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삶의 진정한 보상이 되지 않는다는 게 맞는가?
숙소 예약 취소가 안된다. 여행 몇 주 전부터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을 여러 번 했었다. 단 1원조차도 일부도 아닌 전액이 환불 불가하다는 것을 보고 또 봤다. 여행이면 어떻게든 가고싶어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아주 조금 일부라도 환불을 해주면 좀 안가고싶다고 생각했다. 안가고싶은데, 정말 안가고싶은데, 아 그냥 허공으로 뿌려지기엔 돈이 아깝네. 많지도 않은 월급에서 지불한 내 돈. 이걸 어떻게 그냥 날리나.
10월 10일은 2022년의 마지막 연휴였다. 사람들은 이렇게라도 주4일제를 해본다며 들썩였다. 나도 뭐라도 해서 그 축제 분위기에 발을 담가보고 싶었다. 10월 첫주부터 조금씩 목이 따끔거리고 아파오더니 점점 머리도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기침이 조금씩 점점 나더니 몸도 으슬으슬 추웠다. 수요일부터는 드디어 열도 났다. 에라 모르겠다 ! 차라리 이번 참에 코로나19에 걸려서 좀 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뭐 여행도 어쩔 수 없이 못가겠지.
내가 바라는 단 하나의 마음은 “쉬고싶다." 는 것. 영원히 쭉 오래오래 오래 더 이상 쉬는 게 질려서 쉬고싶지 않을 만큼 쉬고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싶다. 올해는 유독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3일 연짱 쉴 수 있는 연휴를 실은 충분히 쉬었어야 했다. 그런데 여행도 정말 가고싶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싶으면서, 정작 이틀 주말에 누워만 있으면 뭔가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게 싫어. 이유는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지. 머릿속으로 늘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일하는 기분이기 때문이고.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고서 다녀보려해도 진짜 때려치는 게 아닌 이상 늘 톱니바퀴 속 부품처럼 챗바퀴를 돌리는 걸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올해 마지막 연휴가 낀 주말에, 가장 좋아하는 가을날에, 찐으로 쉬지 못할 바에는 여행을 가고싶었다.
신속항원검사를 해보았다. 두 줄 생겨라 제발 생겨라! 아 그런데 막상 또 두 줄 생기면 우짜지 하는 두 가지 마음이 함께 공존했다. 연가나 병가를 아무 때나 쓸 수 없는 직업적 특성 상 코로나19면 월요일에 걸리는 게 좋겠다고 요일까지 희망 지정을 해 두었었다. 오늘은 수요일이니까. 목금요일 밖에 못쉬어서 좀 아까운데. 그리고 연휴가 끼어있단 말이야. 만약 걸린다면 월요일에 걸려야할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후대 역사책에 ‘당시 백성들은 노역으로 힘들어했다.’와 같은 한 문장 안에 내 인생이 송두리째 들어가는 상상을 하며 부질없어진다. 그래도 열도 나기 시작했으니까 검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검사에 표시된 줄은 한 줄뿐이었다. 안 돼. 일도 하고 여행도 가야 한다. 터덜터덜 아침마다 일을 하러나가고 집으로 오고 또 다시 다음 날 일을 하러 나가고 집으로 오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금요일이 됐다. 매일 매일 뭘 위한 것일지 모를 가장 쎈 감기약을 먹어왔지만 차도는 없었다. 쉬는 게 맞다. 근데 허공으로 날라가는 숙소비용이 너무 아깝다. 토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정말 내키지도 기쁘지도 않은 말 그대로 짐짝같은 여행 짐을 겨우 겨우 싸면서도 생각했다. 아니, 어차피 아플거 그냥 여기서 아픈 게 낫지 않나. 아냐, 아파도 가서 아파야지, 그 순간에도 숙소비용을 그냥 이대로 날리는 건 내 선택권에 없었다.
그래서 갔다. 차가 겁나 막히는 도로 위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멀리까지 가서 몸이 아프니 정말 아-무런 감흥도 없는 바닷가를 조금 보았다가, 그 어떤 풍경에도 감탄도 나오지 않다가, 안 그래도 몸이 으슬으슬 추운데 바닷바람은 뼛속까지 시리네, 입맛도 없이 약을 먹기 위한 이른 저녁을 먹은 후, 약을 또 털어먹고 낯설고 익숙치 않고 편치 않은 침대 위에 겨우 몸을 뉘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열이 나서 하얀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끙끙거리며 잠이 까무룩 들었다. 약 기운에 겨우 취했다가 일어난 새벽, 스스로에게 너털 웃음이 났다. 아니 나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 쉼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고 마음껏 아픈 것도 아니고 안 아픈 것도 아니고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고 도대체 정말 뭐하고 있나,
조금 울적하게 그 침대에 누운 채로 새벽에 그대로 <작은아씨들> 마지막회를 다시보기로 봤다. 저녁에 본방사수를 하고싶었는데 약 기운에 몽롱히 자고 일어난 참이라 흐린 눈을 하고 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 장면에서 인주가 수의를 입고 울며 말했다.
“그 돈이 제 삶의 보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이제는 700억보다 제 자신이 더 소중합니다."
인주가 마치 나에게 말해주는것 같았다. 그리고 나 대신 인주가 눈물콧물 흘리며 엉엉 꺼이꺼이 울어주는듯 했다.
과연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아니 700억이 뭐야, 나는 그깟 숙소비용 때문에 내가 나를 아껴주지 못했구나. 여행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돈이 아까워서, 그리고 그 돈이 내 삶의 한 줌의 보상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나 스스로 수의를 입혀 여기 숙소 방에다 나를 몰아넣었구나. 아파도 여기 와서 아프라고. 아니 어쩌면 돈이 버려지는건 죄니까 너는 감히 아프면 안된다고. 내가 내 목에 스스로 목줄을 걸어 차 막히는 도로 위에 세워두었다가 결국은 여기까지 질질 끌고 와 이 타지에 몸을 뉘인 것이다. 그래서 2022년 마지막 연휴는 쉬는 것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고 마음껏 아픈 것도 아니고 안 아픈 것도 아니고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고가 된 거고.
“그래도 저는 이눔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제 삶의 보상이 되긴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숙소비보다 제 자신이 소..소중하긴 소중한데 그래도 아깝긴 아깝습니다. 엉엉엉 흑흑흑”
그럼에도 아직까지 나는 인주처럼 판사님 앞에서 단언하듯이 말할 수는 없다. 다시 연휴 전 날이 되면, 나는 여행을 가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또 여행을 가고나서야 온 몸을 훑고 관통하듯 지나가야 깨닫게 될까?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아무 생각없이 잘 쉬고 감기도 더 나을 수 있었을까? 그럼 이번 연휴에 너무 너무 잘 쉬었다고 좋아했을까? 허공으로 날아간 숙소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돈이 정말로 삶의 진정한 보상이 되지 않는 것 맞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나의 삶의 보상이 될 것인가. 몇백만이 아니라 몇백억보다 나는 내 자신이 더 소중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내 생에 언젠가 이에 대해 명쾌하게 선명히 답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글 성지연 | 표지그림 Jean-Jacques Semp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