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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한 Jul 29. 2022

이해할 수 있는



새벽에 그 메시지를 보기 전에 나는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날씨가 무더웠지만, 밥맛도 어느 정도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구하고 교육하는 동안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지 몇 주 동안 잠을 깊이 들지도 못했다.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었다. 카페를 그만두게 된 C의 상황이 급했지만,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날들이 이어졌다. 생각보다 구인이 잘 안되었다. 시기가 그래서 그런지 짧게 일할 사람만 보였고, 6개월 이상 안정감 있게 일할 사람이 구해지지 않았다. 몇 번의 면접 끝에 함께 할 J가 정해졌고, 그것으로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J를 처음 만난 것은 우리 카페가 아니라, 우리 카페 옆에 있는 <커피 고코로>에서 였다. 그날은 내가 비번이었던 날이었고, 우리 카페로 가서 면접을 보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바쁘면 바쁜 대로 미안하고, 한적하면 매장에 앉아 있을 사장 때문에 직원이 불편할까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면접 장소를 고코로로 정했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앉아서 기다렸다. 고코로는 우리보다 원두를 더 강하게 볶는 편이었다. 그래서 커피의 색도 더 진하고, 고소했다. 잔의 용량이 작아서 그것이 더 밀도 있게 느껴졌다. 마시면서 좋은 커피라 생각했고,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곳의 테라스에서 보는 거리의 풍경도 바로 옆 우리 카페에서 보는 것과 조금은 달랐다. 전면에 보이는 굴암산의 능선이 유순하게 보였고, 테라스의 높이가 낮고 천고가 높아서 그런지 하늘이 더 잘 보였다. 하늘 반 숲 반의 풍경을 보면서 사람을 기다렸고, 약속한 시각이 되자 그녀가 나타났다. 내가 줄 곳 생각했던 조건은 6개월 이상 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C는 허리가 아픈 상황이었고, 대학교 진학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J가 일 년 휴학할 계획이고 일 년 정도 일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함께 일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닷새 동안 트레이닝했고, 일주일을 쉰 뒤에 정식으로 사흘을 근무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새벽에 읽게 된 문자는 J로부터 온 것이었다. 일을 못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긴 금속 같은 것이 나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카페에서 혼자 일하면서도 다시 몇 번이고 문자를 읽어 보았다. 내가 무엇을 잘 못 했을까. 통화를 하면 뭔가 상황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통화를 하고 난 뒤에 상황은 예상보다 더 나빠졌다. 오늘부터 바로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것이었다. 열쇠도 이미 카페에 있는 앞치마에 나누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다시 구인 광고를 올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괴감이었다. 나는 겨우 이 정도의 직장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장이라는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힘이 들고, 얻는 것은 별것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전화로 혹은 문자로 J를 추궁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쪽이 소중한 만큼 이 공간을 지키는 우리들도 나름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싶었다. 마음이 떠난 사람에게는 닿지 않을 말들이었다.


그냥 J의 말 못 할 사정을 이해해야지 싶었다. 이해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도 뽑을 용기도 생기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사람을 뽑더라도 뭔가를 가르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떠난 그녀에게 내 뾰족한 생각을 쏟아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최대한 J를 이해하는 것이 나에게는 선이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급하게 구인 광고를 올렸지만, 다행히 몇 주 전과 다르게 연락이 제법 왔다.


글을 올린 당일에 첫 면접을 잡았다. 만나기 전에 불안한 내 마음을 숨기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몇 잔 마셨다. 우리 카페의 바 앞에 앉은 K는 우리 카페의 사계절을 모두 다 보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또 그 구체적 언어가 좋은 증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또 같이 일을 할 만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것이 이번 주 수요일의 일이었다.


급한 대로 금요일은 임시 휴무로 정했다. 아직 숙련되지 못한 바리스타를 투입할 수는 없었다. 주말은 아침 일곱 시부터, 낮 열두 시까지 영업하기로 정했다. 이렇게 카페를 운영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빠진 사람 때문에 남은 사람이 무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늘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죄송할 따름이었다.


예감이 늘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 느낌을 밝게 가지지 않는다면 실로 어려운 일인 것이 장사가 아닐까 싶다. 잘 되겠지, 순리대로 되겠지, 그런 마음이 실제로 힘든 시절을 지나가게 했다. 손님이든 직원이든 누군가 떠나버릴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면 주름만 생길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떤 증거를 찾고, 그것에 조금은 집착해야 하는 것이 자영업자의 삶이 아닐까 싶다. 어떤 손님이든 어떤 직원이든 최대한 이해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해하지 않고 미워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장사가 싫어진다. 그러고 보면 바리스타는 꽤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운 일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더 잘해야지 그런 약속을 스스로게 몇 번이고 했었던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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