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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Nov 28. 2021

자가격리 9-1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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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느즈막이 일어나 책을 한 권 뚝딱 읽었다.


가끔은 단순한 말이 가장 좋다.


역사의 쓸모라니.



책은 어렵지 않게 학생들도 쉬이 읽을 수 있게 쓰여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역시 '역사의 쓸모' 부분이었다.


역사를 왜 배워야하는지에 대한 최태성선생님의 견해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 부분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역사를 어려워해서 사실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데,


그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망각" 이다.


외워도 외워도 까먹는 나쁜 머리로는 역사를 아무리 익혀도 남들 앞에서 아는 체 하기가 영 쉽지 않았다.



그런데 책에서 역사의 쓸모에 대해 의미있게 풀어주었다.


그 순간의 의미를 잃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때의 기분 말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니...


그렇게 듣고나니 내가 학창시절, 또 졸업하고 나서도 공부해왔던 역사들이 쓸모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 뿌듯해졌다.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인생을 더 넓게 봐주게 해주는 것.



역사를 다시   진지하게 배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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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사진들.


역사와 같은 맥락으로 음식도 참 신기하다. 음식도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문화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에도 이질적인 대만향이 살살 퍼지는 것을 보니, 내가 우리 땅을 정말로 벗어났음이 한 입에 실감났다.


 


8일차를 넘어가니 생소한 음식들이 입에 맞음이 신이 나기보다는 괜한 답답함의 분풀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점심 도시락의 하얀 고무줄 같은 음식이 정체도 알 수 없어 싫었고


간식으로 주는 아스파라거스 주스도 맛이없어 짜증이 났다.


주는대로 받아먹는 것도 이렇게 불평불만이라니.


사실 호화스러울지도 모를 호텔에서의 격리가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감을 느꼈다.





결국 참지못하고 우버이츠로 우육면과 만두를 주문했다.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고, 그나마 칼칼하게 목구멍을 넘어가는 국물요리에 격리를 못참고 창문 밖을 뛰어넘는 황당한 상상을 멈출 수 있었다.



격리 덕분에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드라마들을 다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선택이 바로 김과장이다.



하루이틀삼일만에 쉼없이 김과장을 보다보니 내가 그 드라마속에 같이 살고있는 사람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남궁민의 목소리가 조금 느끼하게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연기를 기가막히게 잘하니 그런 것 따위는 금세 잊혀지고 드라마에 빠져들 수 있었다.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목소리임에도


정말 사람의 매력은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같다.



가지지 못한 것을 탓하기 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김과장을 보며 뜬금없이 든 생각 (1)




김과장은 회계천재인 남궁민, 즉 김과장이 대기업에 얼결에 들어가 그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게 되는 내용의 드라마이다.


당연히 여러 사람들에게 모함을 당하고 중간중간 크나큰 위기들이 생긴다.


역시 사회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삼박자도 아니고 백여박자 정도는 맞아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설프게 가진 자는 쫄려 뒈질 뿐...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져야 최소한 시도라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소시민적 발상인 것 같다면 매우 정답이다.


나는 앞으로도 지금껏 그래왔듯 적당히 적당히 내가 나설 수 있을 때만 나서며 살아가야 하겠다.


김과장을 보며 뜬금없이  생각(2)





 번의 같은 요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매 시간을 침대와 함께 보내고 있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하고는 침대에 절대 눕지 않던 나였는데 이상한 생존본능을 익히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요일이 왔음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수요일, 목요일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주말이 온다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막상 토요일 일요일이 오면 그 다음 월요일이 생각나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기대감으로 힘든 하루를 버티는 것이 더 힘이 난다.


이미 가져버린 행복보다 다가올 행복을 기대하면서 사는 것이 나에게는 더 커다란 힘이 된다.


왜일까.


내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 그럴까.




괜히 전처럼 목요일을 기념해 보고자 이제는 익숙한 내 공간에 핀 무지개를 찍어보았다.


나만 보기 아까워 카메라도 들어보았건만,


보여줄 이가 어찌 나 뿐인건지.



내 방에 놀러온 무지개 손님한테 머쓱한 광경이었다.





지금 한국의 하늘은 무슨 색일까.


단지 하늘 색이 궁금해, 하늘 타고 무지개 넘어 구경가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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