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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Aug 20. 2022

미니멀과 맥시멀은 방향의 차이

방향을 트는 데 걸린 7년의 이야기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까레리나의 첫 문장을 패러디해보고 싶다.


미니멀한 사람은 서로 닮았지만, 맥시멀 한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계속 사들인다.


내가 그랬다.  미니멀한 나는 매일매일 닮은꼴이지만, 맥시멀 했던 나는 온갖 이유를 붙여서 물건을 사들였다.


"비싸면 비싼 이유가 있겠지.. 사자!  싸면 지금 싼 이유가 있겠다… 사자!"


2016년 맥시멀의 정점을 찌른 어느 날 공허함을 느꼈다. 그것은 일종의 죄책감 같은 기분이었다. 그  죄책감의 간주를 지나 도돌이표를 만나면 다시 사고 싶은 것이 생각난다. 


어느 가을, 가볍고 따뜻한 캐시미어 코트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에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느라 고생했던 나는 겨울에도 그 영광이 이어지길 원했다. 여름에 드러나는 실루엣은 나의 몸이었고, 겨울에 드러나는 실루엣은 옷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섬유의 보석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다시 눈을 뜨고 드레스룸에 걸려있는 코트를 본다.  3개의 겨울 코트가 이미 있었지만 보석을 떠올린 순간부터 모직, 알카파, 앙고라는 나에게 더 이상 옷이 아닌,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나의 초자아는 죄책감을 끌고와 이드의 두 손에 쥐어준다. 초자아는 중세시대의 시련재판을 한다. 불타는 죄책감에도 이드의 두 손에 아무런 상처가 없으면 시죄법에 의해 무죄이다. 이드의 두 손에 감긴 붕대를 푸는 순간 피고름이 나온다면, 나는 유죄이다. 이 끝없는 시련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내가 코트를 사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3개의 코트 외에도 수많은 겨울 옷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옷으로 보이지 않으니 어쩌란 말이냐.


나는 내 죄의 모든 형상들을 목록화해보기로 했다. 옷에 종류와 색깔 등을 표시해서 일련번호를 매겼다. 집안의 잡동사니 보유현황, 화장품 유통기한 등을 조사하고 정리했다.. 이 작업은 몇 달이 걸렸다. 뭐. 그러면서 겨울이 지났다. 캐시미어 코트는 이제 내 머리에서 사라졌다. 


끝내, 이런 식의 작업도 아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 고리를 끊는 여러 방법들이 미니멀 라이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나를 미니멀로 인도해주지 못했다. 그것은 잠시 잠깐 나를 스쳐 지나갔으며, 코트의 빈자리는 가방으로 채워졌다.


결국, 스타일에 의존하게 되면, 스타일에 맞추게 된다. 그 스타일이란 것은, 타인의 시선일 수도 있으며, 나의 욕망일 수도 있다. 그것은 끝이 없고 비효율적이다. 


이렇게 떠들고 있는 나는 그럼, 과연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 있는가? 아니다. 다만 관점이 바뀌었을 뿐...관심을 쇼핑에서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렇게 되기까지 7년이 걸렸다.


흑사병 이후 노동력이 감소하면서 영주는 농노를 해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화폐로 지대를 받는 것이 그들을 억압하고 부역을 부과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중세 유럽의 봉건제가 서서히 붕괴한다. 


나의 맥시멀도 그런 식으로 사라졌다. 나를 억압하는 초자아는  이제 나에게 시련재판을 내리지 않게 된다. 나는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내가 원하는 자유를 주는 것이, 타인의 시선으로 억압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마음속의 유물론적 속성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시련재판에서 판정받기 위해 시뻘겋게 달군 쇠붙이를 들고 있는 백작 부인(벨기에 왕립 미술관 소장). /위키피디아

해방된 농도들이 자유를 얻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된 것처럼, 나는 처음 가져본 자유를 누리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Tv를 볼 시간이 없어 자연히 미디어를 끊게 되었다. 그래서 유행을 모른다

외모를 가꿀 여유는 책  읽을 시간으로 대체했다. 그래서 가꾸지 않는다

유행을 모르니 베이식한 옷만 입는다.

가꾸지 않기에 화장품, 액세서리가 필요 없다.


그렇다면 지금 미니멀한 나는 행복하고, 맥시멀 했던 나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했느냐? 

그건 아니다. 나는 미니멀이나 맥시멀이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방향만 다를 뿐.


맥시멀 한 내가 시련 재판에 시달렸다면, 미니멀한 나는 자유를 갈망하느라 목마름에 시달린다.

쇼핑을 좋아했던 ‘나’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저 방향만 다를 뿐이다.


택배 상자를 뜯을 때의 쫄깃한 마음  VS   마감을 지켜 글이 써지는 쫄깃한 마음

아름다운 물건을 초이스 하기 위한 공부 VS 아름다운 글감을 찾기 위한 공부

쓰지 않는 물건이 공간을 차지한다  VS 읽지 못하는 책들이 책상에 가득하다

가려지지 않는 얼굴의 주름 VS 가려지지 않는 지식의 한계

그 외에도 비슷한 점은 아주 많다.


관종인 나는 관심을 먹고 산다.  실루엣을 드러내느냐 내면을 드러내느냐. 이것 또한 관점과 방향의 차이이다. 나는 7년 만에 미니멀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미니멀의 방향은 바뀌었다. 인간의 세포 100조 개가 7년마다 교체되어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 한다. 100조 개의 세포가 바뀔 동안 나는 새롭게 자유로운 인간으로 거듭난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글을 읽기 힘든 분을 위한 오디오파일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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