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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연 Dec 16. 2021

우리의 시대

시간과 물에 대하여


인간의 생이 너무 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잘만 하면 100세까지도 살 수 있다니 너무도 끔찍한걸, 자연 상태 그대로라면 35세쯤이 인간의 수명이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으로 너무도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면서, 그리고 반려견의 평균 수명이 10-15세 정도로 터무니없이 짧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강아지의 견생은 너무도 짧다고 생각하게 됐다. 건강하게 살면 20년까지도 살 수 있다지만 그래도 너무 짧다. 내가 100세까지 산다는 보장도 없는데도 나의 생을 몇십 년은 툭 떼어다가 사랑하는 내 강아지에게 주고싶단 생각을 했다.


상대적인 것이었다. 개의 견생이 이토록 짧은 것처럼, 지나고 보면 인간의 인생 또한 너무도 찰나적이다. 인간의 생이 너무도 길다는 것은 지구적,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또한 얼마나 ‘한낱 인간적’인 생각인가. 존재 자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질, 아주 작고 작고 작은, 기나 긴 우주의 역사에서는 점 하나로도 찍히지 않을, 보잘것없는 우주 먼지 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하긴 그래, 고작 몇십 년 정도 산 나도 스무 살 때, 스물몇 살 때 일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일주일이 길게도 느껴지는데, 지나가는 하루하루는 너무도 짧아서 주말이 되면 언제 이렇게 한 주가 또 지나갔지 싶다. 그렇게 몇 주씩 한 달이 지나면 어느새 연말을 맞이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고작 2021년이 보름도 안 남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살다가 노인이 된 나에게도 누군가 나의 생이 긴 시간이었는지, 짧은 시간이었는지 물어본다면 뭐라 답할까. 당신이 살던 시대는 어땠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그 시대에 그 시절에 당신은 어떻게 살았는지, 내 생이 살아있었음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묻는다면?



DAVID BURDENY, Mercators Projection, Antarctica, 2007



문득 어릴 적 학교에서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 같은 것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공기가 안 좋아져서 헬맷을 쓰고 다니거나, 사람들이 공기를 사고파는 그림을 스케치하고 수채화로 쓱쓱 색칠했었다. 심각하게 그리지는 않았다. 내심 아니 뭐 설마 진짜 정말 그럴 일이 있겠어, 했는데. 그 일은 내 생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정말 실제로 일어나버린 일이 되었다.


지구 온난화, 기후 위기, 녹고 있는 빙하 위에서 울부짖고 있는 북극곰, 기름 떼에 깃털이 뒤덮여 날지 못하는 새, 해수면이 상승해서 물에 잠겨버린다는 땅들. 쓰레기 더미 산들. 마구잡이로 파헤쳐지는 산과 베어지는 나무들. 지구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시간 남짓이라는 이야기들. 환경과 관련된 주제들은 늘 아주 가까웠다. 자주 듣고 자주 보니까. 그렇지만 사실 행성과 행성 사이만큼이나 멀었다. 자주 듣고 자주 보는 환경. 그래, 아주 아주 중요하지. 그런데 아직은 뭐, 괜찮으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때로는 100년쯤 뒤면 나는 이미 죽고 없을 텐데, 뭐. 하는 얄팍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코로나 19를 두 해 째까지 직접적으로 겪으면서, 어, 이게 뭐지. 이건 뉴스에서나 다큐멘터리에서나 공익광고에서나 볼일이 아니라 생을 온몸으로 관통하고 찢어발기며 겪어내야 할 일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마스크를 벗고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얼마나 상쾌하고 간절한지 알게 되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자연상태에 가고 싶다가도 그런 곳에 갈 나도 자연 입장에선 또 하나의 인간일 뿐이며 그곳에 안 가는 게 도움이 되리라는 점에 머쓱해졌다. 공연장과 축제에 가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발을 동동 구르며 기립하여 소리 지르고 싶다. 비행기를 타고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 가고 싶다. 아니 사실 문화공연이나 여행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 일상과 업 전부에서 코로나 19가 없던 때로 가고 싶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한낱 인간적인 생각이다. 또한 어쨌든 아직 살아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들이다.


