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아침을 만듭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어? 아침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면서 내가 물었다. 먹으면서도 먹는 이야기를 하고 먹고 난 다음에도 또 다음 먹는 이야기를 하고 먹은 것을 치우면서 다음 먹을 계획을 짜는 우리였다. 아침이 늦은 탓에 이미 어정쩡한 시간이었고 준비하고 외출을 시작하면 점심시간이 될 터였다. 그러니까 결국 점심을 먹으러 외출을 하는 것이다.
우리 그거 먹으러 가야지 네가 추천받은 에스카르고 맛집!
파리에 여행 가기로 했다고 하니, 친구가 에스카르고 맛집이 있다며 알려준 곳이 생각났다. 이런저런 가게 사진들과 음식 사진들을 잔뜩 보내주고 특히 에스카르고가 맛있으니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 집으로 출동하며 M을 호출했다. M은 그새 숙소를 한번 옮겼는데 옮기는 틈에 에어팟을 챙기지 못해서 전 숙소로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숙소를 샅샅이 뒤지고도 찾지 못해서 매니저에게 연락처를 남기고 옮긴 숙소로 가서 캐리어를 뒤엎다시피 했는데 그래도 안 나왔다고 했다.
"언니 저는 밥맛도 없어요. 그냥 먼저 드세요."라는M에게 시간을 조금 주며 샹젤리제 거리에서 신나게 한바탕 쇼핑을 했다. 그러다 집시 소매치기 집단도 만나 가방이 털릴 뻔했지만 그건 다음에 다시!
“밥 먹자!”
풀 죽었을 것이 분명한 M를 호출했다. 슬픈 마음은 먹을 것으로 달래야 한다.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다. 먼저 도착해서 와인 한 모금에 에스카르고를 하나 집어먹고 나니 더 확실했다. 이 집의 에스카르고는 슬픔을 달래기에 아주 적합했다.
퉁퉁 부운 빨개진 눈을 하고 M이 나타났다. 선물 받은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속상한 마음,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사람에 대한 원망이 얼굴 가득이었다. 아무것도 재촉하지 않고 싶었지만 와인과 에스카르고를 얼굴 앞에 들이밀다시피 하며 재촉했다. 이건 꼭 먹어야 한다구.
이 집은 달팽이 모양 그대로인 에스카르고가 나와서 속살을 벗겨내야 했는데 이건 또 J가 맡았다. 이 순간은 장난꾸러기 친구가 아닌 의사 선생님이 되어 냄새를 솔솔 풍기며 달팽이를 집도했다. 달팽이를 잘 까려고 의대에 간 모양이라며 꺄르르르 웃음이 테이블을 채웠다.
좋아하지 않는 물고기를 두 접시나 주문해서 함께 먹었다. 함께 먹는 음식은 싫어하는 마음도 잘 접어 넣게 했다.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슬픔을 나누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웃느라 눈물이 날 정도로 즐거웠다. 함께해서 좋은 시간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역시, 슬플 때는 먹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