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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Aug 24. 2021

자가격리 2-8일차 (1)

202102


방역호텔에서의 두번째 날이 밝았다. 나에게 온전히 주어진 오늘의 이 하루를 나는 <쉼>으로 이름 붙였다. 

대만에 오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바쁘게 지냈기에 하루는 오롯이 쉬어야지 다짐했더랬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방정리를 했다. 

완벽한 <쉼>을 위해서는 깨끗한 장소가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다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된 나의 스낵코너. 

굳이 꾸역꾸역 챙겨온 한국의 간식들이 현재는 나의 보물 1호이다. 

만약 내 격리생활 중 지진이나 심각한 대피 상황이 발생한다면 치토스 하나, 신라면 하나 품에 안고 도망가리라. (호주머니에 몰티져스도 야무지게 챙길 것이다.)



하릴없이 앉아있다 한켠에 쌓여있던 숨은그림찾기 잡지를 꺼냈다. 

재작년 일본여행을 갔었을 때 샀던 심심풀이 땅콩인데 이렇게 이곳에서 빛을 발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역시 물건의 진가는 상황에 따라 장소에 따라 시시때때 바뀌는 것이다 .

나는 노래를 들으며 별다른 부담없이 오늘의 쉼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나의 소소한 행복이 되어주는 숨은그림찾기는 사실은 슬픈 사연을 안고있다.  



숨은그림찾기는 나홀로 일본여행을 갔었을 때 교토에서 구매했던 책자인데, 

사실은 당시 남자친구와의 이별로 홀로 떠나게 되었던 여행이었다. 


여행날짜를 고르고, 묵을 숙소를 찾고, 고즈넉한 카페에서 둘이 앉아 행복한 상상을 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나는 "***님은 같이 탑승 안하시나요...?"라는 어색한 항공사직원의 말을 들으며 홀로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도저히 외로워서 사게되었던 그 책이, 지금도 내 외로움의 빈자리를 채워준다. 

깊게 의미를 부여하니 갑자기 무언가 대단해보이는 너란 녀석. 


물건의 진가는 별거없이 내가 부여해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답이 없는 숨은그림찾기를 하다보니 그래도 조금 지루해졌다. 

나는 다시 구석구석 짐가방을 뒤적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지금 나에게 보이는 세상의 전부 


나는 자동차에 대한 집착이 심한 편인데 문득 창밖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대만에서 차를 타게될 일이 있을까- 하는 간단한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는 실로 대단한 발명품이자 생활용품이다. 

가장 간편하게 사람들의 행동반경을 넓혀줄 수 있다. 

자동차에 대한 이런 나의 집착은 어렸을 때 부터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이 있던 그 시절,

내가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부모님은 가끔 나를 방에 앉히곤 둘이 이혼하면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 장난반 진담반으로 묻곤 했다. 

그때 나는 어김없이 "아빠." 라고 답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미취학아동이 할법하지 않게 얄궂고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부모님이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 지 물으면 나는 늘 "엄마는 운전을 못하잖아." 라고 말했다고 한다. 

제법 총명하지만 얄미운 어린시절의 나의 대답은 사실 현재까지도 '운전'과 '이동'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거나 사색을 하거나

한 인간의 많은 경험을 도와줄 가장 편리한 도구는 역시나 자동차이지 않을까...



창밖을 바라보며 자동차에 대한 생각을 반시간 정도나 한 것 같다.


대만에서 내가 차를 타볼 일이 생길까

누군가의 차에 타게 될까

아니면 내가 끌어볼 수 있을까. 


거침없이 빠른, 자동차보다 몇십배는 훌쩍 뛰넘는 비행기를 엊그제 타고왔으면서도  

나는 한없이 작은 내 보폭과 비교되는, 도로위를 쌩쌩 자유롭게 달리는 저 멋드러진 자동차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 마음의 양식 �

아무것도 안하고자 할 때는 과자나 컵라면으로 시간을 보냈다. 


물론 호텔에서 넘치리만치 충분한 간식과 도시락등을 주고 있지만, 무료함을 달래기에는 한국에서 데려온 과자들이 최고다. 

요새는 악작극지문을 다시보기 하고 있다. 

악작극지문(장난스런키스 대만판)은 내가 중학교때 엄마랑 같이 보았던 내 첫 대만드라마이다. 

사실 대만이라는 나라를 저 드라마로 처음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막상 현재 몇달을 살아본 소감으로는, 대만에 오기전까지는 대만에 대해 내가 이해하던 모든 것들은 허상임을 알았지만...)


지진으로 샹친의 집이 무너지며 드라마는 시작되는데 

그와 동시에 나도 호텔에서 어마어마한 지진을 난생처음 두번이나 겪게 되었다. 










fin. 자가격리 2-8일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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