동기 하나 없이 8년을 아웃사이더로 지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다시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10대 내내 반장-부반장을 도맡아 열성이었던 내가 20대 들어서 사회생활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해서 뭐해? 어차피 내가 아무리 해봐야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나는 바보 천지같이 뒤에서 박수나 쳐주게 될 걸... '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죽어라 공부했는데, 덜 노력한 친구들이 편안하게, 오히려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걸 보면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삐딱했는지. 그땐 그냥 모든 게 마음에 안 들고 내 맘처럼 풀리는 게 없었다. 연애를 해도 얼마 못가 불만이 가득 올라왔고, 대학 때 만난 친구들과는 늘 묘한 벽을 하나 두고 어울렸다. 자격지심 비슷한 것도 있었고 '이 정도면 됐지. 여기까지만 할래.'라는 생각으로 무엇을 하든, 내 한계를 정해놓고 시작했던 것 같다.


그나마 취업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싸이월드,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이어지는 SNS의 태동기 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서 오는 갭을 견뎌내지 못했다. 지금은 '부캐'라는 개념이 익숙하고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10년 전의 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서 오는 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무척 혼란스러웠다.


분명, 내가 아는 A양은 우유 부단하고 언제나 '중립'이란 이유로 애매한 입장을 취해오던 사람인데, 온라인에서는 그렇게 단호하고 냉정할 수가 없다. 도대체 무엇이 진짜란 말인가. 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게 가식이라고, 거짓이라고,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마주하기 싫었고 아는 척하고 싶지도 않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나. 난 그들이 머무는 곳에서 내가 나오기로 결심했고 2011년 즈음, 결국 카톡, 페북, 트위터 등 모든 SNS를 탈퇴해버렸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모두 지워버리니, 내 마음은 너무나 평온했다. 다만, 사람들의 근황을 나만 모르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고 나와 연락하기 위해서 내 지인들이 나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카톡 없는 날 위해 일부러 텔레그램에 방을 만들고, 내가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을까 신경 써준 나의 찐 친구들.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그렇지만 트라우마처럼 남은 기억 탓에, 나는 SNS 하나 없는 생활을 한동안 계속 유지했다.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여전히 카톡은 쓰지 않았다. 조리원도 개별 방으로 되어 있는 곳을 선택했고, 수유도 나 홀로, 밥도 나 홀로, 누구와도 말 한번 안 섞고 퇴소했다. 임신하면 바로 가입한다는 맘카페도, 친구가 꼭 필요하니 가입하라고 알려줬지만 나는 가입하지 않고 버텼다. 심지어 유모차 끌고 밖에 나가면, 비슷한 또래 엄마랑 마주치기 싫어서 길을 돌아가기도 했다.


철벽녀도 이런 철벽녀가 없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입학을 앞두고 나는, 그동안 쌓아온 철벽을 이제는 무너뜨릴 때가 왔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안아서 키웠던, 유모차에 태웠던 아이는 이제 혼자서 학교에 가고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8살 아이 삶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내가 그 철벽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내 작은 울타리에 갇혀버릴 것 같은,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아이의 입학과 동시에 철옹성 같은 그 벽을 부지런히 깨부수기 시작했다. 매일마다 아이 친구의 엄마들과 인사를 하고 수다도 나누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한다. 누군가에겐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나에게는 많은 준비와 다짐이 필요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다행히도 나의 노력들이 조금씩 빛을 보고 있다. 다가오는 엄마들의 인사에 반갑게 답하고, 나 또한 아는 얼굴이 보이면 다가가 인사하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아이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놀이터에서 같이 놀고 싶다고 하는 친구의 숫자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 정도면 나름 성공적인데?’ 라며 셀프

칭찬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날, 한 엄마가 넌지시 나에게 물어봤다.


"저, 혹시 토요일에 같이 축구하실래요? 원래 6명이 한 팀인데, 아직 2자리가 남았거든요"

"좋아요! 할래요! 저 하고 싶어요!"


그렇게 아이가 축구팀에 들어가게 되었고, 나는 8년 동안 가져본 적 없는, 엄마들이 모인 카톡 단체방이 생겼다. 뭔가 혼자 동굴에서 지내다가 세상에 나온 것처럼 떨린다. 그 떨림은 설렘이기도 하고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래도 뭔가 노력의 결실처럼 느껴져서 기분은 좋다.


어쩌면 나는 8년 만에 ‘엄마'로서의 자아를 이제서야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자아가 본래의 ‘나’를 삼켜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동안 꽁꽁 싸매고 살았었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게 뭐라고... 이것도 저것도 모두 '나'인 것을 말이다.


대신, 날 위한 마지막 보루로 나는 카톡에 세컨드 프로필을 만들었다. “누구누구의 엄마입니다”


엄마로서의 나, 개인으로서의 나.

둘 다 잘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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