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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Apr 21. 2022

대만생활_4월의 일요일에세이

" 모처럼 한가로운 4월의 일요일 "

              - 모처럼 오늘은 다시 감성일기 -

      


                                                                                                    직장인으로 대만살기_week 9




圓夢炸雞(꿈닭치킨_시먼), 三角三(삼각삼_시먼)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할 것이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미니 언니한테 공언을 했다.

토요일까지 버닝하고 일요일은 온전히 휴식의 시간을 가지리라.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 않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려 노력하지도 않고, 운동을 하지도 않을 거고 그냥 삼시 세끼 맛있게 먹고 칼로리나 당 함량에 신경 쓰지 않고 디저트도 먹을 것이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서 책도 읽고, 너무 더워지기 전에 나가서 아침 산책 (을 빙자한 마트 투어)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미니 언니도 나른하게 테라스 한자리 꿰차고 모처럼의 일요일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편안해 보여 나도 옆자리에 자연스레 합류했다. 



< 우리의 갑작스레 성사된 모닝 피크닉 >


대만의 여름을 제외한 날씨는 감탄이 나오도록 좋다. 특히 나는 가을 날씨를 좋아하는데 이 시기의 대만은 완벽한 가을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상하게 봄 날씨와 가을 날씨는 비슷하지만 나는 콕 집어서 가을이 좋다. 엄마는 그랬다. 봄에는 새싹들, 나무들, 꽃들, 봄기운에 잠을 깨는 자연의 모든 것들에게 힘을 내어줘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가 빠지곤 한다고. 겨울이 드디어 지나고 화창하게 갠 하늘, 길거리에 알록달록 모여있는 꽃들을 바라봐도 이상하게 우울 빛 마음이 돌던 것이 계절 탓이었나, 내 기운을 뺏어간 꽃들 탓이었나, 엄마의 말을 듣고 그렇게 탓해보았다. 그에 반해 가을은 외롭지 않다. 외로운 사람이 나뿐이 아니니까 외롭지 않다. 분주하게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들, 이파리 힘없이 떨어지는 키 큰 나무들, 그 사이 위로해 주듯 불어오는 딱 적당한 온도의 가을바람. 가을은 그렇게 사계절 내 가장 큰 위로이다. 대만의 계절이 가을 같다니, 내가 대만을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지친 한국생활에 적당한 때맞춰 불어온 가을바람 같았나 보다.  






圓夢炸雞



꿈닭치킨이라는 시먼에 있는 한국 음식점.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김밥에 라볶이 같은 거 간단하게 먹자고 들어간 곳인데, 맛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어쩌다 보니.... 양파 치킨까지 시켜버리고 말았다. 김밥에 라볶이에 치킨까지 더해지고 사장님이 주신 계란찜 서비스까지... 배가 터져갔다. 오늘 처음으로 내가 원해서 한국 음식을 먹고 싶은 날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해외 생활을 많이 해서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가 거의 없는 편이다. "맛있는 건 다 좋아" 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외국 음식 먹는 것도 워낙 좋아해서 한국 음식 몇 년 못 먹는다고 살이 쪽쪽 빠지고 힘들어하고 그러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한국 음식이 그리운 날, 언니랑 오늘은 점심 저녁 다 한국 음식으로 끝장을 내버리기로 파이팅을 외친다. 

꿈닭치킨에서 그래서 소주까지 마시게 되었다. 대만은 그래도 한국이랑 지리적으로 가까운 편이라 소주가 그렇게 비싸지 않다. 8천원 정도면 1병을 마실 수 있다. 예전에 호주에 있었을 때는 한 병에 이만원을 훌쩍 넘어서 소주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입안에 털어냈다. 



얼마 전에 호주에서 지낼 때 만나던 한국인 남자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잘 지내는지, 대만 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한국은 언제 돌아오는지 그런 안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아직 나를 좋아하고 있다며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학창 시절 내 첫사랑이었던 그는 나와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와는 총 3년 정도를 만났다. 고등학생 때부터 호주 생활까지 합쳐서 계산한다면 말이다. 나는 한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언제나 한국에 돌아오면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상대방에게 100을 노력하면 상대는 겨우 1을 알아챈다고. 연인이라는 건, 그 1이라도 알아채야 유지되는 관계여서 언제나 둘 중 누군가는 꼭 100을 주고 있다고 말이다. 그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언제나 나에게 100을 주던 사람은 그쪽이었다. 1밖에 안 준다며 투정 버리던 건 말하지 않아도 내 쪽이었으리라. 

몇 년 만에 연락이 닿은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나에게 100만큼의 사랑을 주어서 고맙다고. 그는 머뭇거리더니, 알아주어서 고맙다고, 답해주었다.



그는 내가 그에게 100의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사랑을 주었다고 말했다. '날것의 사랑'이라 표현했는데 그 표현이 그가 이름 붙인 '나의 사랑'이었지만 꽤나 멋있고 자랑스러워서 마음속에 새겨두기로 했다. 





三角三



오늘 글을 쓰며 처음으로 사진을 잘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보다 중요한 건 글이야. 항상 뚝심 있게 가자며 생각해왔는데, 내 사진첩에 남겨진 삼겹살과 치킨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내 사진첩에도 내가 쓰려는 감성 글에 어울리는 파스텔톤 화이트 빛 사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야 소주향에 취해 저 삼겹살을 구울 당시의 내 감성이 어느 정도 되살아나지만, 대체 누가 안 익은 선홍빛 생고기와 고구마 세 조각을 보고 전 남자친구에 대해 추억에 빠진 이상한 여자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겠는가.... 

모처럼의 감성일기, 모처럼의 전남친과의 사랑 이야기에 알맞게, 그냥 하던 대로, 날것의 사진에 꾸며지지 않은 일상의 이야기를 적는 게 그냥 나라는 사람의 글인 것 같기도 하고... 에세이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은 마음이 들고 있다.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낸 다는 것은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를 더 멋져 보이게 꾸밀 수 있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대로 고깃집 사진이라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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