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담담하진 못했던, 그때 이야기
스물 아홉이 되었다. 3년 차 경력에 이른, 연봉은 2,500만 원에 도달한 평범한 직장인. 아주 가끔, 연봉 수준에 대해 의문을 갖기는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어 보여 현실에 수긍하면서 사는 그런.
연초마다 진행하는 연봉 협상은 별 의미가 없었다.
성과가 있든 없든 회사가 어렵다면, 동결 통보에 또 수긍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저 임금을 받는 근로자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새로 바뀐 최저 임금 기준 이하라면, 법에 걸리기 때문에 결국 소폭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봐야 바뀐 최저 임금에 맞춘 최저 연봉이지만 말이다.
늘 턱걸이에 맞춘 연봉 수준이 직장인이 된 나의 한계인가, 가끔 생각한다. 해마다 세금도, 물가도 따라 올라가니 사실상 득을 보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나마 동결보다는 낫지 않은지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언제부턴가 더 이상 월급날이 설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망할 포괄임금제. 누군가는 포괄임금제로 구제받는다고 하는데, 지금의 포괄임금제는 과연 누굴 위해 유지되고 있는 것인가? 야근한 시간만 따져도 지금 한 달 월급의 2배는 뛴다. 하지만 포괄임금제 벽 앞에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일을 더 하든 달마다 통장에 찍히는 월급의 액수는 늘 똑같다.
그럼에도 결국 또 회사, 그리고 집, 회사, 집 그리고 또 야근, 성실하게 구를 뿐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크게 긴장하는 일이 생기면 뱃속에 안개부터 끼는 날이 일상이었다. 아마도 장이 유달리 약한 편이겠지. 어느 기점으로는 약발도 잘 안 받길래 안고 살기로 했다. 그게 타고난 성질이겠거니, 나의 약점이라 여긴다.
잔뜩 팽창한 뱃속이 구르륵거리다 한 번 톡, 명치 부근을 찌른다. 순간 느껴지는 찌르르한 고통, 하지만 곧 잠잠해진다. 이것만 끝내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겠다, 그 다짐이 벌써 세 번째다. 화장실이 미치도록 가기 싫었던 나의 오만 핑계 중 하나라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화장실에 가겠다고 다짐한 지 두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나는 내 자리에 묶여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열에 아홉은 퇴근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졌다. 결국 퇴근하면 낫는 병이었나.
속이 약한 것을 알고부터는 원체 부담스럽게 먹는 것을 기피했다. 사실 원체 먹는 데에 큰 욕심도, 미련도 없어서 하루 한 끼로 끝내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먹은 것도 없는데 뭘 과하게 먹은 것처럼 속이 부글부글 끓는 날에는 억울하기도 했다.
유독 아픈 배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던 날이었다. 오늘은 좀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자리는 비울 수 없어, 모니터 앞에 늘어놓은 숱한 약봉지 사이, 소화 약 하나를 까서 왼쪽에 있던 얼음 녹은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그 느낌은 마치 뾰족한 바늘 하나를 가지고, 명치 부근을 계속 찌르는 듯한 감각이었다. '좀 심한데...' 싶었던 그 순간, 명치가 울컥 울렁거렸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곧바로 자리에서 튀어 올라 화장실로 뛰쳐갔다. 변기를 부여 잡고 구역질을 했다. 혼이 다 빠져나간 참에 변기에 기대 앉아,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심히 불안하다.
다음 날 아침, 갑작스러운 복통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졌다. 한창 거실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배가 찢기는 듯한 생애 첫 고통은 정말 생소한 경험이었다. 너무 놀라면 사람이 소리도 못 지른다더니, 지금 이 상황이 내게는 그랬다.
가족 누구든 나를 발견해 줬으면, 이럴 때 가족들과 같이 살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곧 출근 걱정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오전 반차가 까일 텐데.
나는 때마침 방에서 나오던 동생에게 발견되었다. 그 길로 곧장 부축을 받고, 집 근처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회사에 연락을 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정신은 없었다. 일단 진료부터 보고.. 아니면 진료를 보면서 바로 연락해야 할까?
집에서 회사까지는 1시간 20분.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이미 너무도 돌이킬 수가 없다.
한여름 오한에 핸드폰도 제 손에 못 들고 눈만 껌뻑이는 나를 보며 동생이 다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회사 출근은 어떡하지, 연락이 너무 늦어지는 거 같은데,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내지른다.
