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카페가 여럿 모여 있는 우리 거리에는 길고양이가 제법 있다. 마음씨 좋은 꼬마 손님이 많아서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가게 주인들도 사람이라 생각하고 고양이를 환대하는 편이라 제집처럼 카페를 드나들곤 한다. 테라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영업을 하는 봄, 가을철에는 어느새 공간 깊숙이 들어와서 의자 밑에 앉아있는, 소파 위에 앉아있는 길고양이를 종종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강아지처럼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가 ‘까노’다.
발견했을 때 명찰이 달린 목걸이를 매달고 있었고, 거기에 ‘까노’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뒤쪽 주택가에 사는 동네 주민이 중성화 수술을 시켜준 뒤에 이름표를 붙여주고 다시 풀어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고마운 분의 설명에 따르면, 까노의 이름은 아메리카노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어릴 적부터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서 그런지 강아지처럼 사람을 잘 따른다.
“까노야”하고 부르면, 다가와서 “야옹” 한다. 옆에 앉아 있으면 바짓단에 제 몸을 비비는데 그 모습이 꽤 어여쁘다. 흰 바탕에 검은색과 갈색의 무늬를 가진 까노는 사람 앞에서 늘 공손한 편이다. 만져도 손길에 꼬리를 세우지 않고 그것을 잘 받아들인다. 덕분에 까노는 영양가 높은 간식을 많이 먹고 나날이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까노 옆에는 ‘감자’가 있다. 감자는 까노의 아들인데, 생긴 모습은 매우 다르다. 까노가 오히려 뿌리채소처럼 터프하게 생긴 편이고, 감자는 수려하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 다니엘 헤니 느낌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에 나오는 주인공을 꼭 빼닮았다. 야밤에 수풀 안에서 요가라도 하는지 군살이 전혀 없다. 요즘은 카페 안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들어오게 된다면, 이 공간을 자신의 집으로 인정해준다면, 카페 안에서 키우고 싶을 만큼 아름답게 생겼다.
이런 감자가 요즘 까노에게 종종 맞는다. 내 생각에는 감자가 ‘양파’와 사귀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양파는 임신을 한번 했을 정도로 나이 먹은 고양이다. 그러나 크기는 갓 태어난 새끼처럼 작은 몸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길고양이 세계의 경쟁에서 도태되어서 그렇지 싶다. 결정적 시기에 영양 섭취가 적었고, 그래서 영원히 어린아이의 몸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 불쌍한 양파를 감자는 무척 좋아하는 듯 보인다. 무서운 엄마가 때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작은 종이 상자에 함께 들어가는 것을 즐기고, 잠도 같은 공간에서 취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추측을 한다. 아침에 카페를 오픈하고 주차장에 정리된 박스를 보면, 두 고양이가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고양이가 있지만, 우리 카페에서 제일 많이 만날 수 있는 고양이는 ‘삼식이’다. 이 친구는 양파의 엄마이고, 주 서식처 우리 카페테라스다. 왜냐하면 옆 카페에 가면 까노에게 맞기 때문이다. 까노는 사실 사람에게 온순한지만, 덩치가 큰 만큼 싸움을 잘하는지 녀석이 뜨면 다른 고양이들은 다들 꽁무니를 뺀다. 삼식이가 까노에게 쫓기는 모습을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보았다. 불쌍한 삼식이.
많이 맞고 자란 탓인지 삼식이는 무척 까칠한 고양이다. 윤지의 손에서 피가 나게 한 적도 있고, 간식을 주는 손님 손에 냥 펀치를 날린 전적이 많다. 그래서 혹시나 간식을 주는 분들에게는 꼭 조심하라고 말을 전하는 편이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그렇게 조심성 많은 녀석이 가끔 우리 카페 안으로 들어와 준다는 점이다. 들어오면 어떤 기분이 나면, 뭔가 인증을 받은 느낌이라서 뿌듯해진다. 세상 까칠한 손님에게 커피 맛을 인정받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직접 고양이에게 간식을 준 적이 없다. 왜냐하면, 손님들의 시선 때문이기도 한데, 모든 손님이 고양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주차장에 고양이 급식소가 있고, 관심을 보이는 손님이 있으면, 카페 안에 있는 간식을 드리거나 하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큰 사건이 생겨서 공식적으로 나의 입장을 정할 때가 되었다.
산책을 즐기는 동네 주민이 고양이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모습이 CCTV에 찍히게 된 것이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어른인데, 강아지 목줄의 끝을 묶어서 채찍처럼 휘두르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며칠 동안 건물 주변에 기록을 보니 일주일에 여섯 번이나 반려견과 함께 카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래서 요즘 고양이들이 거리에서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고문을 붙여놓으면 괜히 표적이 된다는 다른 손님들의 조언도 있었지만, 결국 길고양이를 공격하지 말라는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모르겠다. 작은 생명이라서 가볍게 여기는 것이 옳은지. 오히려 영혼의 무게로 치자면, 사람이나 강아지나 고양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확실한 것은 약한 존재도 살아가기에 괜찮은 세상이 조금 더 나은 세상 아닐까 하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해서 앞으로는 손님의 눈치가 보이더라도 고양이를 조금 더 챙겨야지 하는 다짐을 해본다. 카페 거리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존재에게 마음을 더 쓴다고 나쁜 일이 생기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