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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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내는 소파 아래에서 편안한 자세로 커피를 마신다. 서우는 찰흙 놀이를 하고, 온이는 창가에 앉아서 나무 블록으로 뭔가 만들고 있다. 나는 부유하는 먼지를 보면서 캔에 담긴 홍차를 마신다. 거실 바닥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지만, 창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텔레비전도 꺼져있어서 고요하다. 5세, 7세 딸을 가진 부모에게 이런 티타임은 어느 정도 완벽에 가까운 순간이다. 주말은 이런 순간이, 정말 순간이긴 하지만, 종종 즐기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레스토랑에 앉아서 뭔가 우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직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따뜻한 집밥이 건강하기는 하지만, 퇴근을 하면 나는 나대로 기운이 없고, 아내는 아내대로 기운이 없음으로, 가계의 여유가 있든 없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외식을 하는 편이다. 외식을 하게 되면, 어른이 교대로 빨리 막고 아이도 동시에 뭔가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르게 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닭칼국수 집 단골이 되었다.
없는 형편에 나름 마음을 먹고 하는 외식이지만, 두 아이와 밥을 먹다 보면 음미라는 것을 할 여유가 없다. 첫째도 혼자 먹는 것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다. 포크 숟가락으로 조금 먹다가도 이내 손으로 돌아간다. 잔소리할까 하다가도 안 그래도 해야 할 말들이 많아서 속으로 삼킨다. 둘째는 여기저기 묻히면서 먹기 전문가다. 어떻게 여기서 밥을 먹는데 저기까지 밥풀이 날아가 있고, 손자국은 또 전혀 의외의 곳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 덕이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경지는 아니지만, 오물 오물거리면서 삼키는 모습, 볼록해지는 볼살, 이어서 어떤 만족감을 표현하는 입매를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 뿌듯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나의 반복되는 고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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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첫째 서우가 자고, 서우 옆에 아내가 자고, 그 옆에 온이가 잔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면 간첩들이 접선하듯 우리는 자리를 잠깐 바꿔서 만나다. 그런 만남을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내일 뭐 할지, 가까운 휴일에는 뭘 할지를 이야기했다면, 두 딸이 태어난 뒤에는 오늘을 이야기하는 편이다. 서로의 육아 무용담을 들으면서 고생을 위로하고, 걱정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요즘 반복된 화제는 아이의 성장이다. 덕분에 우리는 조금씩 여유라는 것이 생기고 있지만, 아내 말에 의하면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얼마 전에 두 딸과 <토이 스토리>를 보았는데, 버려진 인형들을 보면서 두 딸보다 내가 더 많은 눈물을 흘려버렸다. 그러고 보니, 올해 일곱 살 되는 서우에게 나는 이미 낡은 장난감이다. 어떤 날은 아빠보다 텔레비전을 더 좋아하고, 반복되는 놀이에 "또 그거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놀이터를 가더라도 이제는 나에게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울릴만한 친구가 있는지 찾아본다. 그런 날이 점점 많아진다. 혼자가 되면 좋다가도 서운하다. 육아는 이런 양가적 감정의 연속이랄까. 어쨌든 나는 구석으로 간다. 버젓이 의자가 있지만, 등을 기댈 수 없어 담이 있는 곳으로 간다. 거기서 깨끗해 보이는 곳을 손으로 털고 맨바닥에 앉는다. 체력을 비축하는 차원이다. 눈에 딸이 보였다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담으로 둘러쳐진 곳이라서 마음이 놓인다.
나는 주로 오래된 노래를 듣거나 하늘을 본다. 그러다 시간이 더 생기면 서울에서 사는 친구와 오랜만에 영상통화도 한다. 웹서핑도 한다. 휴대폰 화면을 밀어서 올리면 화려한 것들이 빠르게 어딘가로 넘어간다. 내가 검색했던 것을 바탕으로 보여지는 어떤 욕망이 빠르게 넘어간다. 나와 관련 있는 듯, 하지만 필요하지 않고 무관한 것들. 합리화와 승화를 동시에 써보려 하지만, 나는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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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상념에 빠져있는데, 딸이 터덜터덜 걸어온다. 눈물이 맺혀있다. 넘어졌거나, 뭔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다. 달려가서 작은 공주를 안아주는데, 웃음이 나온다. 같이 울어주는 것이 좋을 텐데, 계속 미소가 비어져 나온다. 이런 나에게 서우는 웃지 말라고 타박을 준다. 육아할 때 이런 순간들이 제법 있다. 팥소가 가득 들어 있는 작은 빵 같다. 조금만 깨물었는데 비어져 나온다.
놀이터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너무 오랫동안 쓴 날은 미안하다. 그럴 때는 더 적극적으로 놀아준다. 종종 놀이터의 아이들을 모두 모아서 술래잡기를 한다. 초등학교 육학년부터 여섯 살까지 십오대 일로 술래잡기를 한 적도 있다. 나는 또 왕년에 육군 전투력의 초석을 만들어주는 조교 출신이 아닌가. 최선을 다해서 뛰다 보면 심장이 울리고 기분도 같이 올라간다. 몸에 새겨져 있을 유년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이 순간도 그리움이 될 것 같은 직감이 든다.
그러고 보면, 다시 못 올 여행 같은 일상이다. 부유하는 먼지 같은 감정들, 점점 낡아져 가는 딸의 신발, 늘어가는 상처들을 그냥 흘려버리기에 아쉽다고 생각한다.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 시간과 함께 지나갈 것이다. 다시는 만질 수 없는 시절이 지금도 과거로 넘어간다. 딸은 점점 자라고, 그녀의 동선도 하염없이 넓어진다. 결국, 미래의 어느 지점이 상상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친 서우가 목말을 태워달라고 한다. 어깨 위에서 딸이 물어본다. "아빠, 안 힘들어?" 나는 괜찮다고 한다. 오늘 밖에서 재미있게 놀았으니까, 집에 가면 동생한테 잘 해주라고 말하니, 서우가 "그럼요"라고 어른스럽게 답한다. 머리 위에서 웃음이 내려왔는데, 뜬금없이 서글퍼진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걸음이 집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길이 좁아지고 늘어났으면 좋겠다.
가까운 가족이 죽을 때, 자신이 무척 아플 때, 우리는 삶의 유한성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작은 딸들을 보면서 오히려 순간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우리 부부는 늙어가지만, 아이들은 자라기 때문이다. 오늘 이만큼의 서우는 오늘로써 마지막이다.
거실에 들어서니 깨끗하고 조용하다. 드리웠던 햇살도 이제 없다. 온이와 아내는 낮잠을 자는 것 같다. 이것도 사소한 기적이다. 아직도 휴일. 서우가 심심하다며 뭔가 꺼내러 간다. 나는 포트에 물을 올린다. 커피 믹스를 마실 참이다. 잠이 오지만 커피가 더 좋을 것 같다.
-경남도민일보에 연재된 글을 오늘 리라이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