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나는 맛집 멋집 찾아다니는 데 급급했고, 사실 아직도 그렇다. 친구들과 식당에서 약속을 잡고 카페나 술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친구들이 공원에서 보자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러고 보니 식당에 간 것보다 공원에 간 적이 더 많고, 자꾸 가다 보니 나도 점점 더 공원이 좋아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원은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온정을 느끼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작은 공원이나 광장이 동네 곳곳에 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동네 공원을 최대한 만끽하는 것으로 보였다. 돗자리를 깔고 눕거나, 아니면 맨 땅이라도 풀썩 앉거나, 접이식 의자를 들고 와 앉거나. 각자 원하는 대로 공원을 누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하늘을 보고 신선한 바람을 느끼고, 공원에 가져갈 간식과 음료를 준비하는 동안 들뜨는 마음도.
당시 남자친구와 천문대가 있는 공원에 가기로 한 날, 장을 보고 음식과 칵테일을 실컷 준비해서 공원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지고 난 뒤였다. 온종일 공원 갈 생각에 신이 났는데, 준비하느라 하루가 다 지나가 버렸다니 허탈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순 없었다.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엎드려서 가져간 음식과 칵테일을 마시며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천문대에서 조명이 빛을 비추었고,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기분 좋은 여름 바람이 부는 밤이었다.
나는 여름 철새의 삶을 꿈꾼다. 여름옷의 색깔과 자유로움, 여름의 활기가 좋다. 해가 빨리 뜨고 늦게 지는 것도 좋고, 수영장이나 바다는 가도 가도 또 가고 싶다. 햇빛 아래에 누워있을 때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느낌, 책만 읽으며 뒹굴뒹굴하는 게으른 느낌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래서 엄마는 내게 항상 햇빛을 두려워하라고 한다. 아르헨티나에 가게 되었을 때도 엄마는 내가 햇빛을 더 방심하게 될 걸 제일 걱정했다. 엄마는 늘 옳다. 아르헨티나에서 예전에 뺐던 점이 그대로 다시 올라왔고, 기미와 주름이 생겼다. 알고 보면 햇빛 탓이 아니라 나이 탓일까?
햇빛을 두려워하는 아르헨티나인은 없었다. 공원에서 비키니를 입은 채 누워 선탠하는 사람들을 보고 아르헨티나인은 나보다 한 수 위인 걸 알았다. 앞으로 어디 가서 햇빛 좋아한다는 얘기도 꺼내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나도 마떼를 돌려 마시고, 사랑을 속삭이고, 선탠하는 장면 속 한 명이 되고 싶어서 공원으로 다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