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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Dec 07. 2021

격리해제대만1일차_ 천천리, 진천미, 폴라카페, 루이사

대만살기_week 1

" 지진나면 무너질 집 "

직장인으로 대만살기 _ week 1



天天利(천천리), 真川味(진천미), polar cafe(폴라카페), Louisa(루이사커피), 台灣啤酒(타이완맥주)




3주간의 격리가 끝이 났다. 나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미리 계약해 둔 집에 짐도 풀지 않고 우선 밖으로 나가 바깥세상 구경을 실컷 했다.

오토바이 쌩쌩, 여기저기 비보호 좌회전 우회전 유턴에 정신없는 도로를 보자니

세상 별일없이 돌아가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무슨 감옥에서 나온 사람같은 기분도 들어서 두부라도 사다 먹어야하나 했지만,

오바하지 않고 얌전히 카페에서 사람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나의 대만생활 첫번째 카페_ Louisa Coffe






회사동료와 방문한 나의 첫번째 카페는 그야말로 훌륭했다.

루이사커피라는 곳이었는데, 세상에 이 퀄리티에 이 가격이라니 싶은 엄청난 곳이었다.


*

훗날 알게된 사실이지만, 대만에서 이렇게 저렴하고 잘 되어있는 카페는 루이사가 유일한 것 같다.

 (그저 첫 날 운이 좋아 좋은 장소를 발견했을 뿐...)

*


음료 한 잔에 한국돈으로 3천원 정도이고, 샌드위치와 파니니 등의 먹을거리도 모두 저렴했다.

집 앞에 아무곳이나 고르지도 않고 들어온 것인데, 탁월한 선택에 기분이 좋아졌다.

참치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심지어 맛도 있었다. (물론 엄청난 맛은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 미리 살 곳을 계약하고 넘어왔다.

쓰리룸의 집으로 한 방에는 집주인이, 다른 두개의 방에는 나와 회사동료가 산다.




한국에서 집주인과 영상통화로 인터뷰까지 하며 어렵사리 구한 집으로 사실 기대하는 바가 매우 컸다.

회사 근처로 위치를 구하기보다는 우선 집의 컨디션을 먼저 보았기에 그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집은 나의 기대의 하한선보다도 현저히 낮은 퀄리티로 나를 맞이했다.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컴컴한 공동계단을 5층까지 올라서면


아 아니, 이 집에 대해 설명하려면 마을공동체부터 출발해야한다.

오토바이 소음과 매연이 진동하는 골목을 따라 굽이 굽이 들어가면, 조그마한 사찰이 하나 나오는데

그 사찰이 보이면 좌측으로 꺾어 다시 으스스한 골목으로 들어가야한다.

3분정도 다시 걷다보면 아직 사용하는지 모르겠는 녹이 슨 자전거들 더미에 묻힌 회색 철문이 하나 나오는데

그 곳이 바로 나의 새 보금자리이다.

엄청나게 두꺼운 회색 철문을 덜컹 하고 열고나면 (정말로 털컹!!! 소리가 난다.)

(여기서부터다시_)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컴컴한 공동계단이 나오게 된다.


낮인지 밤이지 모를 계단은 한칸한칸이 스쿼트에 적합하도록 매우 높게 만들어져 있고,

그 옆으로는 그나마 어두운 이 공간에서 가장 밝은 모습의 자주빛의 손잡이가 5층까지 이어져 있다.

갑자기 왕! 하며 나를 놀래킬 무언가가 나올 것만 같은 현관문을 8개 지나고 나면 바로 왼쪽에 나의 집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현관문을 열면 다시 두 개의 문이 나오는데 나의 집은 직진해야 비로소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대만에는 이런 건축물이 많다고 한다.

한 집을 개조해서 쪼개고 쪼개고 쪼개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밤이면 밤마다 내 침대 맡에서 들리는 옆집(사실은 같은집)의 화장실 물내리는 소리와 용변소리를 모두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우선은 격리로 인한 피곤함과, 대만에 겨우 도착했다는 기쁨으로 우리는 걸을 때 마다 쿵쿵거리는 이놈의 집구석에 대한 불평은 잠시 뒤로하고 목구멍에 칼칼함부터 채워주기로 했다.


