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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Dec 12. 2022

대만살기_룸메언니와의 마지막 주말

" 미니언니와의 마지막 주말 "

   

   


                                                                                                     직장인으로 대만살기_week 17







저스트키친에서 드디어 우육면을 시켜봤다. 샐러드 집에서 우육면을 팔다니... 이렇게 유혹적일 수도 또 없어서 참고참다가 시키게 된 "그" 우육면. 

칼칼하게 목구멍을 넘어가는 고기육수의 진한 맛에, 그래 샐러드 너따위가 이 깊은 맛을 낼 수 있겠냐 싶은 마음이 들며

샐러드와 함께 해왔던 그간의 정을 모두 던져버렸다. 



오늘은 미니언니와 함께 하는 마지막 하루전 날의 저녁이기에 치팅데이겸 언니랑 맥도날드랑 우육면까지 알차게 시켜먹었다. 

이왕 제대로 먹는 거 제로콜라까지 콘스프로 바꿨다. 

아주 대단한 플러스 식단이 완성된다. 

 






다음날 아침, 

언니와의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러 오전 내내 택시를 타고 타이베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펑리수도 특별하게 주고싶어서,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베이커리 세군데에서 조금씩 다른 맛으로 주문했다. 

언니가 좋아하던 대만 과자랑 컵라면, 젤리, 여러 간식들을 사고 

샤피에서 대만맥주컵도 배달시켰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무게가 많이 나가길래...

이미 들고가야할 짐도 많을텐데 이게 무게가 되려나 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주는 마음이 중요하고 정 뭐하면 놓고가도 택배로 보내도 되니까 우선은 주고싶은 물건을 다 사자고 생각했다. 





 습도 95에 온도 35도가 넘는 대만의 여름 한 가운데에서 

5분 이상의 거리를 걷는 것 조차 숨소리가 헉헉 나며 버거웠지만

언니와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땀방울에 눈물방울이 겹쳐 날 것만 같았다. 








오전 일정의 마지막은 언니가 가장 좋아하던 대만 음식점에 들러 마지막 점심메뉴를 포장해오는 일. 

내 블로그에 뺀질나게 나오던 頂好紫琳蒸餃館 즈린딤섬집이다. 



이것저것 다 주문했다. 많으면 남기면 되니까. 

가게를 나오는 길에 1층 노상거리에 대만식냉면도 팔길래 내가 먹고싶어서 하나 더 포장한 뒤 택시에 올라탔다. 




대만냉면에서 조금 시큼한 맛이 났지만, 

언니와의 마지막 점심이 슬프고도 즐거워 괘념치 않고 모두 먹어치웠다. 









언니가 대만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남긴 빨간 홍바오. 

세 개 중에 한 개는 내꺼다 

언니의 소중한 인연 3명 중에 내가 들어가 있는게 새삼 또 눈물버튼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내 남자친구에게 집을 빌려줘서 고맙다고 준 스타벅스 카드. 

또 나머지 갈색봉투는 언니가 내게 써준 편지. 



밑에는 내가 언니에게 쓴 편지...

누군가에게 쓴 편지를 공개한다는게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때의 감성을 담아 '내가' 나중에 기억하고 싶어서 여기에 적어놓기로 결정했다. 






안녕!

 이 인사가 시작의 반가움이 아니라 헤어짐의 인사같아서 편지의 첫 시작부터 바로 슬퍼진다.. 광화문에서 처음 만나고, 대만에서 함께 지낸지 솔직히 반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째서 언니랑은 반평생 알고 지낸 사이같을까. 그만큼 우리의 시간들이 너무 힘겨웠어서 겠지...?


한국에 돌아가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다시 평온했던 그 삶으로 돌아가길 바라.. 대만쪽으로는 그리움도 두지 말고..


언니랑 동거동락하면서 나는 항상 즐거웠어. 아직 내게 남아있는 시간이 지내온 기간보다도 더 길지만 그래도 첫단추를 덕분에 잘꿰어서 그 힘으로 

버텨볼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특히 요새) 마음 조절을 힘들어할 때 옆에서 잘 도닥여주고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 진짜 어떤 인연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타지에서 같이 고생하고 있는거였을까? 나중에 생각하면 이것 또한 재미있는 안주거리가 되어있을까? 강원도에 대게 멸종시키러 가는 날 우리 사진첩 보면서 하루 한달 한분기씩 에피소드를 곱씹어보자. 굵직굵직한 이야기들부터 자잘한 디테일까지 들어가면 며칠 밤을 지새도 부족할 것 같지만  말야.


대만에 얼렁뚱땅 오게 되었을 때, 그래도 내가 한가지 다짐한 게 있었거든. 중국어도 인생경험도 남자친구도 아니었고, 그냥 이 나이에 여기에 와서 좋은 사람 한명 알고 돌아가게 되는 것 만으로도 되게 값진 일일거다라고 생각했었어. 그것만으로도 대만에 가볼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이야. 물론 나는 그게  대만 사람 중의 하나겠거니하고 어설프게 생각했었지만... 

요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다보니, 엄밀하게 말하면 내 당초 목표를 나도 모르는 새 벌써 이뤘었다는걸 깨닫게 되었어. 지금은 내가 너무 힘들어서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훗날 되돌아보면 언니라는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 만으로도 대만에 와있던 이 시간이 의미가 있었었다는 걸 알게될거야. 내가 불평불만 투덜이처럼 백날천날 욕하던 로니도 그렇고 말이야. 사실...로니도 착하고 좋은 아이라고 어느 한편으로는 생각하기도 해. 나랑 맞춰가야할 부분이 너무 많은 것 뿐. 그러니까 언니도 돌아가는 비행기안에서, 자가격리하는 시간들 중에서 한 번 시간을 내서 생각해봐. 대만에서 지냈던 시간들 중에 그래도 그래도 건져갈만한 것이 있지 않았을까? 정....아무리 생각해도 없다면...그래도 뤼비통이라도...?

