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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Sep 07. 2021

자가격리 2-8일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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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도시락 배달을 알리는 노크소리에 가까스로 잠에서 깨어났다. 

*가까스로 라고 하기에는 스스로 원해서 잠에서 깨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만...

(아마 이 이유에 대해서는 자가격리를 해본 사람들은 완벽히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4학년 시절, 내 휴대폰 사진첩에는 천장 사진이 가득했다. 

당시 친했던 동기와 취업준비 공부를 하기가 싫을 때 마다 서로에게 천장 사진을 찍어 보내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사진첩엔 늘 기숙사 천장 모습이 가득 차 있었다.

천장 덕분인지 천장 때문인지 오랜만에 그때의 그 시절이 생각났다.

 

나의 천장 친구는 지금은 나와 절연했다. 

우연한 시기에 우연한 기회로 자연스레 서로 멀어졌지만 나는 가끔씩 그 친구 꿈을 꾸곤 한다. 

누군가는 그 시절 나와 함께 해주었다는 것만으로 그 인연은 그냥 감사하게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왜 그렇게 바짓가랑이 붙잡고 절절하게 매달리고 싶은지 모르겠다. 

추억을 이야기할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별 일 아닌 일일까.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인연을 새삼스럽지 않게 보내줄 수 있는 나이'의 어느 날, 진정으로 멋진 이별을 해보아야겠다. 








대만정부의 구호물품이 도착했다. 

한국에 비하면 소소하지만 그래도 격리생활 중의 달콤한 선물임에 대만에 너무 감사함을 느꼈다. 

桃園市政府 關心您

투박한 초록색 봉지에 담긴 저 글귀가 가뜩이나 외로운 내 마음을 울린다.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며 간식들이 조금씩 동나고 있던 차에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아서 다행이었다. 

가장 왼쪽 사진에 있는 維力炸醬麵 (웨이리짜장면)은 너무 먹고싶어서 호텔에서 준 도시락을 다 먹은 후 도시락용기에 뜨거운 물을 붓고 해먹었다. 대만의 국민라면으로 불리는 웨이리짜장면은 봉지를 뜯으면 안에 두 종류의 스프가 있는데, 나는 뭣도 모르고 두 종류의 스프를 몽땅 도시락 용기에 넣고 3분을 기다렸다. 살살 비벼서 첫 맛을 보니 세상 그렇게 짜고 짠 라면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엄청난 짠 맛 뒤로 달콤짭쪼름한 대만식 짜장면의 맛이 나서 '음... 이게 대만맛인가? 먹다보면 적응이 되나보네' 하며 그렇게 완면을 했다. 훗날 알게된 사실로는 두 종류의 스프 중 하나만 넣는 것이 바른 조리법이었다. 하나는 비빔 라면용 스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물용 스프였다... 그 짠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었다니... 식탐은 실로 사람을 미치게한다.






기분좋은 배부름이 아닌 우울을 동반한 불쾌감이 식곤증이 오듯 순식간에 몰려왔다. 

일주일도 채 되지않았는데 벌써 헤쳐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분명 모두가 다 그런것은 아니었다. 

코로나시대에 자가격리는 누구든 할 수 있는 아주 가벼운 사건임에도, 남들보다 강하다고 믿는 나는 되려 왜이렇게 약한 모습만 보일까. 슬퍼지는 찰나에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사람의 인연은 신비롭다. 나는 강아지마냥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럼에도 따스한 사람들에게 받은 많은 사랑 때문일거다. 자가격리를 하며 참 많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받았다. 

내 성격은 고약해서 내가 바쁠 때 방해 받는 것도 싫어하고 매번 제멋대로 굴기 일쑤다. 

그래서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하거나 sns을 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친구들이 이 기간에 나에게 전화를 해준다는 것은 아마도 오롯이 나를 위한 일일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나는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서 친구에게 오랜만의 낯간지러운 인사표시를 했다. 매일 전화를 해서 나를 챙겨주어서 고맙다고 말이다. 

친구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알아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사실 귀찮아할까봐 약간 걱정도 했다는 가벼운 농담과 함께. 

사람들과 섞여 사는 것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갑자기 감동스러운 사건 하나로 마음 속의 우울이 걷히자 나는 무언가 새로운 활동을 할 의욕이 생겨났다. 

나는 (또한) 친구들이 자가격리 기간에 하라고 선물해준 칼림바를 집어들었다. 

골무는 왜 주는걸까...?하고 생각했었는데 한 번만 연주해보고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손이 무지막지하게 아파왔다. 

칼림바는 앙증맞고 소리는 청량한 매우 매력있는 악기였다. 그 연주법 또한 간단했는데, 인터넷에서 다양한 가요 악보들도 쉬이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쿨의 아로하를 연습했다. 느린 반주, 빠른 반주에 맞추어서 뚱땅뚱땅 연습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손가락을 퉁 하고 튕기면 작은 나무악기에서 울리는 작은 떨림이 칼림바를 쥐고있는 양 손에 파르르 전해졌다. 손에 감각이 느껴질때쯤 함께 들리는 맑은 하프소리같은 칼림바만의 독특한 음색이 기분을 매우 좋게 해주었다. 기타연주의 끝부분에 나는 조그마한 쇳소리를 좋아하는데, 칼림바는 쇳덩이가 튕겨졌다 올라올때의 작고 둔탁한 마찰음이 있어서 마찬가지로 묘한 매력이 있었다. 작고 귀한 악기였다. 








대만정부에서 받은 선물의 따끈함이 식기도전에 또 하나의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이번 선물은 호텔측에서 보내주었다. 

설날을 맞이해서 갇혀있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보내주는 호텔측의 다정한 챙김 

마음속 깊은 곳까지 대만에 대한 고마움이 생겨났다. 

선물로 지나지않고 저녁에는 맛있는 특별 도시락까지 전해졌다. 








많은 정성이 느껴지는 실로 맛있는 만찬이었다. 나는 배가 불렀지만 감사함을 온몸으로 받고싶어 꾸역꾸역 입속으로 음식 하나하나를 집어넣었다. 토마토하나, 양배추하나 닭고기하나 (사실 이제는 배부름을 못느끼는 지경에 다다른 것 같기도 했다.)

움직일 수 없는 작은 방 한칸에 숨겨져있는 나를 위해 누군가 한명이라도 눈치채고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대만에 오고자 한 이유는,

결혼과 나이에서의 도피였고

홀로완전해짐의 시작이었고 

새로운 사람에 대한 갈망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 모순된 헝크러진 목적들. 

이 여정이 나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년 후에 많은 것을 얻어가면 좋겠다. 

하지만 얻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겠지. 

내가 도전했고

여전히 용기있었고 

멋졌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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