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마인드 (1) 거실
우리, 이렇게 한번 살아볼까?
벌써 이사 온 지 2개월이 지났다. 집 정리에, 아이의 입학식에, 쓰나미 같은 업무에, 양가 부모님 집들이까지… 그야말로 폭풍 같은 2개월이었다. 모든 이벤트가 끝나고 나니, 이사 온 새 집을 둘러보게 된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내리며 문득 드는 생각.
‘이거다. 늘 상상했던 아침’
헌 집 사서 새집 만들어 이사 가자고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필요한 공간의 기능들을 정리했다. 우리 부부는 평범한 공간을 우리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이럴 땐, 세기의 커플이 따로 없다. 새로 이사 갈 집을 결정한 순간부터 우린 눈에 불을 켜고 밤낮없이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이런 경우, 남편보다 내가 좀 더 발칙한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일단 무조건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한다. 어차피 아이디어인데 뭐 어떤가. 이 단계에서 나는 현실 가능성보다 내 상상이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즐기는 편이다.
"방 문을 다 없앨까? 문이 여닫히는 공간도 아까워!"
"2개로 나눠진 화장실을 아예 하나로 합쳐서 대중탕 같은 욕조를 만들까?"
"집 안에 복도를 만들까? 복도가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남편은 내 아이디어를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나는 거기서 묘한 희열을 느낀다. 거실을 방으로 넣고 싶다는 얘기도 남편의 첫 반응은 “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굉장히 자신 있었고 당당한 표정으로 마주 봤다.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아주 분명하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 생각해봐.
지금 우리가 살면서 가장 불편한 점 중에 하나가 바로 TV 시청인거 같아. 거실과 침대방이 붙어있으니, 애가 잘 때 우리는 맘껏 볼륨을 못 높이고 주말 아침에 아이가 영화를 보기라도 하면, 난 늦잠을 잘 수가 없어. 볼륨을 낮춰서 보니깐 한국 드라마는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려서 자꾸 자막 있는 것만 보게 되고, 예능을 볼 때도 볼륨을 낮췄다가 높였다가... 뭔가 몰입해서 보기가 너무 힘든 환경이야. 아이도 마찬가지고. 보는 사람도 안 보는 사람도 모두가 불편한데, 이게 왜 거실에 있어야 하는 거지?
그리고 또 하나. TV가 넓은 거실에 배치된 장면을 상상해봐. TV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린 거실에 맞춰 TV를 늘리지 말고, TV에 맞는 거실을 만들어 보는 거야. 공간이 좁으면 DVD방 느낌도 나고 사운드도 더 잘 들리고, 난 오히려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처음엔 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뒤돌아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더니 "그러네, 한번 생각해보자" 라며 "그럼 거실에선 뭐하지?"라고 이어 묻는다. 오케이! 일단 1차 설득은 통과다. 그다음, 내가 원하는 두 번째 이유를 말할 차례다.
그럼 넓은 거실이 비잖아? 우린 거기에 홈오피스를 만드는 거야. 우리 집의 중심이자 가장 넓은 이 공간은, 집에 가장 오래 머무는 사람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어차피 자기도 재택 하고, 나도 집에서 일하고. 학교 가는 사람은 1명밖에 없잖아. 지금 쓰고 있는 소파는 TV랑 같이 작은 방으로 들여보내고, 거실 한 벽면에 책상 2개를 놓고 각자 오피스 공간으로 사용하는 거지. 사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거실이 서재 같은 느낌이 나게 될 거고, 그럼 아이한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난 우리 집 거실이 위워크(공유 오피스)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어!
이게 내가 제안한 우리 공간의 큰 콘셉트였고, 남편은 처음엔 상상이 잘 안 됐는지 나한테 묻고 또 물었지만, 마침내 내 의견에 끄덕여줬다. 그리하여 우리 집 거실은 '스터디&오피스 공간'이 되었고, TV와 소파가 들어가게 된 그 방을 우린 '멀티룸'이라 부르기로 했다. 멀티룸이 사실상 거실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사를 하고 실제 짐이 자리 잡으면서 처음 계획에서 약간의 변동사항이 생겨나긴 했다. 책상 2개를 각자 놓기로 한 콘셉트는 커다란 우드 슬랩 식탁 1개를 놓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멀티룸 공간에 bar처럼 쓰고 싶어 제작한 테이블은 남편의 재택근무 데스크로 쓰고 있다. 하지만 큰 콘셉트는 변하지 않았다. 공유 오피스 같은 공간이길 바랐던 내 바람대로, 나는 커다란 우드 슬랩 한편을 내 작업실처럼 쓰고 있고, 아이는 그 옆에서 조립도 하고 책도 읽는다. 남편은 멀티룸에서 근무를 하다가 거실로 나와 커피 한 잔 하며 한숨 돌린 후 본인의 데스크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은 멀티룸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볼륨을 충분히 만끽하면서 볼 수 있게 됐다. 어두운 벽지와 블라인드 덕분에 약간 암막의 효과가 있어서 제법 영화관 효과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방음 공사를 따로 하지 않아서 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거실에선 들린다. 하지만 부부방이나 아이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면 소리는 90% 정도 차단된다. 그래서 아이가 잠든 후, 남편과 예능 틀어놓고 시시콜콜하게 떠들며 맥주 한잔 하기에도 아주 적절한 공간이 되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부모님께서 가끔 오시면 불편해하신다. 거실에 소파가 없고 TV가 없으니 “여기가 식당이지 집이니...” “이 집에 오래 머물지 말고 빨리 가라는 것 같다...”등의 모진 말을 듣게 될 수도 있다.(맞다. 내가 들었던 말이다;) 오실 때마다 “소파가 있어야지”라는 말을 매번 인사처럼 듣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2개월을 살아보니, 그런 말 정도는 “생각해볼게요.”라며 한 귀로 흘려보낼 수 있을 만큼, 지금 이 집의 콘셉트가 나는 참 마음에 든다.
뭐... 언젠가 나도 마음이 바뀌어서 거실에 소파가 들어오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땐 또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된다! 내가 더 나이가 들어서 도저히 소파 없이 못 살겠다 싶으면 구조를 바꿀 수도 있는 거니깐.
나에게 인테리어 한다는 건 매일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살 것인지 집이라는 공간에 ‘굳은 다짐’을 펼쳐놓는 것 같았다. 요즘 같은 시기엔 더욱더 그렇다. 여행도, 외출도 마음 놓고 나갈 수 없는 이 시기에, 집은 매일 아침이 시작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내 동선과 루틴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처음 공간은 내가 만들지만 그 공간이 결국 나를 다시 만든다. 그러니 이왕이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특히 거실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이사온 지 약 60일이 지나고 있다. 새집에서 살아본 소감은 역시 내가 상상한대로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 집에서 5년, 10년이 점점 기대가 된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인테리어를 계획한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다.
인생을 리부팅하기에 이만한 기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