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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이모 Sep 18. 2016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기

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지혜

우리세대가 사춘기 청소년처럼 방황하는 나날이 과거 세대에 비해 길어지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과 주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면, 아무리 용기있는 사람이라도 의식하지 못하는 와중에 의기소침해질 것이다. 털을 곤두세우고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짐승처럼, 따뜻한 손길이 닿으면 되려 깜짝 놀라며 일순간 불쾌감을 표현하는 뻣뻣한 털을 가진 들고양이처럼.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안쓰럽고 어리석은 시간이었는지 이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다 지나왔다고,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끔 그 때의 '방구석'으로 나를 이끄는 힘을 거부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소한 일이 생길때나, 이제는 다르겠지 라고 안도하는 찰나 다시 누군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다시 내 마음은 '방구석'으로 들어간다. '그래,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거지? 뭐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거야? 인생은 어차피 혼자인걸'. '단호함', '이기적임', '차가움', '필요한 말만 함', '감성을 나누지 않음', '여유는 게으름과 동의어'.. 일련의 비정한 가시들이 마음과 이성을 휘감을 때면 대화는 단절할 수록 좋고 효율적인 것이 되고, 도시의 생활자는 점점 더 상처받지 않기 위한 보호태세를 갖춘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태도는 나를 점점 작아지게 만든다. 자아를 잃게될 뿐만 아니라 더 성숙하거나 발전하기 힘든 정체된 웅덩이를 만들고, 그 웅덩이 안에서 감정은 맴을 돌다가 내 안에서 말라버리거나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는 썩은 늪이 된다. 마음에 숨어있는 그 웅덩이는 얼굴과 몸에도 영향을 끼쳐 나를 본 사람들은 나의 등 뒤에서 말할 것이다. 기분 좋지 않은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이런 에너지를 차츰 덜어내면서 진정으로 나를 보호하고 성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방구석으로 따뜻한 기운이 들어올 수 있도록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화의 시도는 손이 아닌 머리가 아닌, 입으로 누군가에게 진정성 있게 전해져야 한다.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답을 찾아보자. 당시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자식이나 주변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런 모습을 '쿨'하지 못하거나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어른의 모습을 '지혜롭다'고 느낀다. 편견이 없는 대화 방식, 누가 나와 대화가 잘 맞을지 사전에 가늠하지 않고,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쉽게 토라지지 않는 다양하고 긍정적인 대화 방식은 과거 세대가 가졌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들은 비단 정보와 이익의 등가교환으로써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에너지와 관계망을 장기간에 걸쳐 서로 교환하면서 이해한다. 한 사람을 대화의 주체로 여기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 받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진정성 있게 주고 받을 수 있다. 주변에 대한 관심과 네트워킹에 대한 지혜는 통신기술이 발달한 지금 세대보다 본능적으로 탁월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주변인을 대하는 자세는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기'라는 주제로 생각해봤을 때 더욱 명확해진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 대비 과거 세대(상대적으로) 사람들이 앉아서 이동하거나 옆 자리의 사람과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들이 자라왔을 때는 모바일이나 통신기술의 혜택(강요로 이뤄진 혜택일지라도)에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간의 욕구의 질량은 동일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 욕구의 해소는 소통의 방식이라는 형태로 어딘가에 떠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비효율적일 수 있고, 의치 기반, 관심사 기반이 아닐 수 있지만 진정성 있는 소통이고, 다양성을 존중할 줄 아는 열린 형태이고, 자신의 관계망에 기반한 롱테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는 점에서 아름답고 지혜롭다고 느낀다.


가끔 상상한다. 기술을 통해 삶은 정말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추석 연휴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점원에게 한 마디를 건내는 것으로 작은 시도를 해본다. 전에 알지 못했던 타인이지만, 음식을 먹고 계산하는데 필요한 대화가 아닐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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