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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연 Apr 30. 2022

2022년 4월 4일 월요일

일기시대


윤희와 내가 그 전 날에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한 주제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하다 저 주제로 또 다시 그 주제로 다시 이 주제로 저 주제로 폴짝폴짝 넘나들었다.


윤희와 나는 늘 너무도 비슷한 듯 너무도 많이 달랐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유일하게 같은 반이었던 윤희. 우리는 언제나처럼 같이 낄낄대다 울다 웃다 한탄하다 응원하다 찌질한 이야기를 한가득 하다가 푸하하하 칵칵댔다. 윤희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사실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너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다 괜찮다는 것, 어떤 이야기를 하든 무조건 다 좋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윤희라는 것이다.


통화가 끝나고 다음 날 윤희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ㅡ2022 신춘문예 시 낭독회 갈래?

ㅡ시 낭독회? 재밌겠다. 언젠데?

ㅡ4월 4일 월요일.

ㅡ어디서 하는데?

ㅡ신촌.

아니 월요일 ! (으악) 퇴근하고 저녁 ! (으악악) 경기도민의 빨간 버스타고 두시간 가까운 서울행 ! (하) 끝나고 또 한시간 반 가까이 빨간버스 타고 돌아오는 (그리고 다음날 바로 화요일) 겁내 빡신 일정이었지만 끌렸다. 가고싶은 마음이 앞섰다.


언젠가부터 늘 일요일은 낮부터 우울이 몰려들고, 밤에는 잠이 안오고, 자야지 자야지 잠을 자야지 일부러 눈을 붙여도 결국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며 월요일 출근할 때가 많았다. 월요일에 겨우 떠지지 않는 눈과 몸을 일으켜 회사에 가면 오전엔 부엉이 눈처럼 오후엔 실눈을 뜨곤 일을 한다. 윤태호 작가가 <미생>에서 오과장 눈을 왜 저렇게까지 희화화하여 그렸을까 했던 날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내 눈이 바로 그 눈이요, 동료의 눈이 바로 그 눈이었다. 극사실주의 기법이었던 것이다.


월요일에는 퇴근하자마자 저녁도 안 먹고 바로 잔다. 화요일부터는 노를 젓고 젓고 또 영원히 젓는 사람처럼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금요일 밤만 기다린다. 불금이란 말은 체력이 남아돌 때 이야기이고, 금요일 밤에도 일찍 집에 터벅터벅 들어와 모자랐던 잠을 몰아 잔다. 토요일 하루 잠깐 윤슬처럼 반짝이다 일요일에는 다시 또 낮부터 우울이 몰려든다. 주말에 쉬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월요일부터 일하기 위해 주말에 겨우 쉰다. 아니 그런 월요일에. 월요일에 ! 어디를 간다? 모임을 한다? 무려 퇴근하고 한 시간 반 남짓을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을 한다? 거의 몇년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끌렸다. 거기 가자고 하는 윤희가 좋았고. 신춘문예 시인들이 직접 낭송해준다는 시가 기대되었다.




드디어 4월 4일 월요일 저녁이 되었다. 서울특별시까지 가는 길에 월요일과 퇴근길의 대도시, 역시나 콩나물 시루처럼 꽉꽉 채워져 밀치고 밀리는 빨간 버스 안 시민들, 시, 시인, 낭독회는 정말 참 안 어울린다고도 생각했고, 어떤지 이질적으로 안 어울려 있는 것들이 한 데 모여서 서로 다른 NG 장면처럼 둥둥 떠 다녔다. 이게 맞는건가. 안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월요일의 내가 좀 웃기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드디어 신촌역에서 만났다. 시 낭독회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그 근처 골목길을 휘저어 걸어다녔다. 윤희가 갑자기 말했다.

ㅡ지방에 살았으면 이런 선택권조차 없었을거야. 너가 저번에 지방가서 살까,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 같지가 않길래.


, 내가   힘들다고 한탄했던 이야기  하나를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이다. 으이구, 그냥 재밌어보여서 가자는건  알았더니만.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다. 우리는 각자의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생각해주었다. 예를 들면 체육시간 체육복을 갈아입고 얼른 운동장에 나가야 하는데 늦었을 , 나는 늦더라도 늦어서 혼나더라도 같이 기다려주는 방식이라면. 윤희는 “! 빨리 !!!” 냅다 소리지르고 지가 알아서  오겠거니 하고 먼저 운동장으로 나가는 식이었다. 윤희가 무언가를 할까 말까 하면, 내가 “    재밌을것 같은데!” 부추기고. (윤희는  그래? 하고 결국  하고싶은대로 하지만- (이건 나도 그렇다.)) 내가  오래 백수생활을 하는 시기 혼자서 한참을 걷고 걷다 엉엉 울다 세상이 싫다 나도 싫다 전화를 하면 윤희는 “ 무슨 미친 각설이처럼 자꾸 떠돌아다니냐나를 웃겨주었다.