아이폰12라도.......?



한국에서 다시 행복하게 지내다가 삶이 무료하고 심심하다 싶으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 나와 함께면 지루할 틈은 없을거야..! 대만에서 겪어봐서 알잖아.....? 아니면 내 걱정 오만개인 일상 이야기를 들려줄게.. 앞으로 6개월정도는 그래도 로니&내 스토리 조금 재미나 보이지 않아? 헤어질듯 말듯 또 어쩌고 살고있으려나 한번쯤 물어봐줘. 그럼 나는 신나서 대만에서 언니랑 함께 먹었던 음식들로 추억 여행을 떠날거야. 사진으로 잔뜩 보내줄게. 지하짜장면집이랑 거길 나와 5분정도 걸으면 보이는 호호미 소보루빵, 시먼에서 먹던 두끼 떡볶이랑 애기천사가 그려진 파란색 과자, 언니가 우연히 발견한 편의점 최고 맛있는 주황색 밀크티, 나한테 부탁하던 초록색 녹차물, 우리를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시키던 맵고 신 빨간 국수, 이상한듯 맛있던 피자헛 김치피자, 인내의 수이모피자 그리고 그 집 케챱맛 스파게티, 고기추가 스얼궈, 내가 좋아하던 검은색 산초젤리 밀크티,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타이완맥주랑 신라면작은컵까지. 신라면 작은컵은 임팩트가 너무 커서 사실 한국돌아가도 그것만 보면 대만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해... 

이렇게 막 적어보고 나니까 사실 하나하나 다 추억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언니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 둘다 대만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작별이었으면 나도 더 상쾌하고 기분좋게 추억들에 빠졌을 것 같기도 하고...



6개월동안 수고 정말 많았어...! 

언니의 앞으로의 나날들도 늘 멀리서 응원할게.


한국에서 너무 행복하다고 나를 잊으면 안돼.... 언니를 그리워 할 똥꼬발랄 우리회사 사람들도.... 조금은 당황스럽던 우당탕탕 와르르타이페이회사마저도 말이야.......


잘가 !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만찬. 

항상 집앞에서 지나치기만 했던 우리동네 최고맛집 (왜냐면 늘 긴 줄이 서있다.) 

북경오리,,가 아닌 대만오리, 타이베이 오리를 포장해왔다. 

타이베이카오야



술은 너무 많이 마시면 다음날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으니

오늘은 맥주로만 기분을 내기로 했다. 











시간이 정말 흘렀다. 

눈 깜짝 할 새에. 



불면의 밤을 한 달을 넘게 세우고도 결국 시간은 흘렀다. 



나는 외국에 나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내 조금은 특이한 성격은 보수적인 집단 사이에서 공격받기 일쑤였고, 

그래서 엄마는 나를 사립학교에 보냈다. 


잘난 놈들 사이에 있으면 내가 튀지 않을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엄마의 생각은 반은 옳았다. 

확실히 잘난 놈들 사이에서 나는 평범했다. 



스무살, 나는 엄마의 품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사람들의 차가운 잣대에 휘둘렸다.

정확히 말하면 휘둘려지지 않으려해서 더욱 더 휘둘려졌다.


나는 악한 사람이 아니다. 이기적인 성격도 아니다.

 나를 보고자하는대로 보는 사람들은 내가 악하고 때로는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셈을 잘하는 내가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보아도 무엇을 나에게 유리하도록 이기적으로 행동해왔는지 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나쁜사람이야?" 엄마에게 물으면, 

"아니. 너는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아." 하고 엄마는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볼 때, 착한가 나쁜가 그 두개만 평가해.  너는 착하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아. 엄마니까 잘 알아.

너는 너가 소중히 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심을 다할 줄 아는 사람이야. 

그거면 충분해. 꼭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없어."




실로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 내 주변에선 항상 누군가 나를 지지해주었다. 

내가 오해받기 쉬운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오해는 내가 행동을 바꾼다고 변하지 않는다고 위로해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미운오리새끼를 쉼없이 만들어내고 싶어하니까. 


그래서 내 주변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정의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좋다. 

한없이 밑바닥까지 내려앉아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예측불허로 감정을 나눈다. 

나는 내게 못되게 구는 사람들을 당연히 싫어하지만 그들의 새로운 친절에 바로 마음을 녹인다. 

그건 내가 자존감이 없어서도 아니고, 속된말로 호구같아서도 아니라, 

그냥 사람이 좋아서다. 





미니언니에게 참 고마웠던 점.


나는 공격을 많이 받는 성격이기에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피하고자 하거나, 

딱히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욕을 먹는게 편하다. 내 잘못이 아니어도 그편이 편했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받고 싶지않아서 나의 성격의 주의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언니와의 이별을 앞두고 그간 서운했던 점이 있으면 풀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배려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혹시 언니에게 실수했던 부분이 있을 수 있어.

일부러 그런건 아니니까 그런 서운했던 점이 있으면 다 잊어줘." 




언니는 이런 나의 말을 듣더니 바로 대답해주었다. 


"너가 사람들과 배려하는 부분이 다른거야. 나는 너에게 많은 배려를 받았다고 생각했어." 





나를 곡해하지 않고 받아들여주는 사람과의 작별이라니. 

인연을 얼마나 더 소중히 여겨야 오래 함께할 수 있는걸까. 


언니와의 시절인연은 봄, 여름 겨우 두 계절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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