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나레이터의 입으로만 전달되었어야 했던 이유

연극 <일리아드>

by 최희지
240806


* 연극 <일리아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주의











특이한 구성이다. 낡고 지쳐 보이는 나레이터와 그의 뮤즈만이 무대 위에 덩그러니 있다. 무대를 장악하는 것은 화자 한 명과 악기 하나, 그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명확하게 압도된다. 나레이터가 하는 말은 아주 먼 옛날에 있었던 신화에 대해서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분명하게 현재 우리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지금은 2024년이다. 2024년에 왜 우리가 삼천 살이나 먹었다는 나레이터의 고대 그리스 ‘트로이 전쟁’에 대한 생생한 목격담을 들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무색하게 나레이터는 말한다. “매번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해.” 마치 ‘네 질문은 순서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레이터가 2024년에도 이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나레이터를 노래하게 만드는 것이지. 비록 지금이 2024년임에도 말이다. 전쟁, 이 지독한 것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류는 무수히 많은 전쟁을 해 오며 예까지 왔다. 극 중에 나레이터가 피를 토하듯 뱉어내는 인류의 모든 전쟁의 개수만 해도 몇십 개는 족히 되는 듯한데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전쟁은 또 얼마나 많을까. 누군가는 국익, 정의, 평화 등의 갖은 이유를 대며 그것이 결과론적으로 더 진보한 인류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수많은 전쟁이 낳은 수많은 피해에 대한 예시를 여럿 댈 수 있다. 이것도 ‘이름난’ 경우이기에 우리 입에 겨우 오르고 내리는 것 아닌가. ‘이름나지 않은’ 피해는 또 얼마나 무수히 많을 것인가. 나레이터는 그들을 못 본 척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아직까지도 노래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레 나레이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나레이터는 누구길래, 이 모든 전쟁들을 지켜보고 고통스러워해야 했는지. 그는 신인지, 인간인지. 삼천 살이나 먹었으면서 왜 이렇게 계속 노래를 하고 있는지.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노래하라는 것이 그가 신에게 받은 형벌인지. 그리고 왜 그 혼자서만 이 참혹한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지. 이 이야기가 오직 나레이터의 입만을 통해서 전달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그러니까, 왜 <일리아드>가 1인극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나레이터는 인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레이터는 누구든 될 수 있다. 아킬레스가 될 수 있고 헥토르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아르테미스, 헤르메스 같은 신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신화라는 것 역시 인간의 산물 아닌가. 이 극에서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 역시도 언제나 트로이 전쟁 속 ‘그들’의 얼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나레이터처럼. 그가 누구의 탈을 쓰고 연기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처럼.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오직 나레이터 혼자서만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킬레스, 헥토르, 아가멤논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도 그들은 명확한 얼굴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그들의 모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나레이터를 통해 알게 되어야 하기 때문에. 왜 나레이터가 참전한 많은 인물들에게 빙의가 된 듯 심취해 연기하며 고통스러워했겠는가. 관객 앞에 무서운 얼굴을 드러내고 잔혹하고 야만적인 행위를 몸소 재현했겠는가. 나레이터, 그는 곧 우리나 다름이 없다. 우리는 전쟁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전쟁을 재미있게 관전하는 신이 될 수도 있다. 전쟁 안에서 잔혹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존재가 될지도 모르고. 중요하지만 모두가 잊고 사는 이 중요한 사실을 관객들은 나레이터를 통해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마치 아킬레스가 자신의 갑옷을 입고 그와 싸우는 헥토르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나레이터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전쟁 같은 걸 할 게 아니라 아킬레스랑 헥토르 둘이 호프집 가서 치킨이랑 술 갖고 대화로 해결하자고. 웃자고 하는 말 같이 들리지만 사실 그가 제일 하고 싶은 말이었을 테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 아닌가. ‘싸우지 말고 말로 해.’ 같은 것. 그리고 나레이터가 이런 뼈 있는 농담을 던질 때 관객석에도 조명이 켜진다. 관객들을 전부 이 연극 안으로 집어넣듯이. 그의 진심이 남을 수 있게.



나레이터가 했던 말들 중에 인상 깊었던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옛날의 신들은 어디로 갔느냐”는 것. 그들은 술에 숨기도 하고 브랜드가 되기도 하고 했다던데. 나 역시도 묻고 싶다. 인간의 전쟁을 스포츠처럼 즐기던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름나지 않은 많은 소년들이 죽어가고 있든 말든 특정 국가를 응원하던 신들 말이다. 뉴스 안에 있을까, 한 나라의 수장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너와 나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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