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압생트를 마시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

뮤지컬 <에밀>

by 최희지
240625





* 뮤지컬 <에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주의.












수수께끼를 하나 내볼까 한다. 이것은 강력한 무기다. 처음 이것을 든 순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손에 익는다면 막힘없이 술술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칼보다 강하다. 그래, 이것은 펜이다. 긴 세월의 역사 속에서 펜은 많은 역할을 해 왔다. 늘 옳은 일에만 쓰였다고 할 수도 없고 가끔은 칼만큼이나 인간을 위협하기도 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펜의 역할은 ‘기록’이다. 기록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무언가를 깨닫고 느끼게 한다. 가끔은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고 시대의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록은 후세대를 타고 오랜 시간 생생하게 남는다. 그래서 어떤 ‘씀’은 필연적이기도 하다. 특히 사회 또는 국가가 무언가를 감추거나 왜곡하고 있다면 더욱. 그것이 바로 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가 19세기말에 벌어진 ‘드레퓌스 사건’에 대하여 ‘나는 고발한다…!’는 말과 함께 펜을 장전한 이유다.




뮤지컬 <에밀>은 2인극으로 ‘비싼 코냑을 마시며 세상의 부조리함을 논하는 에밀’과 ‘싸구려 압생트를 마시며 높은 세상을 꿈꾸는 클로드’가 등장한다. 100분의 긴 호흡 동안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치열하게 진실을 좇는다. 에밀은 프랑스 잡지 <로로르>에 ‘나는 고발한다…!’를 기재한 이후 끊이지 않는 살해 위협을 감내하고 살아남음으로써 진실을 지키려 한다. 반면 클로드는 에밀의 집에서 미공개 원고를 찾아 진실에 다가가려 하는 인물이다. 이들의 행위는 밖에서 총성이 울리고 저택의 불이 꺼져도 계속된다. 갖고 있는 총으로 외부 인물에게 반격을 가하고 성냥과 촛불로 방을 환히 밝히면서까지도. 이유는 단순하다. 그게 옳기 때문이다. 클로드의 형이 유대인에 의해 사망하였어도, 그래서 그가 유대인을 지독하게 싫어해도, 드레퓌스가 유대계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쓴 것이 부당하니까.




하지만 드레퓌스의 누명을 벗겨줄 미완성 원고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에밀이 아닌 클로드다. 에밀은 부조리함을 세간에 화두로 던져줌으로써 제 역할을 다했다.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싸구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들인 것이다. 코냑을 마시는 소수의 부유한 자들이 아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게다가 클로드는 진실이 드러나고 정의가 실현된 ‘높은 세상’을 꿈꾸고 이를 실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젊은 세대 아닌가. 클로드는 저택의 불이 꺼졌을 때 에밀과 함께 촛불을 켜고, 에밀이 술에 취했을 때 촛불을 몰래 끄면서도 그 어둠 속에서 원고를 찾는다. 개인적인 이유로 흔들리더라도 어떻게든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에밀과 다르게 독하디 독한 압생트를 마시고도 가슴을 부여잡지 않는 클로드의 강인함은 대중, 그중에서도 젊은 세대가 나아가야 하는 이상적인 방향을 보여준다.




극의 후반에서 클로드는 자신이 갖고 있던 총을 에밀에게 주고 펜과 원고를 챙겨 퇴장한다. 이후 펼쳐지는 장면을 통해 그가 에밀의 원고를 바탕으로 드레퓌스의 무죄 선고에 영향을 줬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에밀에게도 싸구려 압생트를 즐겨 마시던 시절이 있었듯이 클로드 또한 에밀처럼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포스트 클로드’를 만날 시기가 올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연쇄야말로 우리가 ‘정의의 역사’라고 부르던 것이 아닌가.



정의의 역사를 잇는 방법은 '기록' 뿐이다. 무엇을 씀으로써 진상을 밝히고 선례를 남겨 잊히지 않게 하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펜을 들어야 한다. 비록 이미 한 손에는 초록빛 싸구려 압생트를 거머쥐었대도, 남은 손으로 펜의 무게를 견뎌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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