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섬

by 정인한

괌으로 여행이 갑자기 잡혔을 때, 나는 꽤 당황했었다. 경제적인 여유를 접어놓고서라도 시간상으로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행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휴양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행을 가더라도, 객이 되기는 싫었다. 급한 마음에 세 권의 책을 샀다. 괌에 대한 소설과 그 섬의 역사와 질병에 관한 책, 그리고 여행 수필을 샀다. 방문할 섬의 이야기를 읽어나갔지만, 앞에 놓인 일정의 이물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책은 점점 두꺼워지는 느낌이었다.

신혼여행 이후로 첫 외국 여행이었다. 결혼하고, 나는 현재에 충실히 복무하는 삶을 위해서 노력했었다. 힘들거나 지칠 때는 일상을 벗어나기보다는, 항상 책 속에서 뭔가 찾기를 원했다. 다른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와도 그것이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삶 속에서 인생의 유한성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을 여행처럼 이라는 말을 수첩에 자주 적었다.

이런 나에게 일탈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장인이었다. 그는 술을 좋아한다. 당뇨가 있지만, 끊지 못한다. 취하면 종종 말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괌 공항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경험이었다. 젊은 날 그는 높은 H빔 구조물에 올라가서 절삭작업을 했었다. 어떤 날은 강풍이 불어서 안전띠 덕에 살아남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또 어떤 날은 다른 사람이 실제로 죽었다. 아내가 그리웠다는 이야기. 높은 곳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쉴 때, 북서쪽을 보면서 큰소리로 딸들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했다. 술에 많이 취한 어느 날, 죽기 전에 그곳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아빠가 안쓰러웠는지 아내와 처형이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고, 금세 여행 계획이 잡혔다. 아내는 내가 몸만 가면 되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눈을 떠보니 괌 비행기를 탔다는 말이 유난스럽지 않을 정도로 편하게 출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낯선 감각과 함께 비행기는 떠올랐다. 공기의 저항이 만든 회색 소음이 위도와 경도가 변하고 있음을 알려줬다. 나는 지루하면 책을 읽었다. 아내가 주는 단 것을 씹으면서 변하는 기압에 적응하고, 틈틈이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잠은 오지 않았고 시각은 초 단위로 흘렀다. 이렇게 느리게 흐르는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도착하니 상황이 변했다. 따가운 열대의 태양처럼 새로운 감각들이 쏟아졌다. 빛의 굵기가 달랐다. 습도와 온도를 따라 마음도 올랐다. 나는 불안했다. 그 틈으로 시간은 잡히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방도가 필요했고, 나는 식사 때마다 술을 마셨다. 평소에 절제하는 담배도 수시로 피웠다. 두리번거리기보다는 느슨한 상태에서 시간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여유가 생겼고, 책도 다시 읽혔다. 우리는 휴양 호텔 한 곳에 머물렀다. 다양한 활동과 이벤트가 있고, 낭만적인 해변을 가진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풍경보다 아내의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녀의 코와 눈을 피붙이에서 찾는 것도 좋았다. 그들의 긴장, 설렘, 안도, 환희, 웃음이 적도의 구름처럼 연이어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담았다.

남은 시간은 더 느리게 흘렀다. 아니, 천천히 느끼려고 더 노력했다. 나는 앉아서 바다와 식생을 즐겨 보았다. 열대 나무는 나이테가 겉에 새겨져 있었다. 거친 태풍에 줄기가 뜯긴 자리는 수평으로 된 상처가 남아 있었다. 흉터는 수직으로 쌓여서 기둥을 만들고 있었고, 높은 나무 위에는 화초 같은 푸른 야자의 잎이 매달려 있었다. 어린것은 아직 붙어 있고, 익은 열매는 다른 섬을 꿈꾸는지 모래사장 위를 뒹굴고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다. 산호초가 먼바다의 거친 파도를 막아주었다. 해안가의 초호는 마치 호수처럼 평안했다. 많은 한국인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과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모래 놀이를 했다. 장인은 장모를 찍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나는 현지인들이 보였다. 헤드폰을 끼고 스케치를 하는 소녀, 조깅을 하는 미군들, 보안요원으로 몇 시간 동안 가만히 서 있는 원주민이 보였다.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의 기분이 궁금하고, 또 어떻게 시간을 누리는지 엿보고 싶었다.

사실, 차모로 인의 순수혈통은 19세기 말에 종말이 되었다. 개종에 저항하는 원주민이 있었고, 침략자들은 섬의 모든 남자를 죽였다. 원주민 여자들은 대륙에서 온 사람들의 아기들을 배태하면 높은 절벽에서 바다로 던졌다.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역풍을 타고 새로운 섬을 찾아서 떠났던 용기는 증발했고, 남은 것은 그들의 몸에 그려진 문신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측은했다. 낯선 동양인들을 위해서 이미지를 만들고, 존재를 팔고 충실히 복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하나의 순환하는 의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존경심이 들었다. 타인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삶. 나의 상처가 쌓여서 성장이 되는 삶. 산호초처럼 방파제가 되는 삶. 목숨을 걸고 가족을 위해 하나의 줄에 의지했던 장인의 역사와 같은 흐름으로 느껴졌다.

여행 마지막 날 밤 딸이 말했다. “아빠, 친구들이 내가 깜깜해져서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나는 서우의 머리를 만지며, 여행이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네가 열심히 놀았다는 증거이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유치원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자기소개를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조금 깜깜해진 정서우야, 잘 지냈지?”라고.

지금은 귀국하는 비행기 안이다. 구름은 아래에 있다. 창문 밖은 얼음이 보인다. 미세하게 진동하는 날개를 보며 카페를 지키고 있을 스텝들이 생각나서 미안하다. 한국의 시간으로 가기 전에 글을 마치려고 한다. 그래야, 내가 여행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살아갈수록 나의 책임이 더 두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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