David Burdeny, Five Icebergs, Weddell Sea, Antarctica, 2007


코로나 19로 인해 인간들의 발이 묶이는 바람에 세계 곳곳의 지구 환경은 오히려 회복되고 있다는 뉴스를 여럿 봤다. 일시적이었지만 대기오염 물질이 줄어들어 공기가 깨끗해졌고, 인간이 타고다니는 비행기로 인해 생기는 비행운이 줄어들어 온난화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훨씬 안전해졌고, 바다와 산, 숲과 땅, 강물은 조금씩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자연 입장에서는 ‘인간’은 정말 받아서 쓰기만 하는 존재를 넘어, 필요한 것 이상으로 쓰다 버리고 망치는 것을 넘어, 죽이려 드는 존재였을 뿐이다. 지구에서 바라봤을 때 오히려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인간 종이 멸종되는 것이 우주적 또는 자연적 관점에서는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코로나 19만으로도 이렇게 인류의 생이 휘청이는데, 그러고 보니 실은 코로나 19보다 더 큰 문제가 기후위기였다. 미래 후손 세대를 위해 해 주면 좋을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나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며, 당연히 빨리 응당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불이야! 정도가 아니라 지금 곧 대폭발이야! 하고 소리치면서 주변에 자꾸 알려야 하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당장 실천하고, 우리 같이 무언가라도 하자고, 주변에도 자꾸 이야기하고 외쳐야만 하는 일이었다. 한 순간에 지나가버릴 찰나와 같은 생이었어도, 자연에게 빚을 지고 살았음을 살고 연대적인 책임을 질 일이었다.


나와 가까운 이들의 생과 삶이 닿아있고,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구의 모든 나라가 정말 공기를 같이 쓰고, 물과 땅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이제야 더 와닿는다. 서로가 서로에, 우리 모두의 과거 현재 미래가 생각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것이 절실히 느낀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아주 작고 미미한 소소한 의미라도 지닌 채 살고 싶다.


조정치의 유작 앨범 중 7번째 트랙 우리의 시대라는 곡에는 이런 노랫말이 나온다.


“우리의 시대

우리의 시대

우리의 시대

오, 오, 병든 자여

텅 빈 여기 왜 서 있나

움켜쥔 두 손에 무엇이 남았나

ㅡ조정치, 우리의 시대”


우리가 자연으로 돌아갈 때 우리의 두 손에 무엇이 남았을지 생각해본다. 나의 삶이, 서로의 생이, 지금 우리의 시대가 조금이라도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기를 바라본다.



David Burdeny, Desert Walk (Hill), Lencois, Maranhenses




  이 책은 시간과 물에 대한 것이다. 앞으로 100년에 걸쳐 지구 상에 있는 물의 성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빙하가 녹아 사라질 것이다.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가뭄과 홍수가 일어날 것이다. 해수가 5000만 년을 통틀어 한 번도 보지 못한 수준으로 산성화될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이, 오늘 태어난 아이가 우리 할머니 나이인 아흔다섯까지 살아가는 동안 일어날 것이다.
  지구 최강의 힘들이 지질학적 시간을 벗어나 이제 인간의 척도로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수십만 년이 걸리던 변화가 이제 100년 사이에 일어난다. 이 속도는 가히 신화적으로,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생산하고 믿는 모든 것의 기반이 된다.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변화는 우리의 정신이 평소에 다루는 대부분의 현상보다 복잡하다. 이 변화들은 우리의 모든 과거 경험을 뛰어넘고 우리가 현실의 나침반으로 삼는 대부분의 언어와 은유를 초과한다.  

-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시간과 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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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물에 대하여>를 읽고 우리의 시대에 대해 썼습니다.


글 성지연  /  사진 David Burde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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