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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한 Dec 24. 2021

짙고 얇고 딱딱한



가끔은 적막한 가운데 있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 정말이지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는 곳에서 들리는 것은 나의 숨소리밖에 없는 곳에서 그저 담요를 덮고 비스듬하게 누워서, 조금 외롭지만 반가운 고독 속에서 나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알리는 빗소리나 들으면서, 저것이 곧 눈으로 바뀔 것 같은데 하는 나의 낯선 목소리를 들으며 내 입에서 천천히 퍼져나가는 입김을 바라보면서 한나절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지만, 요 며칠 사람에게 시달리는 일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뭐라고 반박하고 단절을 쉽게 하는 편이지만, 동네 장사를 하는 입장이고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고 해서 뭐라고 말을 할 수 있는 포지션이 아니다. 거기다, 바리스타는 누군가에게 대상화되는 것이 쉬운 위치다. 나에게 처음 커피를 가르쳐준 스승도 바리스타는 ‘바 안의 스타’이니까, 나는 그 표현을 듣고 피식 웃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고. 어쨌든 그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늘 의식해야 하고, 감당해야 한다고, 그것은 일종의 의무라고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물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나는 커피를 팔아서 먹고사는 대다, 어쭙잖은 글까지 쓰는 사람이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떤 것을 풀어내는 사람이고 나의 이야기가 가끔 누군가의 주전부리가 되기도 하니까. 아무튼, 나는 때때로 공개적인 평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며칠 동안 그런 상황에 부닥쳤었다.


나는 며칠 동안 심적으로 피곤한 기분이었다. 평소보다 많은 커피를 마셔야 일을 할 수 있었고, 밤에는 쉽게 잠들지 못한 날이 이어졌다. 검은 그렇다고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 길이 맞나 싶은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지만, 며칠 동안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어떤 재단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나는 짜장 반 짬뽕 반처럼, 설렘과 두려움을 반반 섞어서 그 자리에 참석했었다. 나는 생각보다 말주변이 없는 편이고, 때때로 실언을 하고 그것이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을 잘 더듬는 편이지만, 그래도 진한 커피 덕분인지 능숙한 인터뷰이의 솜씨 덕분인지 실로 많은 말을 하고 말았다.


어떻게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글이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런 것을 물어보았고, 나는 턱을 괴고 오랜 벗과 대화하듯 그 시간을 보냈다.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웃는 입을 가리면서, 이것은 일종의 조울증인가 싶었고, 목이 마르면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셔가면서 한 시간을 몇 분처럼 보냈다. 여러 질문에 대답을 했다.


마지막 질문은 인생의 목표에 관해서 묻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목표가 바람을 피우지 않고 늙어가는 것이라 했다. 인터뷰이는 구체적인 답변이라고 웃으면서 좋아했다. 나는 덧붙이기를 어떤 성장도 바라지 않고, 그저 반복하는 것이라 했다. 지금 주는 월급을 꼬박꼬박 챙겨줄 수 있는 사장이 되고 싶고, 지금 쓰는 글 정도를 가끔 써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뒤에 그것이 제일 어렵다고 덧붙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다.


실제로 지금의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 지금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여겨진다. 최근에 일요일 심야에 명상 모임을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시간의 유익함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조는 순간들이 찾아와 깜짝 놀라곤 한다. 배우는 것이 많지만, 월요일이 힘들기 때문에 약간은 망설여지기도 한다. 체력이 정말이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들은 커가고, 그들의 꿈도 나의 꿈이 될 텐데. 그런 와중에도 나는 점점 옛사람이 되어가고, 그래서 더욱이 뭔가 배워야 괜찮은 사람으로 늙어갈 수 있을 텐데 걱정이다.


이번 주에 터질뻔한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그것이 생각에만 머물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위기의 순간에 나는 명상 시간에 배운 것처럼 호흡에 집중하면서 이완하려고 했었다. 나름 애써 배운 것이 효과가 있었다. 홧김에 내뱉었다면, 주워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인내심이 아니라, 그저 나의 화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뭐라고 말을 하고 싶어서, 커피를 몇 잔 마셨더니 그것이 누름돌이 되어서 그래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나는 요 며칠, 서먹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소와 다르게 포털사이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아무 기사를 클릭하거나 웃긴 게시물을 찾아보곤 했었다. 직원들이 보이기에는 초조한 발정기의 고양이처럼 보였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런 시간 끝에 이번 주말에는 친구와 술을 마셔야지 하고 계획을 세웠다.


나는 요란한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지지고 볶는 소리가 가운데 앉아서 술을 마실 계획이다. 그곳은 아마도 매캐한 연기로 가득한 곳이라 외투를 벗고 가벼운 셔츠차림으로 앉아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지글거리는 불판을 바라보면서 그 위에서 오그라드는 무언가를 바라보면서 결국 그것을 씹어가면서 덜 익은 무언가를 삼켜가면서 목이 마르면 물 대신 술을 마셔가면서 어떤 말이든 내뱉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를 시험에 들게 했던 사람에게 실제로 어떤 말도 하지도 않았고, 그저 앉아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기만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나름의 조치를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어떤 격한 순간도 바라보고 있으면 결국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그런 것 같다. 괜찮다 싶으면 파고들고, 나쁘다 싶으면 그저 노려보자. 웅크려있는 시간에 생기는 주름 같은 것이 품위 있게 늙어가는 것, 이를테면 나이테의 짙고 얇고 딱딱한 부분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 물론 겨울 같은 침묵의 시간을 무사히 바라본 뒤 겨우 받을 수 있는 고요한 선물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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