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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Aug 13. 2022

콤플렉스 없는 인간

콤플렉스에서 처음 벗어난 나는 콜루라투라에 성공한 크리스틴이다

 독서토론과 뮤지컬 강해가 한 주씩 번갈아 이루어지는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다. 이번 주는 가스통 루르의 ‘오페라의 유령’이다.  종이책을 먼저 읽고, 틈틈이 오디오 북도 들었다. 원작이 신문 연재를 목적으로 했던 소설이라서일까. 아니면 내용을 알고 읽어서 일까. 신선하지는 않았으나, 당시에는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독서토론과 함께하는 책 읽기는 언제나 책을 마음으로 품게 만들어 준다.



파리에서 10년 넘게 유학했다는 강사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가끔 섞어가며 말했다. 뭐 다른 말은  알아듣겠는데 팬텀이라는 단어를 자꾸 쓰는 것이다. 왠지 느낌이 주인공 에릭을 말하는 것 같은데. 혹시나 내가 모르는 숨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궁금했다. 물론 써칭하면 바로 나올 테지만, 강사에게 직접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질문을 하지 못한다.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너무 당연하고 쉬운 것을 묻는 게 아닐까. 나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을 질문한다면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의 무지가 드러나는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질문에는 자신이 없지만 반대로 써칭은 자신 있다. 써칭은 아무도 모르게 신속 정확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웬 바람이 불어온 것일까. 그동안 꾸준히 써온 감정일기가 나에게 용기를 준 것인가. 그냥 내 맘과 별개로 입에서 내키는 대로 질문이 터졌다.


“그런데 강사님 팬덤이 뭔가요?”


 강사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순간 그의 동그란 눈에서 몇 년 전 나를 힘들게 했던 그 후배의 눈이 보였다.  그 후배가 나에게 자주 했던 그 저주스러운 행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그렇게 눈을 동그랗고 크게 뜨고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때론 나를 집어삼킬 듯… 그렇게 강사의 얼굴에 그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팬덤이라뇨?”


 그는 뭔 소리냐는 듯이 나에게 되묻는다.

 사실 나는 ‘팬덤을 형성하다’라고 할 때의 팬덤이라고 생각했다. 오페라 유령의 주인공인 에릭이 무슨 팬덤이 있었던 걸까? 소설에는 없고 뮤지컬에 추가된 어떤 메타포가 있는 건지 궁금해서였다. 


“아까 ppt 설명하실 때 팬덤이 크리스틴과 키스를 왜 두 번 했을까 하셨잖아요….”


나는 약간 흐리게 질문을 던졌고, 강사는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눈빛으로 질문을 받았다. 


“에릭이 팬텀이에요”


순간 빈정상하려고 준비운동하며 꿈틀대는 감정을 알아차렸다. 여기서 감정을 방치하면 나의 모자란 영어실력을 부끄러워하는 콤플렉스가 생길 것이다. 소크라테스 형님도 말하지 않았던가. 무지의 지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국, 영, 수를 포기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팬텀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물어보았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묻지 않는 것이 죄다.


그렇다. 알고 보니 오페라의 유령의 원제목이 The phantom of the opera였다.


순간 내 안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힌 불안, 초조같은 억압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정화되는 그 느낌이다. 예전에 할 수 없었던 질문을 이제는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것을 극복한 순간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어제와 다른 하늘을 보았다. 



콤플렉스 없는 인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빔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비친다. 주인공 크리스틴이 존재감 없는 발레리나에서 언더스터디(유사시에 그 역할을 대신하는 배우)도 없는 첫 오페라의 새로운 프리마돈나가 된다. 축하해주는 사람들과 첫사랑 라울을 뒤로하고 분장실에 혼자 남은 그 순간 가면을 쓴 애릭이 나타난다. 


크리스틴은 아버지가 보낸 음악의 천사를 만난 기쁨에 도취되어 마법에 걸린 듯이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이때 그 유명한 노래, 작품 제목과 같은 Phantom of the Opera가 나온다. 누구라도 끌리는 강렬한 멜로디이다. 


크리스틴은 처음으로 콜루라투라(초 절정고음)을 쏟아내고선,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손으로 목을 매만진다. 동시에 나도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당당함이 믿기지 않는 듯 내 자유를 매만진다.



강사의 눈에서 과거의 상처가 겹치는 일이 생겼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스스로 최선의 결과를 내었다. 강사도 나의 희열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콤플렉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들은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최악을 피하는 것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됩니다 ”


이로서 나는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콤플렉스 없는 인간이 된 건가?

이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진정 자유할 수 있게 된 것인가...


모르겠다. 아마도 크리스틴이 계속 콜루라투라를 할 수 없듯이.. 최선을 기대하지 못하고, 최악을 피하는 노예생활이 계속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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