"너 없어도 굴러간다고! 진료 다 보고 연락해도 안 늦는다고, 니 진짜 죽고 싶어서 그러냐?"
그런 와중에 꽂히는 의사선생님의 이야기에 불현듯 정신이 조금 들었다.
아, 여기 진료실이었지.
"장 기능은 떨어졌고, 이정도면 위도 멀쩡할 리 없고... 소화 장애 수준인데, 그동안 어떻게 버텼어요?"
그냥 뭐.. 이 지경이 될 때까지는 적당히 살아졌다.
"네? 아..."
"내시경 한 번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네. 내시경 해본 적은 있어요?"
"아뇨..."
"꼭 받아 보시고.. 내시경은 원래 1년에 한 번씩은 꼭 하는 게 좋아요."
"아, 네네...."
진료실을 나서자마자 사수에게 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대리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침에 갑자기 복통이 심하게 와서...]
“언니, 오늘 그냥 쉬는 게 낫지 않냐?”
약국에서 약 처방까지 받고, 다급히 지하철역으로 돌아가는 나를 향해 동생이 물었다.
"안 돼, 쉬면. 큰일 나."
"언니, 너 지금 얼굴 엄청 창백해. 다 죽어가는데..."
“괜찮아, 괜찮아."
무더운 날씨 탓인지, 아파서 그런지 땀이 비오듯 흘렀다.
"아니, 사람이 지금 제정신이 아닌데 무슨 하루도 못 쉬냐? 니 다니는 거기 회사도 존나 미쳤네."
짜증내는 동생을 뒤로 하고 손을 내저었다. 나름대로 고마움을 담아 봤지만, 동생은 영 못마땅한 듯하다.
"그래, 그러고 일하다가 뒤지든지."
"걔네가 무슨 억만금 주냐?"
"사람이 이 지경인데 쉬지도 못하게 하고, 그게 회사냐고."
"거기 일하는 사람이 너밖에 없어?"
나라고 애사심이 펄펄 끓어서,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무엇 때문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후로, 야근과의 전쟁을 연일 치르며 일상 복귀에 성공한 듯했다. 그러나 안일한 대처에 대한 대가는 살벌한 후폭풍으로 쏟아졌다. 또 한 번 반복된 구역질에 급한대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능에 의한 움직임이었다.
"엄마, 나 내시경 받아야 할 거 같아."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병원 하나 알아볼 시간도, 예약 전화할 시간도 없어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 상황이 너무도 한심했다. 하지만 엄마는 마치 기다렸단 듯 이미 알아둔 곳이 있다며, '주말이 제일 좋겠지?'라고 되물었다.
"응.."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내시경 검사 준비는 정말 최악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발전했음에도 500ml 용량에 이르는 물약을 냅다 마셔야만 하는 이토록 무자비한 방식이라니. 수차례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몸에 남아있는 기력이 조금씩, 조금 더 빠져나가는 느낌.
"이게 지금 다 헐어서 이런 거예요."
모니터 두 대에 각각 나의 적나라한 대장과 위 사진이 띄워졌다. 나의 예상은 흔한 발간 속인데, 곳곳이 하얗게 뜬 모양새였다. 약간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상하기도 하고.
"이렇게... 보시면, 군데군데 새빨갛게 상처가 있죠? 내시경 하면서 자잘한 용종들은 제거했고, 이게 그 자리예요. 자연스럽게 아물 거니까 이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아... 네...."
“그리고 여기 보시면, 이게 그, 대장인데 여기서 선종이 하나 발견돼서...”
웬 괴상한 독버섯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못난 딸기같기도 한 게 묘한 생김새였다. 의사는 그것의 이름이 선종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는 내시경으로 제거할 수가 없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조직검사는 넘겼으니까 결과가 나오면 정확히 알 수 있을 거고요. 이거는 이제, 일주일 정도 걸리니까 그때까지 기다리시면 되고.. 그래도 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이가 워낙 젊으니까..."
그렇다고 한들 사람 마음이 마음처럼 쉽게 움직일 리가 없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내내, 방금 전까지 무얼 했는지도 금새 까먹을 정도로 나는 아무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걸릴 거라는 의사의 말과 달리, 병원에서는 정확히 3일 뒤 연락이 왔다.
암세포라는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