카페에서 나온 뒤 들린 편의점에서 신라면 두 개를 사와 끓여먹었다.

평온한 집안에서 먹는 라면임에도 불구하고 야영캠핑장에서 먹는 특별함이 가미되었다.

배가 조금 차기시작하자마자 나는 회사동료와 이런 저런 스몰토크를 나누며 앞으로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깊은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짐을 대충 정리한 후 시먼에 있는 까르푸에 가서 이불과 옷걸이 베개 샴푸 등등의 생활용품들을 사왔다.

이불과 베개는 곧장 집 근처 코인세탁방에 가서 세탁을 했다.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것 같아 아예 회원권을 끊어 많은 돈을 충전했다.


그도 그럴것이...우리 집에 놓여진 세탁기는 한번 빨래감을 돌릴 때 마다 지진이라도 난 양 덜덜덜덜 온 집안이 다 부서지도록 열심히 방망이질을 해주셨기에 그곳에서 빨래를 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조금 덜 예민한 회사동료는 신경쓰이지 않는건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건지 두어번 빨래방을 이용한 후로 집에서 빨래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 후로는 어차피 누군가 세탁을 해 온집안이 시끄러울 것이라면 같이 동참하자하여 동료와 함께 빨래감을 돌리게 되었다.

이렇게 좋지 않은 환경에도 익숙해져가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어찌 적응하며 살 수 있지 않겠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창문 하나 없는 이 집에서 기나긴 그 습한 여름을 어찌 나나 싶은 생각이 들어 얼른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자 또 그런 이야기가 오고가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일주일간의 휴가아닌 휴가를 주었는데, 그 덕분에 우리는 매일밤 맥주를 마시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밤마다 들리는 옆집의 소음에 매일 불면의 밤을 지새웠지만 그래도 외국에서의 생활이란 즐거웠고 설레였다.

여행으로 와서 즐겨마시던 타이완비어와 매번 바리바리 캐리어에 우겨넣곤 했었던 왕왕이 과자.

그것들이 이제는 넓게 펼쳐진 시간 속 나의 일상이 될 수 있다니...


이런 환상적인 모험이,  이제는 다 늙었다. 다 끝났고 정착해야할 시간이다 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다시 주어지다니.

점쟁이의 말처럼 내 인생이 이제 꽃피려나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맥주와 배달음식을 시켜먹던 것과 사실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조그마한 색다름도 이렇게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런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반대로 언제고 다시 해외에 나가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소중해질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사는 것은 참 어렵다.




한가로이 시먼 한복판을 걷다보니 여행 온 기분이 한껏 났다. 시먼 거리는 여전했다.

여전히 복잡한 듯 살짝 아담했고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외국인이 없다는 것?

대만은 코로나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가 시작된 시점부터 나라문을 굳게 잠궈두었다.

따라서 미리 비자를 받은 사람 혹은 업무상 오는 사람을 제하고는 대만국적인 사람의 배우자라 하여도 비자가 나오지 않고있다.

그래서 대만은 현재 외국인청정지역이다.

그야말로 텅텅 비었다.



*모든 사람이 하는 말과 쓰는 단어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녹아들어갈 수 밖에 없나보다.

무심결에 <외국인 청정지역>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청정지역'이라는 언어가 주는 느낌이 다소 부정적인 것 같기도 하여 스스로 내가 외국인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나 잠시 생각해보았더니. 정답은 yes였다.

우선 나조차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면서 해외에 있는 외국인들에 마냥 좋지만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모순됨.

고쳐나갈 수 있을까.*




첫번 째 행선지는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만샤오츠집.

천천리이다.


천천리는 루로우판, 로보까오, 루로우미엔 등등 대만전통음식들을 파는 작은 노점이다.

나는 루로우판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 곳의 루로우판은 특별하게 더 맛있다.



