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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20. 2019

선물의 쓸모

_하우즈 물뿌리개


얼마 전 친구에게 선물 하나를 받았다. 쨍한 노란색의 하우즈(Haws) 물뿌리개이다. 식물을 기르거나 가드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우즈’란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하우즈는 1886년 영국에서 시작된 원예용품 브랜드이다. 프랑스 물동이에서 영감을 얻은 ‘워터링 캔(물뿌리개)’이 유명한데, 특이하게도 물뿌리개엔 두 개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식물에 물을 줄 때 사용하는 손잡이 하나와, 물이 들어있는 상태에서(혹은 비어 있든 간에) 운반할 때 편리하도록 손잡이 하나가 더 있다. 물뿌리개 고유의 디자인은 창립 초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아서 하우즈 자체가 앤틱한 물뿌리개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고백하면 나는 하우즈의 물뿌리개를 선물 받고 나서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예사롭지 않은 물뿌리개를 처음 알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금요일 저녁의 샐러드바에서 과하게 진하다 싶을 정도의 노란색 물뿌리개를 받아 든 내 표정이 어땠을지. 지금 생각하면 친구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허겁지겁 포장지를 벗기니 해맑게 웃고 있는 노란 플라스틱 물뿌리개. 나 또한 그와 친구를 번갈아 보며 웃고는 있었지만, ‘집에 갈 때 대체 어디에 넣어 가야 하는 걸까?’라는 걱정이 든 건 사실이었다. 소박한 외관에 마치 훈장처럼 달려 있는 ‘Made in England’ 금박 스티커를 알아차리고는 물뿌리개의 내력이 궁금해져서 찾아보기에 이르렀지만 말이다. 참 속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물뿌리개를 개시하던 날, 네크라인이 늘어난 티셔츠 차림의 나는 ‘가드닝 에이프런을 입고 헬렌카민스키의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우아한 가드너’를 상상해 보기로 했다. 크림 티라도 즐기고 나온 느긋한 마음으로 쪼르륵 물을 줘야지. 중국집 단무지를 연상시켰던 물조리개의 색깔도 어쩐지 남달라 보여...     

과연 하우즈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물뿌리개의 명품다웠다, 라고 적고 싶지만 당분간은 훗날로 미뤄야 할 일인 듯하다. 우선 물뿌리개를 사용하기에는 우리 집 식물들이 아주 작아서 사방에 물이 튀었다. 연약한 이파리를 가진 아스파라거스는 이파리마다 맺힌 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나는 어느새 밀짚모자 따위는 저 멀리 내팽개치고, 배수관이 터져 허둥대는 사람처럼 쩔쩔맸다. 물뿌리개를 사용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 사방에 물이 튀어도 상관없을 베란다가 우리 집에는 없다는 점이다.


‘물뿌리개를 쓰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어?’ 나는 물 주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튄 물을 훔치고 마저 물을 주려고 화분을 들고 개수대로 갔다. 작은 식물들을 기르며 베란다가 없는 집에 사는 내겐 ‘하우즈 물뿌리개의 쓸모’란 상상으로 그치고 말 일인 것이다. 언젠가 우리 집 소철이 창경궁 대온실의 소철만큼이나 굵어지면(과장을 조금 더해서), 혹은 언젠가 번듯한 베란다가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그때라야 물뿌리개도 쓸모를 발휘할 것이다. 겨우 물뿌리개를 쓰는 일조차 시기적절한 ‘때’가 있다니.     

그날을 기약하며 물뿌리개는 찬장 높은 곳에 잘 보관하기로 했다.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니 물뿌리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도 아주아주 가끔씩이지 않을까. 다만 내가 지나가듯, ‘식물을 돌보는 게 요즘 생활의 재미’라는 말을 했던 걸 기억하고는 고심해서 물뿌리개를 선물한 친구의 진심만 꺼내 두고 이따금 들여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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