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NS에서 아기 길고양이를 보호하고 있는데, 키워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았다. 자꾸 눈길이 가서 사진을 오래도록 보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으니 흐뭇하고 기분이 괜스레 좋았다. 다른 게시물을 보다가, 다시 그 글을 찾아서 몇 번이고 읽었다. 그렇게 마음속에 작은 씨앗이 심어졌던 것 같다. 그날 밤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실로 오랜만에 꾸는 꿈이었다. 낯선 단칸방에서 아기 고양이와 함께 노는 꿈이었다. 열린 창이 있는 작은 방 밖으로는 버드나무 잎이 하늘거리고 있었으니, 아마도 봄이고 냇가의 어느 시골집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우리는 작은 공 하나를 가지고 제법 오래도록 놀았다. 이런 기분은 참 오랜만이구나 싶을 때, 어느 순간 아기 고양이가 방 모서리로 움츠러들 듯 달려가더니, 그대로 미지의 공간으로 스며들어버리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마음속에 있던 무엇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도 새벽 일찍 카페로 출근해서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테라스 문을 열어서 환기하고, 미숫가루를 마시고, 또 에스프레소를 넉 잔 정도 마셨다. 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그날은 유독 손님이 오지 않아서 메모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키웠을 때, 장단점을 적어보았다. 전자보다 후자가 많았다. 귀엽다, 위로된다, 보드랍다, 보다 밥을 줘야 한다, 놀아줘야 한다, 털이 날린다, 똥을 치워야 한다가 더 무거운 느낌이었다.
이런 생각에 밑줄을 긋고 있는데, 조금씩 기다렸던 단골손님이 오기 시작했다. 꾸준히 와주시기 때문에 나를 살아가게 하고, 직원과 동행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분들이다. 그래서 무척 고마운 존재인데 그분들은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 내가 밖으로 티를 내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모를 것이라 여겨진다. 특별히 좋아하는 손님이 있지만, 그분만 우대한다면 다른 손님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숨기기 때문이다. 다만, 빚진 마음이 있다는 것을 꼭 밝히고 싶다.
처음 카페를 운영했을 때는 나에게 친절의 총량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에너지 불변의 법칙처럼 나에게 친절 배터리가 존재하고, 하루에 베풀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한정되는 느낌이었다. 손님이 적은 날은 괜찮았으나, 손님이 많았던 날은 방전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손님을 반복적으로 보게 되고, 그들이 단골이 되자 또 다른 영역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예전 단골이었던 네트워크 마케팅 대표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그는 망해가는 듯한 카페에 앉아 있는 나를 쉬지 않고 찾아와 이런 식의 말을 하곤 했었다. 정 사장, 이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려보겠나. 나는 A4용지에 소심하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러면 이 동그라미가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이라고 생각했을 때, 정 사장이 알고 있는 지식은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지? 나는 동그라미의 10% 정도를 또 소심하게 칠했다. 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동그라미 밖의 영역에 빗금을 치기 시작했다. 여기는 뭐냐면 정 사장이 지금껏 존재했는지도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지식이야. 이를테면, 내가 하는 사업 말이지. 한번 들어보겠나? 나는 오랜만에 소름이 돋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그다음은 파이프라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장사가 계속되지 않았고, 그 대표의 이야기만 계속 들었다면 나는 그 길로 프로컨슈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님들이 찾아와주었고, 그들은 어느 순간 단골이 되었고,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를테면, 슬픈 일들, 기쁜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이사를 하게 되었다든지, 군대에 가게 되었다든지, 취직했다는지, 이별했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 덕에 나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졌고, 친절의 총량도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설거지를 하며 문뜩 그 생각이 들었다. 얼룩을 지우면서 괜한 염려가 지워져서 그렇지 싶었다. 나는 급하게 고무장갑을 벗고, 아기 고양이를 키우면 발생하는 단점을 까맣게 덧칠했다. 나는 집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내는 무일푼 나를 거두어준 나의 집사이기 때문에, 새끼 고양이를 무척이나 기꺼이 거두고 싶어 했다. 서재 한편에 스크래치와 화장실과 숨숨집을 만들어주었고, 그 녀석은 지금, 이 순간 담요에 둘러싸인 채 잠들어 있다. 아직은 녀석의 세상은 이 작은 방이 전부이지만, 언젠가 가느다란 털을 날리며 거실이며 주방이며 큰방을 누빌 것이라 예상된다.
이름은 랑이, 사랑에서 사를 뺐다. 나는 수고롭겠지만, 밥을 주고, 똥을 치우고, 놀아줄 것 생각이다. 그런 반복 속에서 아마도 나의 세상은 조금 더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조금 더 깔끔한 바리스타가 된다면 그것은 나에게 붙어있을 털을 끊임없이 떼어내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더 친절한 바리스타가 된다면 그것은 랑이가 나에게 선물해준 아량 때문일 것이다. 다행스럽게 모서리에 웅크리고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작은 생명이 고맙다. 그 고마움이라는 작은 새싹을 잘 보살펴야지 그렇게 더 잘 살아가야지 하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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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