루로우판이 맛있으려면 아래의 조건들이 필요하다.

1. 고기 양념만 잔뜩 주는 곳이 있음. 진짜 맛집은 잘게 썬 루로우를 많이 올려준다.

2. 고기 누린내가 적다.

3. 한국인은 계란 혹은 치즈 추가를 좋아하지 않던가. 계란추가가 있는 루로우판집은 일단 무조건 맛있다.


천천리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또한 장사가 잘 돼서 회전률이 좋아 노점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상할 염려가 조금이나마 줄어든다.


대만 여행에 올 때마다 무조건 천천리는 꼭 먹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먹어보니 여전히 그 맛 그대로 였다.

또 관광객이 없어도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역시 현지인도 아는 맛집임이 분명했다.



다시 거리를 걸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천천리는 점심으로 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양도 너무 적었고... 샤오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작게 취급해줄 것이다.


점심은 회사동료들과 함께했다. 총 3명이었는데 그렇기에 여러 메뉴를 시킬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역시나 시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 진천미에 왔다.


진천미는 대만식사천요리 전문점으로 1호점, 2호점이 있다.

두개가 서로 마주보고 위치한다. 둘 다 가보았는데, 나는 1호점이 그래도 더 편했다.


창잉토우라는 저 파볶음이 예술이고, 두부튀김도 맛있고 특히나 저 갈비찜이 진짜 대박이다.

나는 한국에 파는 갈비찜보다 더 맛있어서 너무너무 좋아한다.

천천리를 먹고도, 밥을 두공기나 더 먹었다.


아직은 여행을 온 것처럼 마음이 조급하고 그렇다.




점심을 먹은 후 카페에 왔다. 여행할 때는 카페에 잘 다니지 않았기에 대만에 어떤 카페들이 있는지는 정말 알지 못했다. 셋이서 아무리 머리를 맞대어도 시먼에 괜찮아보이는 카페를 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발견한 시먼역 6번출구 바로 앞의 폴라카페.

한잔에 7,8천원이나 하는 음료를 시키고 옥상 자리에 앉았다. 루이사커피는 3천원이면 충분했는데, 라떼하나에 8천원이라니.

바가지를 잔뜩 쓴 것 같았지만 겨울같지않은 맑은 날씨, 그리고 그런 날씨를 즐길 수 있게 마련된 옥상 자리에 감사하며 만족하기로 했다.


좋다-

좋다~!

그냥 다 좋다~!!


회사동료 한 명은 대학을 갓 졸업한 나이로 역시나 나이에 걸맞게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었다.

커피 사진 풍경 사진 하나에도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나에게도 그런 열정이 있었던가.



스무살무렵, 유행처럼 너도나도 그 무거운 dslr을 목에 걸고 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도 겉멋들어 치지도 않는 또다른 겉멋 기타를 중고거래로 카메라와 바꾼 적이 있다. 카메라 렌즈에 눈을 맞추고 이리저리 찍어보길 한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예쁜 사진은 좋은 카메라가 아닌 그 좋은 카메라의 좋은 기능들을 배워서 사용할 줄 알아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아빠에게 인심쓰듯 넘긴 기억.


그 기억이 떠올랐다.

이리저리 공을 들여야 동글동글 예쁜 공이 만들어질텐데.


결국 나이는 열정을 대변하지 않는다. 커피 한 잔에 휴대폰을 이리 대었다 저리 대었다 열심히 찰칵대는 그의 모습은 깊게 생각해보지않은 내게는 마냥 젊은이었지만.

젊음은 사실 아무짝에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깊게 생각해본 후 알게된 내게는 "젊은이의 열정"같은 말도 안되는 관용적 수식어같이 들리게 되었다.





열정은 무슨.

내 몸하나 다루기도 힘겨운 늙은 젊은이는 오늘 하루를 발바닥 각질제거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슥슥삭삭

각질 벗겨지는 느낌과 함께 오늘 하루 참 좋았다- 오랜만에 생각했다.


저녁은 초밥을 사와서 컵라면과 먹었다.

행복했다.

참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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