우리는 한 사람이 카세트테이프 A면을 주구장창 이야기하고 있으면, 같이 늘어지고 늘어지게 이야기하다 야 B면도 있긴 있어 넘겨서 같이 들어보자 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항상 A면과 B면을 넘나들다 늘어진 부분에선 또 이러고 앉았네 찌질거리면서 낄낄 웃었고 그렇게 함께 몇 해를 여러 테이프들을 쌓아왔다. 오늘은 그 사이에 월요일 신촌에서의 시 낭독회 카세트테이프를 이벤트처럼 끼워둔 것이고, 우리는 앞으로 또 이 테이프가 생각나면 늘어지게 같이 틀고 또 틀을 것이었다.


ㅡ그건 그래. 맞아. 누리자. 누려보자 우리 !

윤희와 나는 우리가 무려 경기도에 살기 때문에 이런 아주 엄청나게 대단한 호사스러움을 누릴 수 있다는 듯이, 우리에게 가진 것은 문화자본밖에 없다는 듯이, 세상 이런 일이 언제 또 있겠냐는 듯이, 호탕하게 호기롭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그런데 꽤 많을 줄 알았던 좌석 수는 10개 남짓뿐이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조금 당황했다. 시인이 4분, 사회자가 1분, 관객 좌석 수는 10개, 앉은 사람은 10명이 채 안되는데. 뒤쪽에 앉아있다 (만약 별로면) 슬쩍 나오려던 윤희와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이런 모양이라면 어디에 앉더라도 첫째줄 아니면 둘째줄 주된 관객이었다.


꼼짝없이 시간이 되었고 우리의 앞에 무려 시인 4분이 등장하여 차례차례 앉았다. 아니 시인들은 왜 이렇게 멋진가! 어떻게 앉아있든 폼새도 남다르게 멋있었다. 눈빛도 남달라보였다. 시 옆에 쪼로록 붙은 시인들의 이름은 이미 이름도 그 자체로 시인같다. 곧 시인들은 순서대로 자신의 시를 소리내어 읽어주었다. 두둥. 그런데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작고도 작은 공간이 휘어지며 아주 아주 넓어지고 깊어지고 유려해지더니 순식간에 시인의 나라가 되었다. 윤희와 나는 시인의 잔치에 초대장을 받고 앉아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시인들은 이전에도 이미 시인이었겠지만 누군가 공식적으로 시인이라는 명패를 달아준듯 달떠보였다. 시인이 자신이 쓴 시를 시인이 직접, 시인의 호흡으로, 수십수백수만가지의 낱말들 중 정선되게 골라 썼을 시어를 정성스럽게, 자신의 목소리로 앞에서 낭송해주는 일은 생각보다도 훠얼씬 근사한 일이었다. 아니 그리고 놀랍게도 시인들은 각각 자신의 시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누군가 시인의 이름을 가리고 시와 시인을 매칭하라고 하면 짝짝 잘 맞출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시는 너무 경쾌했다. 어떤 시는 어려웠다. 어떤 시는 재밌었다. 어떤 시는 아렸다. 어떤 시는 너무도 고요했다. 그리고 모든 시는 다 슬펐다. 시는 왜 이렇게 늘 슬프고 아름다운가. 시는 한 편만 읽어도 나도 같이 슬프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 그렇게 윤희와 나는 덕분에 조금 아름다워진 월요일의 사람들이 되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시 낭독회가 끝나고 윤희와 나는 근처 포장마차에 들어가 떡볶이를 먹었다.

ㅡ 좋았다

ㅡ 캬 아 진짜 너무 좋았다

ㅡ 지연아 나는 성공한 사람들의 냄새가 좋았어.

ㅡ 크하하하하


윤희의 의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포장마차 주변으로 봄 기운이 일렁이며 넘실댔다. 신춘문예라는 네 글자에 이미 담겨있던 봄 처럼, 우리가 시인의 나라에서 만났던 시들 위에도, 초록색 바탕 위 하양색 무늬 그릇에 담긴 빨간 떡볶이 위에도, 우리가 새롭게 끼워두고 틀어 본 카세트 테이프 위에도 이미 봄이 와 앉아있었다. 윤희와 내가 누린 모든 시간에 봄이 가득 그득 얹혀져 채워져 녹아져 있었다. 모든 것들이 봄 밤과 잘 어울렸다.




2022년 4월 4일 월요일이었다.








일기를 쓸 때 나는 나에게서 가장 멀어진다.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 타인을 만나고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일기에는 늘 타인의 흔적이 묻어 있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을 때도 비슷하다. 책에 적은 것처럼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
일기가 시나 소설이 되지 않아도 좋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일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

문보영, 일기시대, 12p.


일기시대를 읽고 2022년 4월 중 가장 좋았던 하루에 대해 긴 일기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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