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범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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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하는 작가의 신간을 처음 읽는 때보다, 곁에 오래 둔 책을 꺼내 읽는 게 조금 더 좋다. 곁에 오래 남은 책들은 몇 번을 돌이켜 읽어도 눈에 밝히는 구절이 있고, 전에 읽었을 때는 모르고 지나쳤던 격조사의 존재를 새롭게 알아채게 되는 책들이다. 읽을 때마다 예외 없이 안락한 즐거움을 주면서 얼마쯤은 새로운 것들.
나는 이들에게 침대 옆 책장에서도 특히 머리맡과 가까운 자리에 놓일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잠이 안 오는 밤, 무시로 손을 뻗어 다룰 수 있도록. 이중 미색의 책등을 드러낸 <범우문고>가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그마한 판형의 오렌지색(혹은 미색을 띤) 표지는 범우문고를 단 한 번도 읽지 않았대도 서가 어디에서 한 번쯤 보았을 법한 모양새다. 범우문고는 1976년, <범우에세이문고>를 근간으로 현재에는 <범우문고>라는 이름 아래 주로 문학, 사상, 고전, 철학, 역사를 망라하여 구성된 문고판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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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에코백’을 들고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범우문고의 책을 사 모았던 것 같다. 하드커버의 책을 넣고 다니다가 책 모서리에 연약한 천 가방이 뜯기거나, 등하굣길 지하철에서 짬나면 책을 읽으려던 마음이, 양장본 책의 무게에 지레 눌려 버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부터 외출할 때 동반하는 책으로 더욱 범우문고를 찾았다. 내 방 침대에서건, 만원 버스에서건 혹은 어디 이국의 리조트 선 베드에서건 범우문고의 책은 한 손으로 그러쥐고 읽다가 내키지 않으면 다시 가방에 쏙 넣어 버리기도 좋다. 범우문고의 선별된 시리즈도 만족스럽지만 무엇보다 ‘책 자체의 물성’으로 매력적이기도 하다. 보기에도, 만지기에도 흡족하다.
심플하면서 경쾌한 빛깔의 표지와 표지 상단에 극사실화로 그려진 조가비, 중앙에 새겨진 깃털 한 가닥은 이 시리즈 특유의 고아한 느낌을 배가한다. 또한 책장을 넘기는 맛도 각별하다. 책장의 귀퉁이를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것은 갱지와도 같은 종이의 질감을 충분히 즐기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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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읽었던 범우문고는 김진섭의 『백설부(白雪賦)』였다. ‘말하기조차 어리석은 일이나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눈(雪)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라는 서두로 시작하는 표제작 「백설부」가 실린 수필집이다. 이 책은 세 번인가 만났던 K가 첫 만남에서 준 거였다. 고백하건대 K 덕분에 범우문고를 처음 알게 되었다. K는, 그가 무턱대고 내 미니홈피에 쪽지를 남겨 두지 않았다면 그리고 호기심에 답신을 하지 않았다면 영영 모르고 살 뻔한 사람이다. 엠에스엔 메신저 아이디를 교환했고, 서로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그가 먼저 걸어왔는지 어렴풋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교롭게도 신영복 선생이 번역한 다이호우잉의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다림’을 좋아하는 점까지 사사롭게 겹쳤다. 그때 나는 이성간 취향에 어느 정도 교집합이 있다면 사귀게 되는 수순으로 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었던 스무 살 초반이었다. K가 먼저 만나자는 제안을 했고, 처음 만난 날, 자기의 이름을 『백설부』의 면지에 정직하게 눌러 써서 줬었던 기억이 있다. 김진섭의 글을 닮고 싶댔나, 뭐 그런 말도 덧붙이면서 작고 가벼운 책을 건넸다. 2008년 봄이었다. 이후 두 번을 더 봤고, 그러고도 K는 여느 때처럼 전화를 했지만 우리는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다. 툭 까놓고 그에게 우리가 뭐냐고 묻기에는, 그가 준 수필집의 만연체(蔓衍體) 문장만큼이나 내 마음도 복잡했다. 차라리 K의 전화를 받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무엇이 그렇게 조급했는지 모른다. 2008년의 봄이 이울기 시작할 때였다. ‘이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슬픈 일이나 얼마나 단명하며, 또 얼마나 없어지기 쉬운가! 그것은 말하자면 기적같이 와서는 행복같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백설부」중).’ 같은 글귀에 밑줄이나 긋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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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문고의 책에는 내가 이 책과 지낸 시간의 흔적이 분포해 있다. 책장 한쪽에 누렇게 바랜 커피 자국이라든지, 책장 사이에서 이제는 없어진 아이스크림 체인점의 스탬프카드를 발견할 때엔 잠깐 동안 시간을 거스르기도 한다. 지금의 내가 보기에 영 마뜩지 않은 부분에 그어진 밑줄을 발견할 때도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란 사람의 취향이나 선호가 한결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더 많기는 하지만.
얼마 전, 상허(尙虛) 이태준의 『무서록(無序錄)』을 다시 읽었다. 범우문고 중 내가 가장 많이 읽고, 또한 제일 아끼는 책이다. ‘두서없이 기록한 글’이라는 뜻의 이 수필집은, 제목처럼 순서 없이 어떤 부분부터 펴서 읽건 크게 상관이 없다. 어디에 시선을 두건 담백한 빛깔의 글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읽는 순서를 매기자면, 나는 상허가 성북동에 살던 시절 쓴, ‘벽’, ‘화단’, ‘파초’, ‘돌’처럼 구체적인 사물을 글감으로 한 글부터 펴고 본다. 그는 시야에 포착된 사물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거기서 의외의 통찰을 번뜩인다. 그의 수필은 짜임이 절대 성기지 않은데도 간결한 느낌을 주고 유려하게 읽힌다. 이런 이유로 오히려 쉽게 쓰인 글이 아님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여러 번 담금질을 하고, 오랫동안 두드려 단단해진 문장들일 터이다.
무서록에 실린 수필 중 단연 좋아하는 것은 「바다」이다. 결말부, 몇 줄의 문장이 언제나 마음 한편을 건드린다. 특별히 극적이거나 미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문장에 다다르기 위해 「바다」를 읽는다.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녁이면 슬픈 데도 바다다. 파도 소리에 재워지는 밤엔 흔히 꿈이 많았다. 꿈을 다시 파도 소리에 깨워지는 아침, 멀리 피곤한 기선은 고동만 틀고.」
해안의 솔밭에 가려 해수욕장이 보이지는 않지만 명백히 들리는 파도 소리만으로 설레던, 서해의 소읍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나는 상허와 같은 마음으로 바다를 대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