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개 뒤에 감추어져 있던 녹은 아이스크림 처럼 찝집한 세계
매직캐슬과 아이들
“여기 사는 아저씨는 전쟁에 나갔었고, 맨날 맥주 마셔. 이 아저씨는 병 때문에 발이 엄청나게 커. 엘리베이터는 오줌 냄새가 나서 아무도 안 써. 여기 사는 아저씨는 맨날 체포돼”
영화의 주인공인 6살 무니는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한 모텔에서 살고 있다. 디즈니랜드가 있는 플로리다주의 올랜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마법 같은 곳’이라고 불린다. 명색에 걸맞게 무니가 사는 모텔 ‘매직캐슬’의 벽에는 디즈니랜드의 ‘매직킹덤’을 연상하게 하는 오묘하고 환상적인 보랏빛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하지만 매직캐슬의 투숙객들의 삶은 오히려 잿빛에 가깝다. 마약 중독자, 비혼모, 참전군인 등 주로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 달도 아닌, 일주일 단위로 방세를 내며 근근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무니는 엄마 핼리와 단둘이 매직캐슬에 살고 있다. 핼리 역시 마땅한 직업이 없이, 훔친 디즈니랜드 티켓이나 도매상에서 싸게 사 온 향수를 팔아 돈을 번다. 영화 후반에 다다르면 급기야 그녀는 성매매를 통해 생활비를 마련한다. 핼리는 폭력적인 데다가, 대마초도 피운다. 보호와 방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그럼에도 무니와 핼리는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둘도 없는 친구다.
무니는 스쿠티, 젠시를 비롯한 또래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동네 악동 노릇을 한다. 아이들은 장난 삼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거친 욕을 하거나 투숙객이 세워둔 차에 침을 뱉을 정도로 최소한의 도덕적인 규칙조차 지키지 않는다. 아이들은 동전을 구걸해 모텔 근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심지어 과거에 펜션으로 쓰이던 폐가에 큰 불을 지르기도 한다.
페인트로 덕지덕지 가려진 복지 사각지대
그러나 매직캐슬은 결코 좋은 놀이터가 아니다. 무니가 엄마와 단둘이 사는 방은 너무도 협소하고, 모텔 주변으로는 자동차들이 쌩쌩 지나다닌다. 아이들이 매직캐슬의 주차장에서 놀고 있을 때 소아성애자로 의심되는 수상한 사람이 접근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자각하지 못한 채, 혹은 위험에 너무도 익숙해진 채 매직캐슬에서 시간을 보낸다. 영화가 흐르면서 관객들은 매직캐슬을 뒤덮고 있는 알록달록한 페인트가 가난의 흔적을 가리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이 제목은 이런 현실을 비꼬고 있다. 1965년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랜드를 건설하기 위해 플로리다의 부동산을 사들이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 사업의 이름이 바로 ‘플로리다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알록달록한 색깔을 입혀 관광객을 불러들였던 도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홈리스들로 가득 찬다. 디즈니의 관광산업으로 인해 땅값이 올라 주민들이 거주지를 잃는 ‘디즈니피케이션 (디즈니+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빈민들이 디즈니랜드 근처에 지어진 모텔에 자리를 잡게 된 것. 영화 속 무니와 핼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플로리다의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지원정책의 이름도 ‘플로리다 프로젝트’였다. 동화 같은 도시를 건설하려는 대규모 사업과 도시의 가난과 빈곤을 구제하려는 정책의 이름이 동일하다니, 참으로 기막힌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도 관광지 활성화를 명목으로 개발되었다가 방치된 채 쓸쓸히 남겨진 공간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벽화마을이 그렇다. 생활환경이 다소 열악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동네에 벽화가 그려지자 초반에는 계획대로 관광객이 많이 찾아왔다. 그러나 한바탕 유행이 지나가자, 벽화마을에는 흉하게 벗겨진 그림들과 오른 땅값 때문에 원주민이 떠나가 버린 빈집만이 달랑 남겨졌다. 정부가 주도하든, 민간 기업이 중도하든, 지역이 관광지로 변한 이후 빈민들이 많이 발생한다면 관광산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 영화과 폭력과 빈곤을 그리는 법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무니의 시선을 따라간다. 카메라 또한 대부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어 어른들의 덩치는 더 커 보이고, 건물은 더 웅장해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무니의 시선을 거쳐 간다는 특징 때문에, 영화 안에서 폭력과 착취의 장면을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주 굶주릴 만 한데도 무니는 배고픔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는커녕, 보급받은 빵에 잼을 듬뿍 발라 먹거나 구걸해서 산 아이스크림을 친구들과 돌려가며 먹은 뒤 손에 묻은 것까지 야무지게 핥아먹는다. 그러나 실은 무니가 먹는 것은 빵 뿐이다. 그녀는 파스타도, 샐러드도,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고기 요리도 먹지 않는다. 이렇듯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여주는 대신, 보여야 마땅한 것들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현실을 고증한다.
‘보여주지 않기’ 기법에는 다양한 장점이 있다. 꽤 많은 영화에서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주인공이 폭력을 당하는 장면을 사실적이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피해자에게 트라우마를 안길 수도 있고, 자극적인 면만이 강조되어 사건이 가지고 있는 논점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의 모순을 똑바로 바라보는 영화다.
또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가난한 사람이나 소수자를 납작하게 그리지 않는다. 영화 중반부, 디즈니랜드의 호텔과 매직캐슬을 착각한 신혼부부가 늦은 밤 모텔 관리사무소에 도착한다. 이들은 디즈니랜드로 갈 수도, 매직캐슬에서 잘 수도 없어 패닉에 빠져 있다. 신부는 ‘첫날 밤을 이런 싸구려 모텔에서 보낼 수 없다’며 울분을 토한다. 부부의 짐을 옮겨준 다음 팁을 받으려고 모텔 사무실 밖에서 얼쩡거리던 무니는 여자의 표정을 보고 친구 스쿠티에게 이렇게 말한다.“난 어른들이 울기 직전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아” 모텔에 사는 어린아이가 중산층의 어른 앞에서 기죽기는커녕 “네가 함부로 내가 사는 곳에 대해 말할 수 있어?”라고 따지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통쾌해진다.
생각해보자, 평소 가난한 사람이나 소수자의 삶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기하지는 않는지. ‘더럽다’, ‘노력하지 않는다’와 같이 부정적인 말부터, ‘측은하다’, ‘도와주어야 한다’라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말까지 말이다. 결국 이런 말들은 그 일이 타인의 일이며,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나의 일에 ‘측은하다’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매직캐슬에 사는 아이들은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매일 불행하지도 않다. 아이들이 당연히 불행할 거라며 함부로 위로를 건네는 것은 오만의 표현이다. 우리가 그들과 다른 건 단순히 운이 좋아 특권(우리는 그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가능한 건 아닐까.
이 글은 <월간 유레카>에 실렸습니다. https://www.eureka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